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프라이드 유니버스 인터뷰 ep.2
글 이철승
사진 이철승
민들레 홀씨가 되고 싶었어요.
가벼운 바람을 타고 먼 곳으로 떠나가
새로운 땅을 찾은 뒤 뿌리를 내리고 새 삶을 시작하는 거죠.
5년 동안 일하던 대기업을 그만두던 날, 윤지비 님은 민들레 홀씨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기대와 열정으로 시작한 사회초년생의 첫 직장이었지만, 직장은 곧 숨쉬기조차 힘든 ‘지옥’이 되었고 그러한 직장 환경에서 몇 년을 참으며 버티는 동안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와 같은 마음의 질병만 늘어났습니다.
윤지비 :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소용없었어요.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질병의 원인을 제거해야 했고, 그렇다면 방법은 퇴사밖에 없었어요. 회사가 질병의 원인이었으니까요.
윤지비 님은 퇴사하는 날부터 ‘퇴사일기’를 영상으로 남겨 놓기 시작했습니다. 퇴사 1일 차, 2일 차, 1주일 차, 그리고 보름, 한 달, 그 이후로도 시간이 흐르며 영상이 늘어나자 ‘나살이 윤지비’ 유튜브 채널을 열고 자신의 영상일기 및 우울증 극복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윤지비 : 지금 영상을 다시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제 표정이 점점 달라지는 게 보여요. 영상일기 자체가 치유의 방법이기도 했지만, 이 기록들이 제 우울증의 기록이 아니라 제 치유의 과정을 담은 기록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지나고 있던 고통의 감도에 비한다면, 영상 속에서 윤지비 님은 상당히 담담한 톤으로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드라마틱한 구성과 재미있는 연출도 없는 영상들인데도 윤지비 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윤지비 : 특별히 보여줄 것도 없었고, 그냥 제 감정변화를 담았을 뿐인데, 저와 비슷한 경험을 겪고 있는 분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분들과 댓글로 소통을 했는데, 자기도 비슷한 일을 겪었고 너무 힘든데 제 이야기를 들으니 위로가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위안을 받았어요. 어느새 서로가 힘이 되고 서로가 위로가 되어 주고 있더라고요.
매드를 둘러싸고 있는 경계
윤지비 님은 매드프라이드에서 프라이드 마이크를 잡고 다시 한번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윤지비 : 처음 매드프라이드를 알게 되었을 때, 취지가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저조차 ‘매드’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안티카 대표님을 만났을 때 ‘매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일상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작은 경험들’을 모두 ‘매드’의 범주 안에 포함한다고 하더라고요. 심각한 우울증은 물론 잠깐의 우울감을 겪는 경험도 포함되는 거죠. 그 얘기에 너무 공감되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인 고립감과 경제적인 어려움 겪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코로나 블루’가 널리 알려진 일반적인 사회적 현상이 되면서 우울증이 특별한 사람들만 겪는 특별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윤지비 : 코로나19로 인해 감정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계기로 ‘매드’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과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경계가 또렷하고 견고했다면, 지금은 그 경계가 살짝 낮아지고 흐트러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매드프라이드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매드’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는 계기, 경계하는 시선을 공감하는 시선을 바꿔주는 역할이죠.
인지에서 치유로 넘어가기 위해
윤지비 님은 비슷한 이야기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셀프치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함께 감정을 기록하고 이야기하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윤지비 : 코로나19로 셀프치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분들이 많이 늘었어요. 그분들과 대화를 해보면서 느낀 게, 사람들이 ‘코로나 블루’ 이야기가 많으니까 자신의 상태가 우울증이라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이런 감정에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는 거예요.
코로나19 시대에 일어나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우리가 기능적으로 감정적으로 아직 준비가 부족했던 탓일까요?
윤지비 : 병원에 대한 두려움도 여전하고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나 힘들어’ 이 한마디하기 어렵다고 해요.
혹시, 힘들다는 누군가의 고백에, ‘엄살 부리지 마’, ‘다 힘들어, 너만 힘든 거 아냐’, 이렇게 응대한 적이 있나요?
윤지비 :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과 자신의 사이에 확실한 경계를 그어놓는 자세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에요.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직장에 다니기 전에는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활달하고 잘 웃는 성격이었어서, 나중에 제가 우울증에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느낀 적이 있나요? 그때 그 경계는 누가 세운 것이었나요? 나는 경계를 쌓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허물려는 사람일까요?
윤지비 : 우리가 살면서 굉장히 다양한 감정을 느끼잖아요. 저는 그 수많은 감정 중에 잘못된 감정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는, 사회는,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자꾸 구분하려고 하잖아요. ‘좋은 감정’은 드러내도록 권장하고, ‘나쁜 감정’은 억제하고 무시하도록 훈련을 하죠. 그러한 태도가 우리의 정신건강을 더 악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우리 삶에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감정의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느덧 퇴사 후 3년, 윤지비 님의 민들레 홀씨는 새로운 땅에서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민들레 홀씨를 떠오르게 할 바람을 살랑살랑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 3회 매드프라이드가 온라인 가상 공간 게더타운에서 개최 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2021 매드프라이드 유니버스
일시 : 2021년 10월 10일
장소 : 매드프라이드 게더타운
매드프라이드 공식 홈페이지 : https://ffa.co.kr/madpride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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