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연 Mar 19. 2018

사표, 회사 안은 전쟁이지? 회사 밖은 지옥이야



매일같이 사표를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건, 아무래도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고,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고, 밖에 나가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월 매출이 확보되어 있는 안정적인 사업에다, 고객들이 제 발로 찾아와 그들만 응대해도 충분하고, ‘을’이 아닌 ‘갑’의 권리를 마음껏 누리면서 할 수 있는 사업이 있다면 어떨까? 안 그래도 지긋지긋하던 회사,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떠나고 싶지 않을까?


여기 그런 제안을 받았던 한 사내가 있다. 소설 <9990개의 치즈>의 주인공 라르만스. 그야말로 평범한 라르만스는 처자식을 먹여 살릴 요량으로 '근근이' 직장을 다니고 있는 회사원이다. 내세울만한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직장 내 정치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닌 그는 그저 아침이면 기계적으로 일어나 출근하고,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주어진 일을 반복적으로 해내며, 퇴근하고는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놀아주다 잠드는 직장인이다. 지긋지긋했지만 대안은 없고, 당장 먹고살려면 돈이 필요했기에 그는 혹여나 회사에서 자리가 없어질까, 해고를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숨죽이며 다니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우연히 명품 에담 치즈를 벨기에 전역에 독점으로 공급할 수 있는 사업 제안이 들어온다. 사람들이 없어서 못 먹는다는 명품 치즈에 독점권한까지. 심지어 이건 매출이 확보된 사업이라 자본금 없이 먼저 시작하고 나중에 수금을 하겠다 제안에 그는 더 고민할 것 없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만의 사무실을 차리고, 타자기를 구매하고, 회사 로고가 박힌 주문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미리 받은 물량 1만 개의 치즈와 함께.


그다음 일은 모두가 예상한 것 그대로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사업의 '사'자도 모르는 라르만스가 무턱대고 시작한 사업이니 잘 될 리 없는 것은 당연지사. 당장 주문장을 쓰는 것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는 그저 가족들에게 치즈를 나눠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저절로 고객들이 찾아와 줄을 서고, 불티나게 치즈가 팔리는 것만 생각했지 그렇게 되기까지 치즈 시장은 어떠하며, 회사 운영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고, 홍보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다. 회사 밖은 그의 상상과는 달리 냉혹했고 냉담했다. 결국 라르만스에게 남은 것은 가족들이 나눠 먹은 10개의 치즈를 뺀 9990개의 치즈뿐이었다.      



회사를 때려치울 것처럼 말은 했지만, 그렇게 바로 실행에 옮길 만큼
무모한 사람 이 아니라는 건 알아줬으면 좋겠네. 그럴 수가 없는 일이지. 
처자식이 있는 사람은  남들보다 몇 배는 신중해야 하는 법이니까.

_ <9990개의 치즈>, 41쪽  

   


회사를 다니면서 한번쯤 하는 착각 중 하나가 "내가 나가서 해도 이 정도는 하겠다"라는 것이다. 연차가 쌓이고 회사 내 굵직한 일들을 몇 번 하고 나면 세상에 돈을 버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으며, 내 능력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분명 '돈'이 되는데 각종 절차와 부서 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 일이 좌절될 때면 '이런 멍청이들. 차라리 내가 나가서 이 일을 따서 하고 말지. 그럼 돈도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라르만스의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회사에서 인정받고 일 좀 한다는 사람들은 더욱 쉽게 이런 착각에 빠진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더 열심히 하고, 성과도 이렇게 많이 내는데 실상 그들과 월급은 똑같고 회사에서 대우 역시 만족스럽지 않으면 굳이 회사에 남아 있을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이 회사의 매출 대부분을 매워주고 있는데 여전히 내 위에는 무능한 상사들만 있고, 그렇게 회사 매출을 올려줘봤자 내 손에 쥐는 것은 월급뿐이니 손해 보며 회사를 다닌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가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데 재미있는 건 오히려 그렇게 나간 사람들 대부분 곧 어려움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도 잘 나가는 선배 몇 명이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에 남아 있었다면 임원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던 이들이었다. 나가는 순간에는 많은 이들로부터 부러움을 샀고, 나 역시도 그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많은 이들이 나중에 회사가 커져서 사람이 필요해지면 자기를 잊지 말아달라는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인사를 건넸고, 남아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가 잘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회사 명찰 떼고, 한 개인으로 돌아가 시작하는 사업은 쉽지 않았다. 00 회사에 소속일 때는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던 사람들도 막상 밖에서 새로운 회사 이름을 찾아가자 안면을 바꿨다. 자본금도 없고, 검증도 되지 않은 회사 이름만 보고는 무턱대고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제품 경쟁력만으로는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 안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그들의 자본력과 시스템은 견고했고 막강했다. 


한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내 능력’ 때문에 회사가 잘 돌아갔던 것이 아니라 그 ‘회사’였기 때문에 잘 나가고 있었던 것이지. 내가 없으면 멈출 것 같았던 회사였지만, 그 회사는 여전히 잘 나가고 있었고 내가 나갈 때 나를 붙잡았던 건 잠시의 불편함 때문이었지, 나의 자리는 곧 다른 사람으로 채워져 회사는 평온하게 굴러가고 있었어.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니 회사가 내게 얼마나 많은 것을 줬었는지 알겠더라.” 






C회사는 작년 상당 규모의 희망퇴직을 받았다. 30% 수준의 큰 인원감축을 하다보니 살생부를 만들어 잘라내는 것보다는 이왕이면 나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먼저 내보내 인원감축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도 생겼다. 퇴직금 말고도 몇 개월치 월급을 더 받아나갈 수 있다보니 그동안 퇴사를 준비하고 있거나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좋은 조건으로 회사를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던 사람들, 자기 사업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희망퇴직을 선택했다. 나가서 몇 개월간 월급을 받으며 준비를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호기롭게 나간 사람들 중 대부분이 10개월이 지난 지금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고 싶다’고 했던 일은 막상 해보니 돈도 되지 않고 힘들기만 한 즐겁지 않은 일이 되었고, ‘내 사업’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머리로만 준비하다 밖으로 나와 시작을 하려다보니 스스로가 온실 속 화초로만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당장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몇 달을 더 보내다가는 돈을 다 까먹는 것은 물론 재취업마저 어렵겠다는 판단에 본격적인 구직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1년 전에 비해 시장은 더 꽁꽁 얼어붙었고, 대부분의 기업이 사람을 내보내려 할 뿐 채용 자리는 가뭄에 콩 난 듯 나왔다. 


한 시사프로그램에 나왔던 50대 자영업자는 그런 말을 했다.

 “마지막에 회사를 나올 때 제가 대기발령을 받았어요. 그 왜 있죠? 부서도 없고, 그냥 책상만 한 방에 몰아 넣고 대기발령 받은 사람들이 쭉 와서 앉아 있는 거예요. 컴퓨터도 당연히 없죠. 견디는 게 쉽지 않아요. 도저히 못 다니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회사의 바람대로 짐을 싸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벌어 놓은 것만 까먹고 살기에는 아직 너무 젊었고 키워야 할 자식들도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음식 장사였다. 회사밖에 모르고 그 안에서 주어진 일만 했던 그가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게 유일했다.   


   

보통 장사할 때 간 쓸개 다 내줘야 한다고 하잖아요. 아니에요. 
그냥 전부를 내줘야 해요. 영혼까지. 그래서 요즘에는 대기발령 났을 때가 
생각나요. 그게 뭐가 힘들다고 자존심을 내세웠는지... 
그때 몇 년 더 버티다 나올 걸, 그게 뭐가 힘들다고 
그걸 제 발로 걸어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_ 50대 자영업자의 말  



<미생>의 명대사처럼 회사 안은 전쟁이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다. 회사에서 하루는 그냥 대충 때워도 되는 많은 날들 중 하루일 뿐이지만, 밖에서의 하루는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큼 매출이 줄어들고 가져갈 수 있는 돈이 줄어드는 생계가 달린 하루가 된다. 회사에서의 실수는 그냥 한 번 쪽팔리고 말고, 고과 한 번 깔고 가면 넘어가면 그만인 것이지만 회사 밖에서의 한 번의 실수는 그동안 모아둔 돈은 물론 집까지 날아갈 수 있고, 한순간 신용불량자에 개인파산자로 전락할 수 있는 위기가 된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그래서 다닐 수 있을 때까지 회사에서 버티며 일을 하겠다 다짐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회사 밖으로 밀려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의 축복인지 저주인지 기대수명은 길어지니 운이 좋아 정년을 채우고 나온다 하더라도 앞으로 먹고 살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우리들은 계속해서 일을 해야하며 돈을 벌어야만 한다. 


밖은 냉혹한데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일자리는 줄어들고... 모두가 갈 수밖에 없는 지옥. 그저 우리는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고, 워라벨을 찾아 떠나는 것이 트렌드라 하지만 내게 퇴사는 두렵기만 하다. 네 번의 퇴사를 경험했지만 순간의 통쾌함만 있었을 뿐, 또 다시 다른 회사를 찾아 월급쟁이가 되었을 뿐이다. 하고 싶은 것이 딱히 없고, 특출난 능력도 없는 내게 퇴사는 쉽지 않은 결정이 되어버렸다.


10년 차 직장인, 이제는 각자의 회사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 우리들은 그래서 모이면 어떻게 하면 유리하게 회사를 나올 수 있을지, 그 이후에는 뭘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손에 꼽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현실에서, 그래서 결국 대한민국에서는 부모님 유산과 부동산밖에 없는 건지, 그마저도 엄두도 못 내는 우리들은 그저 한숨만 쉬다가 내일 출근이나 하자며 먹던 술잔을 내려놓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못다 쓴 사직서는 다시 가슴이 고이 묻은 채.

이전 12화 모럴해저드 - “이 정도쯤이야”란 위험한 상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