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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문 Apr 16. 2024

오해의 밤

어지러운 마음들 사이로 아직 물기가 남아 있다. 정리되지 않는 것들은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보면 해결이 될까 싶었고, 그렇게 내버려 두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가지 않을까 했다. 종잡을 수 없는 봄날 속에서 나는 내 마음도, 너의 마음도 모른 채 자꾸만 떠돌았다.

떠오르는 기억을 따라 걸을 때마다 물자국이 생겼다. 내가 걷는 방향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축축해진 것들을 밟고 서서 너의 물자국을 찾았다. 흩어지고, 번져서 저 물자국이 내 물자국인지 네 물자국인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네가 이곳을 걸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보다도 너를 생각했다. 무수한 밤 속에서 잠에 이루지 못한 어느 날엔 나를 탓했다. 나의 잘못을 곱씹느라 나는 꿈속에서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누군가에게 쫓겼고, 자꾸만 추락하는 꿈을 꾸었다. 너는 늘 나의 반대 편에 서서 그런 나를 바라봤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나 역시 네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나는 꿈속에서 번번이 죽을 뻔했고, 죽을 것만 같을 때 꿈에서 깼다. 잠에서 깨 너를 생각했다. 나를 바라보던 너의 눈빛을 떠올렸다. 눈은 모든 걸 말해준다는데, 너는 나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와 눈이 마주치면 내 속내가 들킬 것 같아 네 눈을 피한 적이 있다. 그럴 때면 너는 고집스럽게 내 눈을 좇았다. 내 시야에 가득 찬 너의 얼굴을 이제는 겨우 짐작만 해볼 뿐이다.


지나간 것은 어떠한 힘도 없었다. 함께 보고 싶었던 목련은 이미 저버렸고, 너는 대답이 없다. 쏟아지는 벚꽃 잎을 무심히 바라보던 어느 낮에 너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네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곱씹었다. 곱씹고 헤아리느라 모든 문장이 조각났고 나는 여전히 네 말의 의미를 찾으려 조각난 문장을 내 품으로 모았다. 벚꽃 잎은 무심히 내 발끝에 툭 툭, 떨어졌다. 봄과 함께 너도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저물어가는 것들을 저물게만 둘 수 없었다. 억지스러운 마음들이 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한동안 그 순간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어쩌면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속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에겐 네 잘못이 아니라고 잘만 말하면서 나는 단 한순간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못했다. 계속되는 자해 속에서 밤을 보내고, 새벽을 지새웠다.


오랜 불안을 끌어안고서 밤을 맞이했다. 지나간 것들을 오래 곱씹는 것도 버릇이 되었다. 내가 품을 수 없는 일들을 계속해서 품는 것도 나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 어떤 끝에는 누구의 잘못도 없으며 각자의 최선이 존재할 뿐이다. 그 최선을 받아들이지 못한 오해의 밤에는 나의 최선을 잘못으로 오래 착각하였다. 나를 탓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던 밤들이 분명 존재했다. 그 밤들이 결국에는 불안이 되어 내 곁에 오래 머물렀다. 여전히 나는 불안과 우울을 팔 양쪽에 끼고서 몸을 동그랗게 만다. 한순간에 그것들을 모두 털어낼 수는 없어도 이제는 그 밤이 모두 오해였다는 건 안다.


누구의 잘못도, 누구의 탓도 아닌 그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을 뿐이다. 목련이 지면 그 자리에 초록잎이 돋아나고 젖은 땅 위로 해가 비추면 땅이 마르듯. 그 당연함 속에서 애써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끝과 시작의 경계 속에서 너를 생각하고, 나를 생각하는 것. 그리고 때론 우리였을 것들을 떠올리는 것은 더 이상의 의미가 없음을. 무수한 오해의 밤을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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