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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Sep 28. 2022

오랜 싸움_허무와 권태

인생 리모델링, 될까? 6

아이의 빈뇨 증상이 걱정되어

병원에 데리고 갔다

내 병이든 아이의 병이든, 병원 가는 일은 자꾸 회피하게 된다

미루고 미루었지만 절로 좋아지지 않으니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도 아이들은 바글바글하고

소아과의 조명은 내가 원하는 만큼 밝지가 않아

가뜩이나 침침한 나의 시야는 답답해졌다

후딱 진료를 보고 나가고 싶은데

대기 시간은 길고

수액을 꽂고 지나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내 아이도 잔뜩 긴장을 한다




자꾸 픽픽 쓰러지는 마음을 붙들기 위해

애쓰는 시간들

오늘도 가족들을 내보낸 후의 홀가분하고도 헛헛한 시간이

권태가 되어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면

바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잔뜩 어질러진 아이들의 방을 치우고

한 줌의 쓰레기를 골라냈다

얇은 이불 세 개를 빨아 말리고

헝클어진 옷장의 옷들을 다시 개켜 정돈하고

움직이며 에너지를 일으키는 상황 속에서

조금은 힘이 났고

여전히 조금은 마음이 허했다

성경을 펼쳐 읽다가 마음이 몽글해지는 에세이도 읽다가 밥도 차려 먹었다

작은 수술을 끝낸 친정아빠의 안부를 확인하기도 하며 그렇게 나의 시간이 지났다

 

활력이 일다가 허무와 무력으로 사그라드는가 싶다가

더 이상은 무너지지 않겠다는 이 날들에 대한 결단을 붙들고

다시 애를 쓰는 시간이 반복된다




허무라는 단어를 알기 전부터도

그러니까 10대를 갓 넘어선 즈음이 아니었을까

해질 무렵이면 마음이 먹먹하고 슬퍼왔다

그걸 허무감이라고 이해하고 표현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때 그 감정은 마흔을 넘어선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그런데 병원에 가는 날이면

혹시 아이가 어떤 병이 생겼나 긴장하고 걱정하는 순간이 올 때면

허무함이니 무력함이니 상실감이니 하는 감정들이 스윽 걷힌다

애써 걷어내려 할 땐 안개처럼 연기처럼 다시 뿌옇게 일던 그것들이 말이다


갑자기 아이가 입원을 하게 되고

병원에서 8일간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병원에 갇혀 작고 어린아이 곁에 머무는 동안

나는 위경련으로 쓰러질 것 같은 몸을 보조 침대에서 버텨내야 했다

그 시간을 보내며 나는 일상을 살 수만 있다면 그게 구원이라는 걸 알았다

내 집을 자분자분 치워대며 아이들을 그럭저럭 키워내면 되는 거지

내가 뭘 더 바라고 사는 거냐며 삶에 대해 겸손해지는 시간으로 푸욱 담금질을 당했달까

퇴원 후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시덥잖고 권태로운 나의 일상이  격한 감사와 감격으로 다가왔던 기억

...

다행히 아이는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잔뜩 긴장했던 아이도

더 긴장했던 나도

가벼워졌다

...

애써 더욱 대면하고 기꺼이 싸우는 시간들 속에서

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을 싹 다 뿌리 뽑자는 비장함은

어쩌면 틀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일부를 도려내겠다는 무모함일 것이다  

허무와 상실과 잦은 패배감들은

아무리 잘라내도 다시 생겨나 커지고 작아지고를 또 반복할 것이 뻔하다

그러니 이것들은 자알 다루며 이것들과 함께 살아갈 궁리를 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싹 치워놓은 집안이 금세 다시 흐트러지고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삶의 속성이란 게 다 이러한가 보다

싹 정리해 놓은 마음은 금세 다시 흐트러지고 먼지가 쌓인다

흐트러진 집안을 또 정리하고 먼지를 머금은 바닥을 또 닦아대며 삶이 지속되는 것처럼

마음도 그리할 일이다

그렇게 마음이 삶이 지속하는 거구나

 

*

삶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때

가족들이 집에 더 이상 발들이지 않을 때

집은 더 이상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고

쌓이는 먼지를 닦아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집은 '죽은'집이 되겠지

매일 마음을 치우고 집안을 치우고 하는 이 일들이

결국 내가 그토록 추구하는 삶의 본질의 일부이거나 혹은 그것을 이루는 기반이거나

혹은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오늘은 자부심을 갖고 집안을 치우고

자긍심을 갖고 마음의 어둠을 다뤄주고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이룬듯한 성취감을 취해보려 한다

뜬구름을 잡으려 허우적거리는 대신

바닥에 두 발을 단단히 딛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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