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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Sep 24. 2020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각자의 사정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말할 수 없는 사정


디자이너의 사정
도대체 수정사항은 왜 이렇게 많을까?

이제는 그냥 익숙해질 법도 한데, 사실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의문이 매번 생긴다. 빨간펜 비가 내릴 정도의 수정이면 애초에 원고를 너무 들여다보지 않은 건 아닐까? 고쳤다가 다시 원래대로 고치는 경우는 또 무엇이며, 분명 수정을 보면 볼수록 완성도가 올라가야 하는데 어째 변함이 없다. 수정도 이만큼인데 최종은 얼마나 더 한지. 분명 최종 사인 후 데이터까지 정리해서 넘겼건만, 수정이 하나 발견돼었다고 다시 수정해서 다시 최종 정리해달라고 할 때는 정말..

어제도 클라이언트에게서 전화를 한통 받았다. 저자 선생님이 자꾸만 수정을 보태신다고, 거의 끝나가는 마당에 수정이 계속 늘어나서 너무 미안하다며 더 이상 수정을 못하도록 선생님께 당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꼼꼼히 보시려다 보니 그러실 수도 있죠 뭐”라며 웃으며 답하기. 내가 뭐 별 수 있나. “그러게요, 왜 자꾸 수정하시나요?”라고 정색할 수도 없잖아.


출처: 구글



클라이언트의 사정
이것만 고치면 좀 더 매끄러울 것 같은데?

클라이언트 쪽에서 정말 제대로 확인을 못해서 뒤늦게 발견한 수정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정이 많다는 건 그만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함이라는 것. 디자이너가 0.1pt의 크기로 디테일을 잡는 것처럼, 주로 편집자인 나의 클라이언트에겐 치명적인 오류를 잡아내는 것은 물론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이 그들만의 디테일이다.

나에게 전화를 한 클라이언트는 오죽했을까. 수정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새 원고 수준의 수정을 하는 저자와 거의 마지막 단계라고 알고 수정 작업을 진행하는 디자이너 사이에서 쩔쩔 매야 하는 심정이란. 아놔 클라이언트 사이에도 각자의 사정이 있듯이, 나를 고용한 클라이언트와 저자 선생님 사이에서도 각자의 사정이 있다. 우리는 결국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당연한 일이다. 상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주어진 조건이 다르니까 ‘사정’이라는 게 생기는 거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그런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클라이언트는 수정을 요청할 때도, 요즘 시장이 어려워서 그러니 금액을 좀 더 낮춰달라고 말을 할 때에도 그들의 사정을 마치 무기처럼 꺼내어 사용하는 걸 본다. 내 사정이 이만저만하니 네가 좀 이해해달라는 식.

위 상황처럼 사정을 이야기하며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건네받으면 좀 낫다. 고작  한마디뿐이지만,   한마디에 나는 그들의 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있게 된다. 여전히 수정사항은 많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내 사정도 이만저만한데요.



가끔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때는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마치 속 좁은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그들의 사정을 마냥 들어주면서 일을 하기엔,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닌데. 그런데 상황은 꼭 나를 상대방은 생각도 하지 않는 속좁고 이기적인 디자이너로 만든다. 비단 수정    하는 일에서도 나는 어느새 ‘한두  수정 더하는 거에 되게 깐깐한디자이너가 되어버린다.


나 그렇게 깐깐한 사람 아닌데.


클라이언트와 프리랜서 디자이너 사이에서 사정은 있지만,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대게 사정을 말할  없다. 갑과 을이니까 어쩔 수 없다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내가 그렇게 큰 걸 바라는 건 아닌데. 서로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아니 적어도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사정을 말해주어도 되는데. 나 그렇게 깐깐한 사람 아닌데. 각자의 사정을 서로 속시원히 이야기할  없다면적어도  사람이라도 이해할  있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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