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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림 Apr 27. 2020

우리집 앞에는 전철이 지나는데

2020년 4월 27일 월요일

날씨 : 비가 오려고 하며, 까마귀가 울어 뭔가 흉흉하고 음산해

기록 : 야림



지난 3월 15일, 계획대로라면 나는 런던 뽈의 집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두눈으로 직접 뽈의 방을 둘러보고,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바베큐 냄새나 바람에 나부끼는 빨랫감들, 잘 치지도 못하는 기타를 튕기는 한 사람의 손을 그저 바라봤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가지 못했고 그의 방을 이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통해 슬며시 엿보는 정도로 만족해야했다. 그런 한편 뽈의 글을 읽고 있자니 집에 있는 책 하나가 번뜩 떠올랐다.



11월 초가 되어 밤이 무척 길어지며 겨울로 접어들 무렵이면 해마다 울새 한 마리가 나타나 정원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강기슭을 독차지한다. 그즈음이 되면 유독성의 어렴풋한 계절성 우울증이 슬며시 찾아와 희미한 구름처럼 주변을 감돌다가 마침내 나를 집어삼킨다. 그리고 짓누른다. 거의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버거워지다가 차츰 진짜 슬픔으로 변한다. 그러면 무슨 일거리든 찾아내야 한다. 시간을 보내거나 잊을 만한 소일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파스칼 키냐르,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중에서 



글 앞머리의 '11월 초'를 '코로나'로 바꾸면, 지금의 내 상황이랑 일치한다. (물론 우리동네에는 울새도 없고, 나에게는 정원도 없지만) 일기를 함께 나누며 나는 나를 소개하는 짤막한 글에 이렇게 썼다.  DNA 전부 역마살로 되어있는  알았는데 의외로 집순이 DNA 있었음을 코로나시대 속에서 발견. 그러나 다시 근황을 추가하고싶다. 집순이 DNA 찾았으나 한달 여만에 소실이라고. 집에 있는 시간이 하루 24시간의 전부가 되었을 때, 처음에는 이래저래 바빴다. 늘어지게 늦잠도 자보고 밀린 영화도 보고 삼시세끼 맛있게 차려먹고 설거지도 하느라. 그래서 집순이들이 더 바쁘다고 하는 거구나 살금살금 알아갈 무렵이었다.

그러나 자발적 집순이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일단 다르게 적용되어야했다. 현재 일본은 자숙과 록다운이 겹쳐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외출을 자제하는 한편 강제적인 록다운이 발령된 상태다. 대부분의 가게가 임시휴업 중이며, 영업을 하는 경우도 대부분 테이크아웃 위주로 영업하고 있기 때문에 나가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달리 없다. 그러니 자의든 타의든 내게는 길어야 보름정도면 충분할 집순이 생활이 첫 일주일을 넘기고, 일주일이 보름이 되고, 보름이 스무날이 되니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한도 끝도 없이 늘어져 내가 녹아 흘러내릴 것 같았다. 게을러질대로 게을러진 생활패턴, 타인과의 접촉 일절 없음 .. 불안을 넘어 이러다 정말 우울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나마 최근에는 동네친구 H와 심야산책을 하는 덕에 바람도 쐬고 직접 만나 친구랑 이야기도 할 시간이 생겨 조금은 나아진 것 같기도 하지만, 커피를 흘려 커피색으로 물든 셔츠처럼 우울감이 내게 얼룩져버렸다. 도통 그 얼룩이 가시질 않는다.




뽈의 글을 따라 문득 나도 베란다창 밖을 내다봤다. 우리집 앞으로는 매일 전철이 지난다. 정원은 없지만. 처음 집을 구하려고 이 동네에 와서 이 집과 만났을 때, 엄마랑 나는 엄청난 굉음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외국인에게 집을 임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둘러본 집 중에는 이 집이 가장 조건이 좋았다. 나를 안심시키고 싶으셨던 것인지 엄마는 "그래도 혼자 사는데, 이런 소리라도 없으면 너무 적적하지. 차라리 이게 더 괜찮을거야, 그치?"라며 괜한말을 덧붙이셨다.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서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다. 아무 소리도 안 나고 고요한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괜히 심통도 났다.


글을 쓰는 지금도 시도 때도 없이 전철이 지나는 소리가 난다. 철길 건널목에는 전철이 지나기 전 사람들의 통행을 막는 바리케이트가 내려오고, 땡땡땡 격렬하게 경보음이 울린다. 때로는 한쪽에서만 전철이 지나기도 하고, 때로는 양쪽의 전철이 마치 서로 부닥칠 것처럼 질주한다. 전철이 지나는 사이사이로 내가 틀어둔 음악이 같이 섞이기도 하고 음악이 아예 안들리기도 한다. 전철의 경적소리와 묘한 합주를 이루기도한다. 이제는 정말로 이 다양한 소리들이 없으면 나는 어색하다.



심각한 태풍이 지난 다음날도, 지진이 있던 아침에도 어김없이 전철은 달렸다. 그리고 그 전철소리라도 바깥에서 들려오면 안심이 된다. '그럼에도 다들 살아가고 있구나, 조용히시끄럽게 움직이고 있구나' 하고. '나도 힘내야지' 하고. 그러니 이제 나는 전철이 지나는 우리집이 좋다. 살아있는 것 같아서 좋다. 어쩌면 이 소리마저 없었다면 더한 유독성 우울의 얼룩에 짓이겨져 나는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이 소리가 평소와 다름없이 내귀에 들리는 것에 마음 깊이 감사한다.  








언젠가 우리집에 놀러온 S는 전철이 지나는 우리집을 보며 한 영화를 알려주었다. <블루스 브라더스>라는 아주 오래된 영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좁아터진 방은 기상천외하다. 좁지만 질서있게 배치된 침대와 냉장고, 그리고 작은 식탁을 창가에 배치한 것마저 치밀해서 짜릿하기까지 하다. 캬, 민트색 벽지와 거기에 붙은 흑백사진들의 조화는 또 어떻고. 그리고 그의 집 밖으로는 하염없이 전철이 달린다. 마치 액자처럼 줄곧 전철의 옆면이 창을 가득 메운다. 잠든 형제를 옆에 두고 창밖을 바라보는 엘우드의 시선은 철길과 그 위를 달리는 전철로 향해있다. 영화의 일부분이고 그의 집이 영화가 전개되는 주요 장소는 아니지만 여느 장면보다 유독 이 집의 풍경만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역시 나는 남의 집에 관심이 많은 모양..)


오늘은 야림집과 함께 블루스 형제의 집에도 방문해주기를.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분들의 집 이야기도 들려주시길.



*어제 마침 문어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신승훈이 1990년에 데뷔했다느니, 피노키오 1집은 1991년에 나왔다느니,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김건모)가 1992년에 발매되었다느니... 우리와 시대를 같이 하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블루스 브라더스> 또한 1991년에 개봉했다.



잠들어버린 형제를 곁에 두고 창밖을 바라보는 엘우드
집에 오자마자 턴테이블로 노래를 트는 당신, 완벽해요 선곡은 심지어 DE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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