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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Sep 19. 2020

그래도 제법 괜찮은 주말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그냥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즐겨보기


아침 공기가 차갑다. 얇은 잠옷 대신 도톰한 잠옷으로 갈아입어도 덥지 않은 날씨. 어느새 가을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올해 초부터 변해버린 무료한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계절의 변화가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 아, 오히려 계절을 격하게 맞을 수 있는 건가. 그렇담, 기꺼이 환영해주어야지.

커튼을 제치고 창문을 연다. 맑고 청명한 아침 햇살이 눈부시지만 그래도 좋다. 밀린 빨랫감을 모아 세탁기에 넣어 돌린 후, 주말 맞이 청소를 시작한다. 작년에 새로 장만한 물걸레 청소기가 제대로 실력 발휘하는 날. 3대 이모님(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은 우리 집에 없지만, 그래도 사실 아직은 괜찮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얻어내는 뿌듯함은 이모님이 주지 않을 테니.

미뤄둔 화분 분갈이를 하는 날이기도 한 오늘. 주중에 분갈이 재료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는데, 3개에 1세트인 화분을 모르고 2세트나 주문했다. 게다가 손바닥보다도 작은 화분인데, 화분 깔망은 20개가 한 묶음. 많기도 하지. 키우고 있는 필레아 페페 식물에 작은 자구들이 생겨서 따로 떼어낸 후 물꽂이를 해주었던 아이들을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귀엽다.

때마침 세탁실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 세탁이 다 된 빨래를 걷어와 건조대에 탈탈 털어 널었다. 제습기를 따로 켜지 않아도 뽀송뽀송하게 잘 마를 것 같은 날씨다. 별 것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나 날씨가 소중하구나. 다시금 계절의 소중함을 느낀다.


쪼꼬미 화분에 심은 쪼꼬미들.



청소와 빨래까지 모두 마친 기념으로, 카페라테 한 잔을 만들어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았다. 참, 어제 노트북 업데이트를 하지 못했는데. 다시 일어나 작업실에서 노트북을 가져 나왔다. 업데이트 시작. 커피를 마셔볼까 하다가. 맞다, 전날 클라이언트가 부탁한 사진 요청이 생각났다. 사소한 부탁이 참 많은 클라이언트가 얄미워 죽겠다가도 금세 또 ‘그러려니’ 하고 만다.

언젠가 한번 포트폴리오로 인스타그램에 올리려고 연출컷을 찍은 김에 그냥 보내드렸더니 그 뒤로 부탁이 자연스러워졌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조차도 나에겐 결국 공들여야 하는 ‘일’인데. 보내지 말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뒤늦게 들기도 한다.

클라이언트측에서 연출된 합성 이미지를 요청했지만, 사실 합성을 위해 찾아야 하는 무료 이미지 소스 구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유료는 많지만, 당연히 무료는 어렵다. 무료 이미지 사이트에서 수십 페이지를 넘겨야 겨우 하나 나올까 말까. 이러다 이미지 찾다 하루 다 가겠네.

그냥 집에 있는 소품을 가지고 요리조리 연출을 시작한다. 디지털 노마드 컨셉 하나와, 카페 컨셉 하나. 적당히 집에서 다 연출할 수 있는 컨셉이다. 실물이 있을 땐 실물을 그대로 담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어쩌면 사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몇 컷 찍은 사진을 업데이트가 끝난 노트북에 옮겨 색감을 다듬었다. 좋아, 훌륭해. 마음에 들어. 혼자서 만족해하고 있는 사이, 아~까 만들어 둔 라테는 이미 식어버린 지 오래. 아.. 아쉽다.




피해 의식까지 있었던 프리랜서 초창기엔, 주말에 일하게 만드는 클라이언트들이 그렇게 싫었다. 금요일 오후에 주면서 다음 주 초에 볼 수 있는지를 묻는 심보가 너무 못돼보였다. 꼭 그래야만 할까? 왜 자기만 생각하는 걸까? 내가 왜 그렇게까지 맞춰줘야 하는 걸까? 나한테만 왜 이럴까? 하는 생각들 때문에.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덩달아 그런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깎아내리기까지 했다. ‘내가 만만해 보이니까 그런 걸 거야.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라고, 내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고 나를 있는 대로 부리는 걸 거야.’ 라면서. 결국 이것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순전히  생각이다.

결국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  같아 잔뜩 화가 난다는  역시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 이럴 땐 내가 모순덩어리 같다. 마음속에 늘 가지고 있는 ‘주말엔 절대 일 하지 않을 거야!’하는 마음도 결국 ‘절대’라는 단어를 이용해 내 위주로만 생각하려 한 건 아닐까.

계획을 해도 계획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 요즘 세상이라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그냥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즐겨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면... 주말 맞이 청소도 하고 미뤄둔 분갈이도 하고, 클라이언트의 부탁도 마음에 드는 결과물로 만들어냈으니, 오늘은 그래도 제법 괜찮은 주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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