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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ug 10. 2023

최여사의 일기

늙어가는 법



  어린이집 방학 시즌이다. 찬이와 초아도 방학을 했단다. 주말부터 다음 주말까지, 그 중 3일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기회를 주겠단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설렌다. 초롱초롱한 눈빛, 오물거리는 작은 입술, 작은 몸짓에도 깔깔대는 순수한 영혼들이다. 하지만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손주들이다. 잠드는 시간을 빼고는 지치지 않는 열정을 한껏 펼친다. 보는 것마다 다 신기하고, 가는 곳마다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만지지 못하게 구석구석 숨겨놓은 물건들은 보물찾기하듯 찾아낸다.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바닥난다.


  일요일 오후, 아이들은 육아휴직 중인 아들이 데려왔다. 며느리는 직장 때문에 동행하지 못했다. 데려다주고 얼굴이라도 볼 줄 알았는데 버스를 타고 돌아갈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시어머니 눈에는 그 모습이 거슬렸나보았다. 당신 아들은 동부인 하지 않고는 절대 본가에 가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까지 딸려보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넌지시 손짓으로 불렀다. 당신 손주 낯빛이 좋지 않다며 손부가 동행하지 않은 데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다며 알아보란다. 또 걱정 공장이 가동되었나보다. 당신 생각에, 눈에 약간만 거슬려도 걱정이 시작되고, 그렇게 시작된 걱정은 혼자만의 상상을 덧붙여 크게 불린다.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채 걱정을 불려나가다 종국에는 크게 자란 걱정으로 상심하여 드러눕는다. 직장 때문에 손부가 함께 오지 않았다는 설명에도 근심 가득한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부르는 소리에 반응한 아이들이 쪼로로 달려갔다가 멈춰 섰다. 내가 팔을 벌리고 부르면 함박 웃으며 달려와 안기는 걸 본 어머니는 당신도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방문 앞에서 멈춘 손주가 획 돌아서더니 방향을 바꾸어 내게로 달려왔다. ‘늙은 건 아이들도 싫은 가보다.’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 떨구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늙어서였을까? 늙은 것보다 젊음이 더 아름답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표정이다. 어머니의 주름 가득한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아니, 무표정으로 굳은 얼굴은 화난 표정이다. 달려가던 아이의 걸음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무서운 얼굴을 마주한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가 기거하는 방은 원래 아들이 사용하던 방이다.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인지 저녁 식사를 마치자 어머니는 이불이며 베개를 거실로 꺼냈다. 방주인이 왔으니 비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아이들이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통에 침구는 방해만 되었다. 더군다나 에어컨바람을 싫어 문을 닫아거는 어머니가 거실에서 잘 생각을 하다니 주지도 않은 눈치를 받는 모습에 짜증이 난다.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들어가시라 했지만 고집을 피운다. 왜 니들은 시원한 데 있고 나만 더운데 있게 하냐며 억지까지 부렸다. 


  세상의 뒷골목으로 내쳐진 느낌, 생명보다 더 소중한 자식에게서 멀어지는 느낌, 대접을 받고 있는데도 무시당하는 느낌, 살아있으나 아무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느낌 등이 지금의 어머니가 갖고 있는 감정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일상을 보며,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가늠한 것이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쓸쓸한 느낌들을 대신 감당하거나 해결해 줄 수가 없다. 내가 어떤 마음이건, 어떤 행동을 하건 어머니가 갖는 느낌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그 느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테니까.


  두 어머니를 모시는 동안 나는 늙는 공부를 했다. 늙어 외로운 건 당연한 것이며 자식들에게서 멀어지는 느낌은 오롯이 내 생각이라는 것. 그들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다. 잘 들리지 않고 발음도 어눌해 대화가 되지 않을 뿐이다. 귀찮아하고 짜증을 부리는 것은 내가 억지를 부리기 때문이다. 며느리 도리니 책임이니 하는 말들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들어도 눈도 꿈쩍하지 않을뿐더러 역효과를 내기도 하니까. 여든이나 아흔이 넘어가면 제발 아는 척 하며 타박하지 않기를. 이미 쉰이나 예순을 넘어선 며느리가 신부수업 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부양을 받는 처지라 눈치를 보라는 말이 아니라 그저 한 가족이면 족하다. ‘며느리 도리’라는 말은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나로 인해 자식들은 외식이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이제는 늙어 아무 힘도 없으니 어떤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되지 않음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굳이 말하지 않으면 모른 척하면 될 일이다. 나서서 걱정하고 다그치고 한숨 쉬는 일은 자식들을 더 힘들게 한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더 늙어도 다짐한 것들은 잊지 말고 실천에 옮겨야 할 일이지만, 어머니들을 보면 잊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매일 한 번씩은 다짐을 해야겠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란히 커피 잔을 기울이며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의 구름을 이야기하는, 구름을 떠미는 바람 이야기와 커피 맛을 칭찬하는 그런 일상이면 좋을 터이다. 가끔은 산책을 부탁하여 손잡고 골목을 거닐어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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