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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Aug 29. 2019

엄마의 글쓰기

소소하게 그러나 악착같이 나의 시간을 쌓는다

쓰는 시간 만큼은 온전한 나이고 싶.

고풍스러운 책상에 앉아

짙은 커피향에 취해 글을 쓰고 싶다.

향초도 좋고 잔잔한 조명도 좋다.

옅은 배경 음악까지 깔아준다면 더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출처 pixup

그렇게 우아하게

나의 글자리를 펼쳐 나가자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시 나의 본모습을 일깨워주며

더 투명해지라고 나를 다그치는 듯하다.

일찍 일어나 시간을 확보해도

문을 삐끔 열어 놓고

아이의 칭얼거림에 대비해야 한다.

아이가 칭얼거리면

완전히 잠이 깨버리기 전에 들어가

달래고 물을 먹여 다시 재워야 한다.

조마조마한 미라클 모닝을 연다.

오늘은 결국 애가 깨버렸다.

머릿 속은 쓰고 싶은 것들로 가득한데 절망이 온다. 마음을 다잡는다.

다행히 아이가 다시 잠든 듯 했다.

살금살금 기어 나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시 글 앞에 앉는다.

음악은 필요 없다.

애가 깰까봐 조용히 쓴다.

커피도 필요 없다.

그냥 물 한 병 놓고 쓴다.

커피 내리다가 애가 깰 수도 있고,

그 시간도 아껴야 글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역류성식도염이 재발하지 않게

속이 편한 식사를 해야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그냥 눈에 보이는 편의점 패스츄리를 뜯어

들고 들어왔다.

이따가 제대로 먹으면 된다며 일단 빈 속만 채운다. 애 키우는 사람의 우선순위라는 게

이런 거 아니겠나.



글은 진실되다. 솔직하다.

투명하게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비춘다.

아무리 진한 메이크업으로 가린 들 나는 나다. 엄마라는 이름을 떼어 버린 나라는 로망은

이제 글렀다.

엄마의 존재를 떼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얄팍한 자존심 한 줌 정도?

엄마라는 책임감, 

엄마여서 내 안에 피어난 한 움큼의 사랑,

나는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를 키운다는 애써 구겨넣은 자부심  조금.

이것으로 채워진 현재의 나를 부인하고

뭔가 더 나은 나 자신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분열되었다.


존재를 가난하게 하는 자기부인을 멈추고,

내가 엄마임을 받아들였을 때

나의 존재는 정직해졌다.

무엇을 향한 고갈인지도 모른 채 허걱대던 몸부림도 안정이 되었다.
 
삶의 풍성함은 이런 것 아닐까.

수고스러우며 때론 지긋지긋하기도 하지만

나의 존재는 홀로 독야청청하던 시절보다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그걸 인정하고나서부터 나는 나의 글쓰기 소재가 고갈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 대해서만 집중할 때,

나의 본질을 헤친다며

아이들의 존재와 살림의 존재를 벗어두려 할 때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한계가 있었다.

관념 속에 갇힌, 실체는 없는 글이랄까.

그러나 내가 나의 존재에

엄마의 자리와 아내와 자리와 살림의 자리

그 모든 것들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 주었을 때,

나는 끊임 없이 살고 끊임 없이 쓸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것들에 대한 오만한 삶의 태도가

별 것 아닌 것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으로 바뀌니, 사랑을 시작한 청춘처럼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

모든 존재와 모든 사물이 글에 담고 싶을 만큼 반짝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더 미숙했던 시절엔,

글 한 편 맘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 절망스러웠다.

'나의 글'을 쓰지 못하는 갈증과 절망이

돈 못버는 무력함이나

사회로부터 도태되어가는 것 같은 불안함보다

힘든 나였다.

'나의 글'이 아닌  '엄마의 글'을 쓰자고

마음을 바꾸고 나서,

몸에 맞는 옷을 찾은 듯 편안해졌다.

그 편안함으로

이 치열한 시간 전쟁과 상황 전쟁을 즐기며

글을 쓴다.

아이의 눈치를 보며 살림의 눈치를 살피며, 소소하게 그러나 악착같이  나의 시간을 쌓는다.

이 시간이 쌓여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까.

어디든 즐길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이 겸손해졌다. 나의 존재가 단단해졌다.

그러니

엄마, 한 번 살아볼만하다며, 밥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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