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인 Apr 03. 2020

누가 누굴 위해 희생해?!

91세 그녀의, 독립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해?!"


TV를 틀어 놓고

거칠게 설거지를 하며 스트레스를 날리고 있었다.


인생의 후반기를 지나는 두 여배우가 

이야기를 나눈다. 

결혼은 서로 희생하는 거라는

한 배우의 발언에

김구라 씨가 툭 내뱉은 (내가 보기엔) 진심.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해?!"


그는 이혼은 했지만 아내의 빚을 책임진 걸로 알고 있다. 그의 이혼은 크게 비난받지 않았다. 나 역시 그를 욕하기보다 이해했었다.


그래 세상은 더 이상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하는 시대가 아니다.

자기 행복과 자기 몫에 대해 모두가 어느 정도는 야무지며 많은 이들이 예민하고 민감하다.




91세 할머니가 아들 며느리로부터 생애 첫 독립을 하셨다. 말이 독립이지, 분가인지 고려장인지 뭔가 애매하고 찜찜한 구석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평생 시어머니를 모신 엄마에게 더 이상 '희생'을 강요할 수 없었다. 엄마도 68세다. 정정한 할머니와 달리 엄마의 깜빡 깜빡이 심하게 잦아지고 시어머니에 대한 스트레스도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딸인 내게 하소연을 할 적마다, 그 감정의 찌꺼기들을 받아내야 하는 나도 지쳤다. 내 새끼 둘 보는 일도 힘이 달려 극심한 육아 스트레스에 나 또한 시달리고 있었다. 여력이 없을 땐 전화를 피하기도 했다.


가난한 '장수'는 결코 복이 아닌 것 같아.

할머니의 인생을 알고 할머니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해 줄 분들은 이미 먼저 하나 둘 떠나버리셨다. 너무 오래 살았기에 아들의 암 판정 소식까지 들어야 했던 할머니의 인생이 복인가 싶다, 난.


그럼에도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인 것을 안다.


할머니 또한 며느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더 사실 지 알 수 없지만

하루를 더 살더라도 한 달을 더 살더라도 

할머니 또한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기를 바랐기에 나는 양쪽에 대고 피차 분가를 부추겼다.


금쪽같은 내 새끼도

하루 종일 끼고 있으면 열불이 난다.

우리는 함께 그러나 또 따로가 필요한 존재들이거늘,

사람은 너무 오래 함께이기만 했다.

따로의 시간을 누리며

각자 그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해?!

희생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가정은 사회는 공동체는 없다. 그러나 희생만 존재하는 곳 또한 있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옳은지, 이 일은 옳았는지, 나는 여전히 고민한다. 누가 정답을 말하겠는가.

나는 오늘도 결국 '밸런스' 타령을 하고

균형을 잡아가느라 애쓸 뿐이다.


새로운 할머니의 거처가

조금은 누추한 것 같아 한 주 내 내 마음이 쓰인다.


인생, 아름다운 거 맞지?!


할머니의 독립이 모두를 위한 '행복'인 거 맞겠지?...


반찬이나 챙겨보자. 그녀의 독립을 응원하며.

이전 03화 부부의 책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