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초록을 끌어 모아 너에게 주고 싶었다. 네 어깨에는 빛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 조각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시렸다. 시큰거리는 눈을 깜빡이자 너는 꼭 내가 우는 줄 알고 몸을 틀고서 나를 바라봤다. 네 어깨에 내려앉아 있던 것들은 너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인다. 너는 손을 뻗어 이름 모를 풀을 손 끝으로 스치며 버드나무의 유래에 대해 말했다. 바람 속에 흩어지는 너의 말을 눈으로 좇았다. 우리는 같은 말을 썼지만, 너의 말을 해석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견디기 어려운 마음과 마음 사이로 네 말이 흩어졌다. 너는 늘 그렇게 내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너를 따라 오래 걷고 싶었다. 이어진 초록을 따라 걷는 걸음 사이로 초록잎이 스쳤다. 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차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심히 초록잎을 밟고, 넓은 보폭으로 걷는 너의 뒤를 쫓으며 하고 싶은 말을 하나씩 잃어버렸다. 너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내 말을 놓쳤고, 너의 걸음을 좇기 위해 나의 시간을 등지고 걸었다. 쏟아지는 햇빛과 넘실거리는 나뭇잎의 그림자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일렁였다. 너는 내게 무슨 계절을 좋아하느냐 물었다. 뜨거운 햇빛이 온몸에 가시처럼 박히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바람이 불어오면 가볍게 식혀졌다. 여름을 좋아한다는 내 말에 너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마주친 눈동자 위로 너의 얼굴이 선명히 떠올랐다. 마주쳤다가 흩어지는 시선 사이로 집요하게 너를 좇았다. 너는 어떤 대답도 없이 초록잎 아래로 쏟아지는 빛을 무심히 바라봤다.
유난히 짙은 너의 검은 머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곧게 뻗은 하얀 목과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 바람에 따라 가볍게 흩날리는 앞머리를 너는 하얗고 가느다란 손으로 쓸어 넘겼다. 손가락 사이 사이로 머리카락이 미끄러지듯 스쳤다. 초록잎 사이로 번지는 햇빛에 눈이라도 부신지 한쪽 눈을 찡그렸다. 네 눈가에 작고 깊은 주름이 새끼손톱자국처럼 가볍게 그어졌다 금세 사라졌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꾹꾹 삼켜지는 말들과 함께 여름이 깊어져간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 열감이 여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떤 고백은 너무 낡아서 고전 영화 같고, 너를 따라 걷는 이 여름은 자주 돌려보고 싶은 낡은 테이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