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하루를 살아내고,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삶과 낭만은 제법 거리가 있다. 알람 소리에 맞춰 아직 잠에 덜 깬 몸을 겨우 일으키고서 잠을 씻어낸다. 머리를 말리기 전, 너무 시끄럽지 않을까 싶어 화장실 문을 닫고 머리를 말린다. 수증기로 가득 찬 화장실에 찬물을 뿌리고서 화장실 문을 연다. 옷을 입고, 지난밤 식탁 위에 올려둔 지갑과 에어팟, 파우치를 가방 속에 쓸어 담으며 버스 시간을 본다. 십분 뒤면 버스가 도착하고, 다롱이 밥과 간식 두 개 정도를 챙겨주고서 강아지에게 인사를 건넨다. 다롱이는 내가 가는 것도 모른 채 정신없이 간식을 먹는다.
그 모습을 눈에 담고서 신발을 꿰어 신고 튕겨나가듯 현관 밖으로 나간다. 집과 회사는 두 시간 정도 거리이기에 늘 여유 있게 나와야 했다. 광역버스로 갈아타고서 그제야 숨을 고른다. 잠에 들 때도 있지만, 주로 눈만 감고 있다. 휴대폰을 보는 것도 피로해서 언젠가부터는 출퇴근 길에도 휴대폰을 잘 안 볼 때가 많다.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전철에 겨우 몸을 태우고 도착하는 시간을 확인한다.
출퇴근하는 내 모습은 누군가의 모습과 유난히 닮아 있다. 나는 그 속에서 생각이라는 걸 멈춘 채로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어느 날엔 눈을 감고 시야를 차단한다.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은 스쳐가도록 내버려 둔다. 그 생각들을 붙잡고 있기엔 너무 피로하고, 이미 지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낭만과는 거리를 둔 채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낭만을 떠올렸다.
낭만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은 그저 낭만으로 둔 채 영원히 이루지 못할 꿈처럼 남겨두고 있다. 어떤 삶이 낭만 있는 삶인지는 모르겠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지만, 그 마음먹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낭만은 사실 별게 없다.
유난히 날씨가 맑은 한낮에 다롱이와 함께 산책을 하는 일, 우리가 자주 걷는 산책길을 따라 걷다 곧게 뻗은 나무 밑 벤치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일. 초록잎 사이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온몸으로 누리는 일. 가만가만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가볍게 감았다가 느릿하게 뜨는 일.
좋아하는 색으로 엮어 만든 꽃다발을 화병에 꽂는 일, 무심코 들어간 서점에서 무심히 고른 시집을 펼쳐 한동안 읽는 일, 책꽂이에 좋아하는 책들이 늘어가는 일. 이불 속에 깊게 파묻혀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으로는 다롱이를 쓰다듬는 일.
지친 어느 밤엔 영화를 보며 와인을 마시는 일, 바쁘게 퇴근을 하던 와중에 길을 새서 좋아하는 위스키바에 가서 칵테일을 마시는 일.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채로 밤거리를 천천히, 느릿하게 걸으며 그 밤을 오래 기억하는 일.
별 것 없는 나의 낭만들을 실천하기도 전에 바쁘다는 핑계와 피곤한 생각들이 나를 가뿐히 짓누른다. 그 어떤 것도 해내지 못한 채 그저 내일을 살기 급급하고 오늘을 견뎌내기에 정신이 없다. 별 것 없는 나의 낭만들로 하루를 채우고 싶다. 오지 않은 미래와 불안한 미래 속에 웅크리고 있는 걱정들을 벌써부터 고민하며 그 답을 찾고 싶지 않다. 일어나지 않은 일 속에서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드는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다. 견딜 수 있는 몫만 견뎌내며, 나의 낭만들로 하루를 채워나가고 싶다.
이 별 것 없는 낭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