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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Oct 31. 2020

시지프스의 굴레  

차라리 혼자 살았어야 하나?  

학교 생활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지만 결석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고지식한 나였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꾸역꾸역 집을 나서는데, 배웅을 해주는 엄마가 너무나 부러웠다. TV에서는 아침 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나는 가정집의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그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고 싶은 욕구를 억누른 채 등교를 해야 했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도 보지 못하고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야 하는 나의 처지가 참으로 탐탁치 못했다. 엄마는 나를 보내고 나서 계속 TV를 볼 수 있겠지? 부럽고 질투도 났다. 나도 어서 빨리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혼자 실컷 TV를 볼 수 있는 그런 주부 말이다.  내가 주부이자 엄마가 되고 싶은 순간은 그렇게 기억된다. 


주부가 되어서는 안 돼 


그러나 엄마는 말했다. '주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나 또한 그 뻔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여자도 전문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들었다. 지금처럼 자기다움에 열렬히 열린 시대가 아니었다. 나는 다른 길을 알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했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 끝에 결국 나는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 '주부'가 되었다. 그냥 '주부'도 아닌, 아예 제대로 '전업주부'말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였던가,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이 들려준 신화의 한 장면은 내 머릿 속에 그리고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열심히 바위를 끌어 올리고 마침내 도착지에 다다르면 그 돌이 다시 굴러내려온다. 그걸 또 끌어 올려야 하는, 영원히 그 짓을 해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 어린 내게도 그건 철저히 형벌이었다. 숨이 턱 막히고 내 안에 어둠이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삶에 대해 길에 대해 알지 못했던 편협한 성장 과정이었지만, 적어도 내게 삶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강한 방어가 자리잡았다. 형벌같은 허망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때부터 나는 무던히 애쓰며 살았던 것 같다. 내 안에 스민 시즈프스의 어둠을 밀어내기 위해 그 굴레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 나는 참으로 애쓰며 도전하며 여리고 약한 나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며 악착같이도 살았다. 내게 주어진 체력 이상으로, 내게 주어진 환경 이상으로 말이다.  


대단하다는 대학은 아니지만 대학에 갔다. 어학 연수는 못 갔지만 빚져가며 여행과 봉사활동은 골골대는 체력으로 기필코 쫓아 다녔다. 나도 세상에 기여하겠다며 굳이 또 빚져가며 대학원 공부를 했고, 대강 취업도 하고, 내 앞가림을 나름 해 나갔다. 삶에 있어서 후퇴하지 않겠다며 형벌같은 갇힌 삶을 살진 않겠다며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내게도 결혼의 시기가 왔다. 축복의 선물 아기들도 우리에게 왔다. 그리고 이 축복의 시간들을 거쳐 다음으로 내게 온 것은 내가 그토록 피하려고 했던 형벌같은 일상이었다. 시지프스의 형벌 속에 갇혀 버린 나를 어느 날 발견했다. 나는 없고, 끊임 없이 아이들과 살림을 치다꺼리 해야 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잠은 부족하고 몸은 너덜너덜한테 가차없이 나는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유지해야 했다. 나는 없는데 말이다.  남편도 있고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어쨌든 추위더위 피할 집도 주어졌는데 그 어느때보다도 삶은 어두웠다. 아, 주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악착같이 코피 쏟으며 살아냈던 내 지난 시간들은 어디에도 그 흔적이 없었다.


 흔적이라고 하나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여전히 꼬박꼬박 지불해야 하는 학자금 융자였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가 몰려 왔다. 이럴 거면 그냥 열심히 살지나 말 걸. 스스로의 삶을 후회하고 부정하는 힘든 시간 동안에도 육아와 살림은 내게 가차 없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몸이 상하고 마음이 상하고, 영혼이 병든 시간들이었다. 딱히 죄 없는 남편에게 날카로웠고, 세상 가장 소중한 내 자식들에게 거친 소리를 내지르고 죄책감으로 패배감으로 넘어졌다. 가끔 오시는 친정 부모님이 집이 오방난장이라며 작은 푸념을 뱉으실 땐 가슴 깊은 곳에서 불같은 분노가 일었다. 산후 우울증? 육아 우울증? 그런 말은 듣기도 하기도 싫었다.



 

아이들이 내게 치댄다. 남편이 내게 기댄다. 독야청청이 즐거운 나는 피로를 느낀다. 나라는 사람은 주부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있는 게 그렇게 좋은데 결혼은 왜 한 거니. 세상이 이렇게 살기 험한데 어쩌자고 애는 둘이나 낳은 거니. 나라는 사람은 그냥 혼자 공부하고 일하고 그렇게 살았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내 시간을 충만히 보낼 때는 나도 꽤 너그러운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주부가 되어서는 안 되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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