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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문 May 11. 2024

계속해서 실패하는 것들

단순하게 그저 멀리 떠나고 싶던 밤, 나는 눈을 감고서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을 떠올렸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오히려 그 상상은 더 자유로웠다. 왠지 꼭 이럴 것만 같아.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상상은 잠들어야 하는 시간까지 놓친 채 그곳을 내 마음대로 채워 넣었다. 새로 생겨난 풍경들과 그곳에만 가야 마주할 것 같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건 내가 그곳까지 갈 수 있느냐였다. 오랜 핑계와 시간이 지나오면서 내 안에 자리 잡은 무언가는 자꾸만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익숙한 게 좋았고, 당연한 것들이 편안했으며 오랫동안 나를 둘러싸고 흘러가는 것들에 안정을 느꼈다. 단단하게 굳어버린 이 고질적인 마음속에서도 나는 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어날 수 있을 것도 같으면서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한때 나는 영국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가고 싶었고, 스물둘 여름에는 프라하에 가고 싶어 프라하에 관련된 글을 썼다. 프라하를 내게 알려준 사람은 내게 시를 알려주었고,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던 시를 나 역시 좋아하게 되었다. 스물다섯, 봄에는 나라에 가고 싶었다. 기약 없는 약속 속에는 나라가 있었고 그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해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른다.

스물넷 봄, 혼자서 처음 비행기에 올랐던 날을 기억한다. 낯선 하늘에서 느꼈던 고립감은 더욱더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낯선 거리와 낯선 언어가 들리는 이국의 땅에서 나는 가장 익숙하고 친숙한 것에 기대어 걸었다.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내 곁에 있던 익숙하고도, 친숙한 것은 더 낯설게 느껴졌다, 가끔은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이국의 언어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그러지고 얼룩진 마음들을 눌러 담으며 마지막 날엔 또 올게, 그땐 나라에 가자.라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서로 나누었다. 나라는 나에게 그런 기억으로 남았다.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채 나는 여전히 내가 머무는 곳에 고여 있다. 왠지 내가 고여 있는 곳은 아주 깊은 구덩이 같다. 두 발을 휘저으며 얼굴을 내밀고서 간신히 숨을 내쉰다. 언젠가부터 이곳은 내게 더 이상 편안하지도 안정적이지 않은 곳이 되었다. 그랬기에 계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짙은 외로움을 곁에 두고서 철저히 혼자이고 싶다는 환상을 품는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에서 어쩌면 나는 또 다른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간 혼자서 영국의 시골 마을도, 프라하에도, 나라에도 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속에서 나는 외로움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기르고, 불쑥 찾아온 우울에 깊이 머물러 있지 않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 나갈지도 모른다. 그 순간들을 위해 다양한 외로움과 다채로운 우울을 동그랗게 만들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굴러갈 수 있도록 각진 모서리를 조금씩 깎아낸다.

그것들이 내 속에서 잘 굴러가는 날이 오면 어느 봄날 하늘에서 느꼈던 고립감을 더는 슬프게만 기억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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