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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May 14. 2020

곤드레밥 한 그릇에 잡생각 한 사발

나는 사실 중년이 두렵다

평일 낮, 남편과 곤드레밥을 먹었다.


평일 낮이 주는 한산함을 생각하고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이미 음식점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조용히 먹고 싶었는데 시끄러우니 살짝 마음이 곤두선다.


직장인들이 많은가 싶었는데 둘러보니 삼삼오오 떼 지어 나온 중년의 여성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황도 사연도 알 도리는 없다만, 나는 내 시선에 닿는 대로 사람들을 싸잡고 분석하기 시작한다. 아이들 키워 놓고 딱히 바쁜 일 없는 사람들이구나, 차림을 보니 돈은 좀 있으신가벼. 코로나고 뭐고 친구 만나 수다 떨러 나오셨군. 코로나고 뭐고 나 이제 죽겠다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긴 죄인(?)이면서, 이토록 쉽게 나불댄다.

왜 이렇게 사람을 보는 시선이 삐딱해졌을까.

나이 마흔을 앞두고 있으니 나도 실은 중년이라면 중년이다.


나는 사실 중년이 두렵다.

지금이야 두 아이가 내 손발을 꼭꼭 묶어두고 있으니 손발의 다른 쓸모를 고민하지 않는다. 고민은커녕, 손발이 쉬어줄 틈도  없는 일상이다. 어쨌든 아이들은 크고 나도 저분들처럼 중년의 옷을 입는 중년의 나이가 될 터이다. 친구를 만나는 일,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쇼핑을 하는 그 즐거운 일을 자유로운 몸으로 만끽하고 싶은 열망 뒤로, 나는 주부 이상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나강렬하게 꿈꾼다.


오늘, 즐거이 곤드레밥 한 그릇을 먹으러 나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것은 손발을 쉬지 않고 아이들과 복닥거리던 시간을 지났기 때문이었다. 일하다가 시간 내어 친구를 만나는 중년이었으면 좋겠다. 아이 얘기 이상으로 남편 얘기 이상으로 할 이야기가 있는 중년이었으면 좋겠다.

가난한 집 딸로 자라 그런 걸까. 커피 한 잔의 값을 '아낌없이' 지불하는 것도 꽤 오랜 설득이 필요했던 나다. 이제 더 이상 커피값이 아까워 카페에 가지 못하는 삶을 살지는 않지만, 여전히 내게는 커피값을 기꺼이 치를 수 있는 '가치'있는, 혹은 ''이 되는 '일'이 필요하다.



건너 편에 앉은 아름다운 중년의 여성들을 흠모하며 그리고 싸잡아 한 번은 비하해보기도 해 보며, 곤드레밥 한 그룻을 싹 비워냈다. 남이 해 준 밥은 많이 들어간다. 맛있다.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곤드레밥의 밥값을 치렀다. 부양자 남편의 피부양자로 살아가는 일상이 나는 아직도 조금 불편하다.  육아와 살림을 하며 돈까지 버는 여자들에게 존경심과 열등감을 번갈아가며 느낀다. 아무래도 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곤드레밥을 먹는 남편을 찍는 척하며, 뒤에 도란도란 모여 앉은 중년의 어머님들을 배경으로 넣어 보았다. 그분들의 모습을 다시 보고 다시 해석해 보고 싶어서, 그리고 나의 중년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서.


원하는 삶을 그리고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었던 '야성'이 내게도 한 때는 있었다. 두 번째 인생 운운하며 한 번 더 달려보려 하지만 '체력'이 붙잡고 늘어지는 날들은 참 슬프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삶에 대해 겸손해진다.

슬퍼하며 그러나 겸손히 삶을 인정하며, 주부로서의 또 그 이상으로서의 삶을 사는 50세, 60세,70세....의 나를 조금씩 만들어 간다.


곤드레밥 한 그릇에 잡생각이 한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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