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5년 차가 되어보니.
나의 주 클라이언트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규모 회사다. 10명 미만의 작은 출판사, 1인 출판사, 작은 가게 사장님, 그것도 아니면 재단법인, 사단법인… 그들의 생존을 잠시 걱정할 만큼 운영이 어려운 곳도 가끔 있다. 아주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다. 내 코가 석자인 주제에.
그러다 보니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그들의 어려움을 나에게 어필(?)하며 디자인 비용을 생각보다 놀라울 만큼 낮게 부르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사실 내 속에서 드는 생각은 이랬다.
허허, 정말 왜들 그러실까.
나는 안 어렵나?
나는 뭐 취미로 일하나?
프리랜서 초창기엔 이 문제가 나를 정말 엄청나게 괴롭혔다. 스트레스가 극심해 화병이 날 정도였다. 근데 먹고사는 일을 놓을 수는 없다 보니, 마냥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프리랜서 초창기엔 정말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혼을 갈아 넣은 적이 많았다. 대신 수지타산은 어느 정도 맞아야 하니까, 딱 3년만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3년만 버텨보고, 정말이지 안 되겠으면 차라리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다짐했다. 사실 생각은 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회사에서의 일보다는 프리랜서로 하는 일이 훨씬 즐거웠으니까.
매번 하는 똑같은 일 말고. 다양하게, 그리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게 무엇보다 재밌었다. 게다가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만 일한 건 아니었다. 회사 생활하며 받는 월급보다 더 많은 금액을 한 번에 받은 적도 있었다. 바짝 일하고 높은 수익을 내는 몇몇 경험을 통한 성취감이 다소 느슨했던 내 회사 생활에서와 비교하면 훨씬 높았다.
그렇게 3년을 버티고, 4년을 버텨 지금은 5년 차가 되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5년째 잘 버티고 있는 중이다. 버틴다는 말이 조금은 슬프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다시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다시 디자인 비용 이야기로 돌아가서. 프리랜서로 5년 정도 지내고 나니, 예상보다 적은 금액을 부르는 클라이언트의 말에 흠칫 흠칫 놀라는 횟수는 제법 줄어들었다. 물론 그런 경우가 많이 줄기도 했다. 지금까지 일을 거절했던 적은 딱 두 번뿐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이 온다. 죽어도 못할 정도의 얼토당토않은 금액을 제시한다거나, 정신적으로 피해가 상당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드는 경우에 한해 정중히 거절한다. 그래도 여태 두 번 밖에 없었다는 게 어디야, 휴우.
요즘 들어 자꾸만 상기시키는 마음은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다. 소위 말하는 나의 네임밸류가 그리 높지 않고 먹고살기 위해 일은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되도록 ‘그러려니’하자고 생각하는 것. 더 나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도 잘 마무리해서 좋은 포트폴리오로 남겨보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그러려니 하자, 그러려니. 그러려니.
근데 클라이언트는 알긴 알까? 이번에 잡힌 예산이 너무 모자라서 10만 원을 덜 줄 수밖에 없겠다고 우는 소리를 해도, 내가 10만 원어치의 일을 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디자인은 그리 계산적으로 따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