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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연 Apr 02. 2018

사내문화, 싫으면 떠나라고요? 바뀌면 안 되나요

D회사 채용공고. 흡연자는 인턴십 참여의 제한을 둔 문구가 유독 눈에 띈다.




지난 9월, 한 외국계 회사가 인턴십 채용 공고를 내며 "흡연자는 참여가 제한될 수 있다"는 문구를 넣었다. 이 회사는 스포츠 의류를 판매하는 회사였는데 아무래도 건강한 이미지를 부여해야 하고,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회사 브랜딩을 생각해서 흡연자는 채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채용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워낙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니 이를 두고 사람들은 갑론을박 토론을 벌였다. 


바늘 같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구직자들에게는 이는 분명한 채용의 차별이었다. 고용정책 기본법 제7조는 이렇게 쓰여 있다. "채용할 때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신앙, 연령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합리적인'과 '등의 이유로'라는 부분이다. 흡연이 과연 합리적인 채용의 근거가 되는지, '등의 이유'에 흡연의 문제도 포함될 수 있는지는 충분히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흡연이 위법적인 것도 아니고, 일을 하는 데 능력의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니니깐 말이다.


반대로 이건 회사가 추구하는 기업정신, 인재상과 연결되는 문제이니 차별이 아닌 선택의 문제라고 보는 이도 있었다. 기업은 자신들이 원하는, 기업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 것이 당연하며 회사에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런데 회사 전체가 금연정책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에 흡연자가 들어온다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할 수도 있으니 처음부터 그런 지원자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이미 많은 기업들이 면접 등을 통해서 흡연 여부를 사전에 파악하고 채용에 반영하는데 그것보다는 오히려 명쾌하게 채용 공고에 쓰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이 논란을 보며 문득 나의 첫 직장이 떠올랐다. 당시 회장님은 건강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분이었는데 당연히 흡연문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흡연자 중 금연에 도전하고 성공하는 사람들에게 포상을 주는 캠페인을 벌였다. 매우 긍정적이라 생각했고 실제 많은 흡연가들이 이참에 끊자며 금연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것도 몇몇 사람들에게만 효과가 있고 흡연자는 줄지 않자 어느 날 회사 전체에 '금연' 정책을 공표하며 앞으로 흡연자에게 승진 시 페널티를 주겠다고 했다. 상이 아닌 벌을 택하면 무서워서라도 전 직원이 금연을 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회장님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일단 많은 흡연자들이 회사의 태도에 반발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러면 뭐, 그럼 승진 천천히 하지. 어차피 빨리 올라가 봤자 빨리 잘리는 거잖아"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기까지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흡연자는 줄지 않았고, 설문에는 거짓으로 답했다. 


그러자 회사는 더 센 카드를 꺼냈다.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실제 전 직원의 머리카락을 채취해서 흡연 여부를 검사하고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곧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투명 실린더를 들고 회사에 들이닥쳤고 모든 직원들은 그들에게 불려 가 머리카락을 뽑혀야 했다. 그땐 비흡연자들까지도 회사의 태도에 강한 불만감을 표현했고 그것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그 다음번 모발 검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영화 <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초 단위로 억대 자산이 오가는 월스트리트의 긴박한 사내문화를 엿볼 수 있는 영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2016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이 27.7%였다. (중략) 신입사원 세 명 중 한 명이 1년 내에 퇴사하는 셈이다. 취업 경쟁률 수십 대 1이 보편적인 상황에서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왜 그렇게 빨리 그만두는 걸까? 
퇴사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조직과 직무 적응 실패로 49%다. 절반 정도가 조직 문화와 일이 잘 안 맞아서 사표를 쓰는 것이다. 

_ <라이프 트렌드 2018>, 95쪽



사람마다 각각의 개성이 있고, 가족마다 그들 각각의 가족문화가 있는 것처럼 회사는 그 조직 특유의 사내문화라는 것을 가진다. 대부분이 창업자가 추구하는 가치에 의해, 회사가 추구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문화를 가진다. 기업이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면 그 문화의 색이라는 것도 조금씩 옅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업 특유의 색은 있게 마련이다. 이건 업종에 따라서도 많이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 돈이 오고 가는 금융회사의 경우엔 좀 더 타이트하고, 원리 원칙을 중요시 여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영업회사의 경우에는 영업인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으쌰 으쌰 하고, 조금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좀 더 적극적인 영업을 유도한다. 


'일하는데 사내문화가 무슨 상관이냐'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이 사내문화가 상당 부분 퇴사 사유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회사 안에서 소통의 방식, 일의 방식, 사람들의 성향 등에 이 사내문화 반영되기 때문이다. 선후배 간 군기가 바짝 들어간 조직이라면 "에이, 선배 이것 좀 봐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먹히지 않고,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회사라면 때론 일하면서 자기 돈으로 그 손해를 메꾸며 일을 해야 만한다. 실제 내가 일했던 한 회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돈'에 민감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장 때문에 자기 돈으로 손해를 메꾸며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실수를 보고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찍히느니, 몇 십만 원을 내 돈으로 내서 때우고 인정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현 직장까지 포함하면 다섯 개의 회사를 경험했는데 이 다섯 회사가 업종은 비슷해도 다 달랐다. 비용에 예민했던 회사와 정반대로 있어 보이는 것을 추구했던 회사, 일의 자율성을 중시했던 회사와 근태를 더 중시했던 회사, 팀워크를 중시해 모든 사람을 떠안았던 회사와 자기 일만 챙기면 되기에 팀의 일은 나몰라라 했던 회사 등 모두가 달랐다. 당연히 모든 것이 완벽하고 나에게 쏙 맞는 회사는 없었고 싫은 것들의 개수가 많아지기 시작하면 그 회사에 대한 애정이 떨어졌던 것 같다.


난 주변에서도 인정하는 나름 회사형 인간인데 이유는 이직할 때마다 그 회사가 원하는 대로 군말 없이 잘 따랐기 때문이다. 비용을 아끼라고 하면 100원 단위까지 챙겨가며 아꼈고, 더 좋은 것 더 고퀄리티를 찾으라고 하면 몇 천만 원 대까지도 찾아내 썼다. 업무일지를 쓰라고 하면 30분 단위로 쪼개어 자세하게 써서 제출했고, 워크숍에서 장기자랑을 하라고 하면 몇 주 전부터 열심히 연습했다. 그럼에도 내가 몇 가지 쫓아가지 못했던 게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한 대기업에서 쓰는 콩글리시였다. 


그 회사는 처음 입사하고 일주일쯤 지난 내게 마치 자신들이 엄청나게 세련되게 일을 하는 것처럼 몇 가지 에티켓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건 바로 회사에서 각 직급을 부를 때 쓰는 워딩에 관한 것이었는데 대리님, 과장님이라는 말 대신 사원은 SW, 대리는 DR, 과장은 GJ, 차장은 CJ이라고 쓰라는 것이었다. 워낙 영어를 즐겨 쓰는 회사이기도 했고(그 회사는 '빠른 검토 바랍니다'도 '퀵하게 검토 부탁드립니다'라고 썼다),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회사였기에 당연히 직급에 대한 영어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이 쓰고 있는 건 영어가 아니었다. SaWon의 SW, DaeRi의 DR 이었던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콩글리시를 자신들의 메일 에티켓이라고 알려주고, 그걸 안 쓰는 날 마치 비즈니스 매너 따위는 모르는 사람 취급을 했다니 기가 막혔다. 당연히 난 그 회사를 퇴직할 때까지 SW, DR, GJ 따위는 쓰지 않았고 꼬박꼬박 대리님, 과장님을 썼고 아마도 그들은 날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물론 그 기업의 조직문화가 퇴사의 사유가 될 만큼 스트레스를 준 건 아니었지만, 정작 내실은 챙기지 못하면서 바깥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위선적으로 느껴져 회사에 애정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있어 보이는 것'만 추구하던 그 회사는 최근 성추행 사건이 붉어졌고, 그 사건에서조차 스스로 있어 보이는 척, 고고한 척하다 제대로 된 수습을 못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의 사칙. 좋고 나쁨을 떠나 이 회사에서 일하려면 지켜야 하는 룰이다.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 흔히들 하는 말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다. 나 역시 세 번째 직장에서 퇴사 사유를 묻는 동료들에게 "절은 아무래도 안 바뀔 것 같아서요"라고 말했다. 그 안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중이 떠나면 문제는 해결되는 걸까? 정말 그 방법밖에 없는 걸까? 구직자의 입장에서 그 문화라는 것은 들어가서 경험해보기 전에는 알 방법이 없는데, 좋든 싫든 취향과 모든 호불호는 내려놓고 그 공간 그 조직 안에서는 그들의 룰을 따르고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걸까.


김용섭의 <라이프 트렌드 2018>에서는 '퇴사'를 하나의 트렌드 키워드로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Y세대의 부상, 그들은 행복을 위해 당당하게 사표를 쓰고 떠난다." 수직적인 구조보다는 수평적인 구조를 원하고, 상명하복식 일보다는 창의적인 일하기를 기대하고 회사에 들어가지만 그들이 맞닥뜨린 회사는 정반대였을 것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불필요한 야근을 해야 했고, 창의적인 회의보다는 형식적인 페이퍼 워크에 더 공을 들여야 했고, 팀워크를 빙자한 회식에 주말 체육대회까지 전통적인 회사 문화를 따라야만 했을 것이다. 바꿔보려 혼자 일찍 퇴근을 하고, 회식 대신 자기계발을 했겠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건 끈기 없고, 불성실하고, 무책임하다는 회사의 비난뿐이었을 것이다. 


용기 있는 누군가들은 있어왔다. 대리점 밀어내기와 폭언에 참지 못해 녹취록을 공개하고 비인간적인 조직문화를 고발한 남양유업도 있었고, 비행기도 돌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폭로한 직원도 있었고, 자신이 모시던 회장님의 비인격적인 언행과 폭행, 비인간적인 업무 매뉴얼을 폭로한 대기업 기사님도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무엇이 바뀌어 왔던가. 남양유업과 동종업계였던 건국유업의 대리점 밀어내기는 남양이 뭇매를 맡고 있을 때도 계속되어 왔고, 기업 총수의 폭행 사건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최근 벌어진 한샘의 성폭행 사건은 대체 이게 대한민국 기업이라는 곳에서 일어진 일이 맞는 건지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월급이라는 생계의 문제가 걸려있기에 아래에서 바꾸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퇴사가 트렌드 사전에 오르고, 회사를 떠나는 사람의 절반이 조직문화를 퇴사 사유로 꼽았다는 건 한 번쯤 사내 문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건 아닐까. 그저 불만을 표시하는 거라고, 애사심이 없다고, 책임은 다하지 않고 권리만 찾는 거라고 생각하는 대신 말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같이 하는 사람들, 이왕이면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건 교과서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런 회사를 직장생활하는 동안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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