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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의 쓸모
엄마의 책상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자리, 책상 예찬
by
조인
Jun 2. 2020
책상에 앉을 수 있었다면, 성공적인 하루다.
그러니 틈이 나면 가급적, 책상에 앉으려 한다.
책상에 앉아 꼬물꼬물 가계부를 적어 나간다.
딱히 채울 것 없더라도 소소한 일정들을 달력에 체크하며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본.다. 일기를 끄적이고 힘주어 밑줄을 그어가며 책도 읽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육아와 살림의 스위치를 과감하게 내리고,
밀도 있게 나의 시간을 채운다.
나를 보듬고 삶을 다듬으며
비로소 일상은 최적화된다.
다른 비법이 없더라.
책상에 앉는 시간,
하루를 놓치면 아쉽고
그 이상 놓치면 삶은 산만하다.
공부하던 시절에도 일하던 시절에도
공부보다 일보다 책상을 좋아했던 것 같다.
책상이 좋아 좀 더 공부하고
책상이 좋아 좀 더 일하고 살았다
.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나선
책상이 더 좋아졌다.
아이들에게 허용하고 싶지 않은 집착이 일고,
남편과도 가급적 공유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나는 내게 집중할 수 있다.
아이들을 향해, 살림을 향해 후룩 옮겨간 삶의 중심을 다시
나로
가져오는 시간이다.
아이를 키우는 지긋지긋한 일이
고귀한 사명이 되고,
살림을 돌보는 건조한 일상에 생기가 돋는 건,
이 시간이 주는
신비
다.
그러니 기진맥진 등산길을 오르다가 들르는 베이스캠프처럼, 이곳에 들러 날마다 삶을 갈무리하고 정비한다.
오늘도 책상에 앉는다.
아이들에게 공간을 내어 주느라
점점 작아지며 주변부로 밀려나는 책상이지만
내겐 가장 성스러운 곳이며, 이곳만큼은 정리도 미루지 않으려 애쓴다.
글을 읽고 글을 쓰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 고민이,
연구를 멈추지 않은 학자의 생명력처럼
다시 나를 살게 한
다.
지극히 이기적인 내게 엄마의 희생을 설득한다. 공부와 일과 맞바꾼 살림의 가치를 읽는다
.
독립적이며 혼자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 내게
아내로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조
용히 들여다본다.
pixabay
소파에 편하게 기댄 채로는 얻어지지 않는,
몰입의 즐거움을 누린다.
잠들어가는 감각을 흔들어 깨운다.
논문을 완성해야 했던 시절의 비장함으로 틈을 내어 책상에 앉는다.
작가가 널린 시대에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있을까를 고민하며, 단절된 경력으로 쓰라린 마음을 추스른다.
책상에 앉아
일상의 스위치를 내리고
나와 온전히 마주했다.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고 살림도 없는 사람처럼.
홀로 존재하는
시간을 통해
다시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되는 것 같아.
그러니 오늘은
책상 예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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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삶의 호환. 글이 고여 글을 씁니다. 지금은 아마도 혹독한 '마흔앓이'중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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