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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Sep 25. 2020

프리랜서에게 금액 협의는 언제나 어렵지만

하다 보면 늘겠지 뭐.



언제나. 괜히. 심장 떨리는 금액 협의.


클라이언트: 페이지당 0원에 진행 괜찮으실까요? 협의는 가능합니다.
나: 아, 혹시 상향조정이 가능하신가요? 지난번과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서요.
클라이언트: 0원까지는 상향조정이 가능할 것 같은데, 검토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나: 네, 검토해보시고 연락 주세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통화를 끝마치고 하루가 지났다. 협의가 가능하다고 해서 다시 제안을 던지긴 했지만, 그 찰나에도 나는 그냥 바로 진행한다고 할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정말이지 곤욕의 시간이다. 아.. 정말 그냥 한다고 할걸 그랬나, 어차피 협의해도 큰 차이는 없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누군가 ‘무슨 디자이너가 자존심도 없냐’고 쏘아붙인다고 한다면 뭐.. 웃고 말지. 그게 자존심의 문제인가. 어쨌든 지금 나에겐 나를 기억하고 다시 의뢰를 했다는 게 더 중요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프리랜서에게 금액의 문제는 굉장히 민감하고 중요하다. 내가 아직까지 겪은 바, 클라이언트들은 대부분 손이 빠르고 가격도 싼데 다루기 쉽고(?) 퀄리티 높은 작업이 가능한 디자이너를 찾는다. 갑의 입장이 한 번도 되본 적 없는 내 입장에선 정말 어이없고 양아치 같은 경우 같다고 생각하지만, 자본주의 세상에 대부분이 그렇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나 싶다. 아니 근데 애초에 그런 디자이너가 세상에 존재하긴 할까?

직장인에게 연봉이 그를 나타내는 것처럼, 프리랜서에게도 마찬가지다. 결국 비용 혹은 단가가 내 몸값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직장인은 매년 연봉협상이라도 하지, 프리랜서는 그게 쉽지 않다. 한번 단가가 결정되면, 웬만해선 그게 바뀌지 않는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3년 전에 했던 단가와 지금 하는 단가의 차이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내가 가만히 있으면 그냥 예전 금액 그대로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클라이언트다.

그래서 조금의 금액이라도 협상은 필요하다. ‘그냥 주시는 금액대로 받겠습니다’하고 넙죽넙죽 받기엔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긴 나는 5년 차 프리랜서 디자이너다. 클라이언트의 제안에 타당한 이유(?)를 들어가며 역제안을 하기도 하는 베짱이 조금씩 생긴다.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금액에서 머릿속으로 내가 정한 최소한의 금액을 생각하며 다시금 제안한다. 내가 제안한 금액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미리 정해둔 범위 안에 들어오면 나에겐 OK다. 쿨하게 인정, 그리고 그 작업은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마무리한다. 그게 결코 자존심을 굽힌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협의’의 과정을 거쳤고, 그에 대해 ‘합의’를 한 것이기 때문에.

물론 그렇다고 내가 자존심이 없다는 건 아니다. 무리한 금액을 요구한다거나, 디자이너를 단순 도구 따위로 생각하는 무례한 클라이언트의 제안에는 처음부터 정중히 거절한다. 1~2년 차 때 그런 무례함을 들어가면서까지 일했던 경험을 비춰보면, 결국 여러모로 나만 손해였다. 소위 값을 후려치는 클라이언트는 다음엔 더 후려치려 든다. 애초에 디자이너를 도구로 생각하는 클라이언트에게 상대방의 존중이란 없더라.






글을 쓰고 있는 사이 아까 그 클라이언트에게서 연락이 왔다. 협의가 되었다. 단가로 보면 얼마 차이가 안 나는 것 같지만, 전체로 보면 약간의 변동이 생겼다. 이유가 타당했고, 그게 통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며 협의를 시도하고 그게 통했을 ,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그 말을 던지고 나서부터 다시금 답변이 돌아올 때까지도 나는 수없이 고민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기분이 좋다. 꼭 금액 때문이라기 보단, 스스로 대우받는 느낌이 들어서.

게다가 이번 작업은 내용도 마음에 들고 너무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신난다. 이번이 클라이언트와의 두 번째 작업이 되겠다. 내가 적극적으로 대놓고 영업은 못하는 편이지만, 디자이너는 결국 과정부터 마무리까지가 포트폴리오다. 포트폴리오로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지. , 그렇다면. 이번에도 좋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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