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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연 Mar 26. 2018

휴가, 퇴근도 휴가도 '권리'입니다

“유급 휴가는 필요 없다. 몸만 둔해진다!” 

“상사의 지시는 하늘의 지시.” 

“마음은 버려라. 꺾일 마음이 없으면 견딜 수 있다!”      


아침마다 모든 직원이 함께 모여 이렇게 구호를 외치는 회사가 있다. “유급 휴가는 필요 없다. 상사의 지시는 하늘의 지시다.” 직원들은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그날의 일과를 시작한다. 바로 소설을 영화화 한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에 등장하는 아오야마의 회사이다. 


너무 오버스러운 설정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이 회사가 영업 회사임을 감안하면 어쩌면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나라도 비슷한 회사가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툭하면 터지는 영업회사의 갑질만봐도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 벌이나 되는 지점장에게 욕설을 쏟아낸 남양유업이나, 그 사태를 보면서도 계속 밀어내기를 해왔던 건국유업만 봐도 그러하니깐.





대부분의 회사들, 적지 않은 수의 팀장들이 구호만 외치지 않을 뿐이지 모두가 휴가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정당하게 주어진 휴가임에도 우리는 그 휴가를 쓰기 위해 팀장의 눈치를 살피고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야 하니깐. 


전 직장을 다닐 때, 샌드위치 휴일을 앞두고 있었던 때였다. Y 대리가 휴가를 쓰겠다며 팀장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하루만 휴가를 내면 주말까지 합쳐 4일간 쉴 수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꿈의 휴가였다.      



Y대리 : “팀장님, 저... 다음 주 월요일에 휴가 쓰려고요.”
팀장 : “그래? 왜?”
Y대리 : “아... 그냥요. 그냥, 좀 쉬려고요.”
팀장 : “네가 뭘 했다고 쉬어? (웃음) 잠깐만... 보자. 뭐야, 이 날만 쉬면 4일 쉬는 거네?”
Y대리 : “아... 네...”
팀장 : “야, 양심 좀 있어라. 너무 한 거 아니니?”   


그 대화는 듣고 싶지 않았어도 모두에게 생생하게 생중계되고 있었고, 모두가 듣는 내내 불편했지만 단 한 사람, 팀장만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아니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회사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일단, 휴가를 쓰겠다고 보고하는 Y대리가 마치 죄인처럼 그 말을 꺼내고 있는 모습이 불편했다. Y대리는 아주 어렵게, 너무 죄송하다는 목소리로 휴가를 쓰겠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없는 휴가를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자기에게 정당하게 주어진 휴가를 쓰겠다고 말하는데 왜 저렇게 비굴하게 이야기를 꺼내야만 하는 건지,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지는 답답하고 속상했다.


그다음으로 내가 휴가를 쓰는데 왜 휴가를 내야 하는지를 보고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꼭 무슨 사유가 있어야 휴가를 낼 수 있는 것인지, 그 사정을 왜 회사가(팀장이) 알아야 하는지, 과연 직원에게 그 휴가 사유를 보고해야 할 어떤 의무나 사규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냥 쉬려고 한다’는 Y대리의 대답에 “네가 뭘 했다고 쉬어?”라고 말하는 팀장의 대답은 농담 삼아 던진 말이었지만 사실 부당한 농담이었다. Y대리는 모든 팀원이 알고 있고 인정할 정도로 많은 업무량을 소화해내고 있었고, 우리 중 휴가 일수 자체도 제일 적어 거의 쉰 적이 없었다. 농담이란 웃겨야 하는 것인데, 팀장의 농담은 전혀 웃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쉬는데 왜 ‘양심’이 있어야 하는 건지. 대체 팀장은 쉬는데 어떤 양심을 가지고 쉬는지 되묻고 싶을 정도로 그 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두가 선점해둔 휴일에 덩달아 쉬겠다고 해서 업무 과부하를 만든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제일 바쁠 때 쉰다고 해서 다른 팀원들에게 폐를 끼치게 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나와봤자 샌드위치 휴일이 낀 영업일에는 크게 바쁠 일도, 손이 모자랄 일도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어떤 양심을 기대하고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결국 못 가게 할 것도, 안 보내줄 것도 아니면서 왜 꼭 이렇게 휴가를 불편하게 보내주는지, 내가 가진 권리를 행사하는데 왜 이런 불편한 말을 듣고 기분까지 상해가며 휴가를 가야 하는지, 난 팀장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10년 넘게 2-30명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요즘 친구들은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어요? 퇴근하고 나면 나몰라 라야. 
나 직장생활 했을 때는 주말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내가 한 일에 실수라도 
날까 퇴근도 무서워서 못하고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그 일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친구들을 보면 일에 대한 애정도, 애사심도 없는 거 같아요. 
퇴근할 생각, 휴가 쓸 생각만 하죠.”    

   

그렇다. 우리 아버지 세대인 1950년대 생인 그가 한창 일을 하던 그 시대와 비교해보면 지금 우리들의 직장생활은 너무나 말도 안 되게 변했다. 그때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야근은 필수, 토욜일까지도 당연히 출근을 해야했다. 그들에게 회사는 전부와 같았고, 그러니 당연히 나의 전부인 회사에 대한 애사심도 누구보다 충만했다. ‘이 회사에 모든 걸 받쳤다’고 말하는 그들의 말은 농담이 아닌 진심이고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이들은 어디서도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퇴근 시간이 되면 너무나 당당히 하던 일도 마무리하지 않고 퇴근하고, 징검다리 휴일은 경쟁을 하듯 먼저 차지에 쉬려고 한다. 퇴근하면 놀러 갈 생각, 주말이면 여행 갈 생각만 하며 주중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대화에는 회사에 대한 걱정, 일에 대한 걱정 따위는 없어 보인다. 회사가 어떻데 되든 월급만 나오면 된다는 생각만 하는 것 같다.


사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말씀드렸다. 부정하고 싶은 근거도 없으며 부정할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난 회사에 몸 받쳐 살아온 우리 아버지 세대의, 우리 선배들의 회사에서의 마지막을 봤기 때문이다.


회사 하나만을 바라바고 열심히 회사 일만 해온 우리 아버지 세대는 내쫓기다시피 회사를 떠나야 했다. 정년을 채우고 말만 ‘명예퇴직’이 아닌 정말 명예로운 퇴직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회사만 바라보고 몇십 년을 보냈더니 회사 밖을 나온 그들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돈을 벌고 싶어도 뭘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고, 놀고 싶어도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몰랐다. 그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본 젊은이들은 회사에 목숨 바치는 미련한 짓만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 자리는 언제든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고, 언젠가는 나가야 할 회사임을 알기 때문에 말이다. 더 이상 고용을 담보해주지 않는 회사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쳐야 할 이유도, 목적도 없었다. 대신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자립을 위해 나를 위한 자기계발의 시간과, 내 인생을 위한 취미 생활, 나의 친구, 가족을 위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동료, 후배들은 일을 통한 자기성취감과 일을 통한 보람에 꽤 큰 비중을 두며 일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잘 하고 싶어 늘 노력한다. 다만 회사와 나는 하나가 아니라 독립된 양자 간의 계약 관계이므로 주어진 시간, 주어진 몫을 최선을 다하되, 퇴근 후에는 나만의 시간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었다. 주어진 업무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와 휴가를 보장해주는 것.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연합뉴스 / http://m.yna.co.kr/kr/contents/?cid=MYH20160622015200038



연결되지 않을 권리 right to disconnect 
: 근무시간 외에 직장 상사로부터 온 업 무 관련 전화, 이메일, 메시지 등을 받지 않을 권리. 2016년 2월 프랑스는 이를 노 동 개혁법안에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자유, 평등, 박애에  이은 권리"라고 조명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6년 3월 30일 1,040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으로 업무시간 외에 업무 지시나 업무 관련 대화가 늘어났는지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전체 응답자의 62.3%가 스마트폰 '항상 연결' 때문에 퇴근 후에도 업무 관련 경험을 했다고 대답했다. 대부분이 카카오톡, 라인 등 모바일 메신저로 인한 불편(57.6%)으로 SNS가 발달하며 오히려 실시간으로 회사와 연결되어 근무시간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응답한 것이다.  


전 직장에서도 내가 끌려들어갔던 카톡방이 4개나 있었다. 팀별로, 프로젝트별로, 안건 별로 구성원이 다르게 구성되어 만들어진 그 방은 퇴근시간, 휴일을 가리지 않고 울려댔다. 가끔은 모르던 정보가 공유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내가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아니었고, 실시간으로 알아야 할 일도 아니었으며, 가끔은 대체 이런 대화는 왜 하는 걸까 의문이 드는 시시껄렁한 대화도 많았다. 


대부분의 대화는 그 방을 만든 몇몇에 의해(거의가 팀장 또는 선임들)서만 돌아갔고, 그 안에 끌려간 사람들은 관전만 하다가 자신의 업무나 자신의 이름이 언급될 때만 대답을 했다. 모두가 나가고 싶어했지만 그 방을 나갈 수 없었고, 유일하게 퇴사를 했을 때만 당당히 그 방을 나갈 수 있었다. 내가 퇴사를 한다고 말했을 때 누군가는 웃으며 “그 방에서 나갈 수 있어 좋겠다”는 말을 제일 먼저 건넸었다. 그 정도로 그 방은 모두에게 정보 공유의 장이 되는 것이 아닌 업무 지시와 보고, 질책과 아부가 난무하는 감옥과 같은 곳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업무 시간 외 업무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노동 개혁법안에 포함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우리가 다니는 직장에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퇴근 후의 삶이, 휴가가 보장되는 직장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을까? 


며칠 전 지금 회사의 대표가 불러 모았던 단톡방에서(그것도 토.요.일.에 불러 모은) 나왔다. 톡 목록에 그 창이 있는 것도 보기 싫었고, 어차피 그날 불러모았던 일은 마무리가 되었고 그 목적이 끝났으니 해산해도 되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깐. 그렇게 난 그 방에 “000님이 나갔습니다”를 남겼다. 


그런데 그다음 주 회의 시간에 만난 대표는 뭔가 쌩했다. 물론 그날 회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왠지 내가 단톡방을 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 건 그저 도둑이 제발 저린 느낌인걸까.  


당당하게 휴가 갈 수 있고, 퇴근 후에는 당당하게 업무와의 연결을 거부할 수 있는 회사는 그저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걸까. 카톡 탈퇴의 유혹은 나만 느끼는 걸까. 이 지긋지긋한 회사와의 인연은 퇴사를 해야만 비로소 끊을 수 있는건가.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처럼, 회사와의 인연은 끊길 듯 끊길 듯 지겹게 이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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