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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Jun 26. 2020

소비력 이상의 소비를 허용하는 날

굳이, 블루보틀


6,100원짜리 라떼는

내게는 좀 사치스러운 가격이다.

평소에는 스탬프를 모으며

이디야의 3,2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열두 개를 모아 한 잔씩 공짜도 즐긴다.


집에서 성수동까지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한다. 

번을 갈아타 번거로움까지 있다. 

커피를 마시러 가기에 합리적인 거리는 아니다.

 

비 오는 평일 오전이라 그랬는지

다행히 악명 높은 대기줄은 없었다.

대기줄까지 있었다면

대기 시간과 더불어 체력의 소모까지 

지불해야 했을 터였다


블루보틀, 라떼


트렌드고 브랜드고,

사실 나는 버겁다. 피곤하다.

아이 둘 있을 땐 아이 둘을 돌보느라

아이 둘 없을 땐 살림을 돌보느라,

그것만 해도 충분히 바쁘다.

시간도 물질도 그리고 체력은 더 빈곤한 삶을 산다.


그런 내가

블루보틀에 가서 라떼를 마셔 보겠다고 나선다. 내가 바란 건,

잠시 아줌마가 아닌 척 엄마가 아닌 척

나의 신분과 경제적 현실을 잊고

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었을 거다.

낯설게 존재하며

나의 마음만을 오롯이 존중하고

스스로를 만끽하는 것. 엄마의 소박한 일탈이랄까.


 



삶은 현실로 돌아온다.

나는 다시,

가치와 철학과 역사와 직원들의 고귀한 애티튜드까지 담은 블루보틀 커피가 아니라, 저렴한 의 대용량 원두를 쟁여두고 

어설픈 드립 실력으로 아메리카노를 내려 마신다. 때론 믹스 한 잔을 급히 타마시는 날도 있을 테고 말이다.


그래도,

블루보틀의 향내와 풍미를 경험한 나다! 

삶은 뭔가 달라졌을 것이다.


나의 달라질 일상을 걸고

나는 '굳이' 블루보틀에 갔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건진 것도 아니고

뭔가 굿즈를 사서 뿌듯함을 남긴 것도 아니다.

다만 한 잔의 커피를 즐기고 나왔을 뿐이다.


그러나 굳이 찾아가 마신 라떼 한 잔의 여운으로

나는 오늘 고상하게 하루를 지나고 있다.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을 경험한 자로서의 자존감을 홀로 뿌듯하게 품고 말이다.


블루보틀을 경험한 내가 내리는 커피는, 블루보틀을 경험하지 못했던 지난 날의 커피와는 좀 다를 것이다.

커피 하는 사람들의 철학이 담긴 커피를 마신 나이기에, 완벽주의를 추구했던 한 클라리넷 연주자의 고심과 인생이 녹아든 커피와 공간을 만끽했기에.


그것을 경험한 자의 커피 타임이다.

'굳이'  찾아가고 '애써' 음미하고 돌아온 명분은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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