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택되지 못한 시안들
아이콘 작업은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단순화를 시키느냐’에 따라 모습이 많이 달라진다. 창문을 몇 개 그려야 좋을지, 창문의 창틀이 있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의 굵기는 어느 정도로 정리하면 좋을지, 면을 선으로 표현하면 좋을지 등등. 버려내고 버려내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게 만드는 일.
이런 아이콘의 매력 때문인지 우리에게 아이콘은 친숙하다. 수많은 아이콘들이 잔뜩 들어있는, 이제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휴대폰에서부터 우리 생활에 필요한 대중교통, 마트, 각종 엔터테인먼트 시설에까지 형상을 간단하게 표현한 그림으로 그것 혹은 그 장소를 인식하는 일은 그만큼 우리에겐 굉장히 익숙하다.
특히나 단순해보이는 이 아이콘 작업은 보기엔 간단해 보이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화 하기까지의 과정 속엔 얼마나 많은 선택과 집중, 디테일과 생략 등을 거쳐야 하는지 모른다. 어쩌면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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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작업에 필요한 이미지를 만들때, 그 작업의 특징점을 찾아 하나의 그래픽으로 표현할 때가 있는데 아이콘 작업은 그 중 하나다. 직접 스케치 과정을 통해 직접 그려내고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과정은 아직 나에겐 조금 어렵긴 하지만 다행히 생각보다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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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디자이너가 그림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다. 기본 베이스는 있겠지만, 무언가 떠오르는 이미지를 손으로 직접 스케치해서 다시 컴퓨터 그래픽으로 옮겨내는 과정은 손이 빠른 내가 가장 더뎌지는 부분이다. 이 과정이 나에겐 제법 길다. 바꿔 이야기하면, 정해진 일정한 시간 속에 이 과정이 잡아먹는 시간이 상당하다. 그래서 항상 한번씩 고민하는 부분이다.
작업 시간을 위해 이런 과정이 필요 없는 디자인 컨셉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공용화된 무료 소스를 활용해 시간을 단축시킬 것인가. 고민은 하긴 하지만 결국 늘 긴 시간을 고집한다. 작업 시간과 완성도가 꼭 비례하는것만은 아니지만, 머릿속에 그려진 확실한 이미지가 있을 때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려내야 하더라.
수많은 자영업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모습, 그리고 거대한 자본기업들 사이에서 고군분투 해야 하는 자영업의 모습을 표현한 이 작업은 안타깝게도 마지막에 컨셉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리지 못한 아이콘들이다. 처음에 전체적인 컨셉을 아이콘으로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는 편집자의 이야기에 각 장의 제목에 맞는 이미지를 아이콘으로 그려낼 생각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중간에 컨셉이 완전히 뒤바뀌는 바람에 사용되지 못했다. 나름 열심히 그리고 다듬어 만들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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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채택되지 못한 시안들을 보면 실리지 못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오랜 시간 공들여 작업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덕분에 즐겁게 작업했던 기억, 그리고 상상하고 스케치하며 그래픽으로 표현하려 애썼던 그때의 과정들을 다시한번 생각하고 되돌아보면 한편으론 뿌듯하고 애틋하다. 비록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한 작업들인데.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해주리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