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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Oct 14. 2020

적게 먹는다고 돈 덜 내지 않잖아요?

한번 정했으면 그대로 가야죠.


회전초밥이냐 무한리필이냐

식구가 둘 뿐인 우리에겐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보다 밖에서 사 먹는 게 여러모로 훨씬 나을 때가 있다. 손수 하나하나 정성 들여 만들어 먹는 즐거움보다는 어느 정도 보장된 맛을 사 먹는 편리함을 선호한다. 요리 하나 하겠다고 이것저것 재료를 사다 보면, 밖에서 사 먹는 값보다 더 할 때가 있다. 남편은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더라.

웬만하면 집에서 차려 먹긴 하지만 가끔은 기분전환 겸 외식을 한다. 내가 만들 수 없는 요리를 사 먹기도 하고. 내가 그리 소식하는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식당에 가서 남편과 함께 각각 먹고 싶은 메뉴를 하나씩 주문하면, 대부분 내가 시킨 메뉴가 남는다. 결국 남은 건 남편의 몫.

일반적인 음식점에서는 두 명이서 2인분을 시키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매번 음식이 조금씩 남는 걸 보면 가끔은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 때 덜 먹는다는 이유로 돈을 덜 내지 않는다. 조금 다른 비유이긴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뷔페나 무한리필 집은 선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먹은 만큼 돈을 내는 회전초밥집이 낫다.


뜬금없지만, 초밥은 정말 맛있다!



어떤 방식으로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밖에 나가 사 먹는 행위를 하기 전, 우리는 ‘메뉴판’을 보고 판단한다. 무슨 음식을 파는지, 1인분인지, 2인분인지. 혹은 세트 메뉴에는 뭐가 더 추가되는지. 메뉴판에는 메뉴도 적혀있지만 가격도 적혀 있다. 내가 이 음식점에서 무얼 먹을지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있는 거다.

직장인에겐 연봉이 곧 자신의 몸값인 것처럼, 프리랜서 디자이너에겐 단가가 그렇다. 거기에 작업 스킬과 포트폴리오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국 얼마나 인지도 있는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서도 단가 차이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프리랜서 초기에는 내가 단가를 먼저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수많은 프리랜서들이 펼쳐진 이 세계에 발을 막 들이기 시작한 그때는 일을 따온 것 자체만으로도 소중했다. 고작 레벨 1단계인 나나 그런 나에게 일을 맡겨준 클라이언트나, 그때는 서로가 서로를 테스트하는 시간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1년을 버티고 3년을 버텨 5년 차에 접어든 요즘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금액을 먼저 문의해서 단가를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제법 협상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사실 이건 어떻게 보면 음식을 시키기 전 얼마인지 확인하는 것처럼 되게 당연한 소리인데.. 결국 이렇게 되기까지 약 5년이 걸린 셈이다.

음식점에서 메뉴판을 확인하는 일을 ‘일 시작 전 금액 확인하는 방법’이라고 치자. 나의 경우 클라이언트와의 금액 합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전체에 대한 하나하나의 최소 단가를 적용해서 분량에 따라 금액을 합의하는 경우다. 음식점에 비유하자면 회전초밥집에서 먹은 만큼 계산하는 방식이랄까? 프로젝트의 규모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

나머지 하나는 전체의 프로젝트를 그냥 하나로 묶어서 금액을 합의하는 경우다. 프로젝트의 규모에 상관없이 합의 하에, 쉽게 말해 ‘일정 금액으로 퉁치는’ 방식이다. 굳이 음식점으로 치자면, 내가 가지 않는 무한리필이나 뷔페 같은 스타일이다. 프로젝트 규모에 상관없이 금액이 같다.

두 가지 방식에는 장단이 다 존재하기 때문에 뭐가 더 나은 방법인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로 합의를 한다는 사실이다. 굳이 자세히 파고들지 않더라도, 그냥 봐도 두 방식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전에 합의가 있어야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적게 먹는다고 돈 덜 내지 않잖아요?

회전초밥 집에는 한 접시에 얼마라는 단가가 있고, 무한 리필 집에는 한 명에 얼마라는 정해진 금액이 있다. 우리는 그걸 알고 있다. 절대 모르고 음식점에 들어가지 않는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 시작 전 어떤 방식으로 금액을 협의할지 확인하는 건 필수다.

만약 무한 리필 집을 자주 이용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장에게 가서 ‘오늘은 이만저만해서 좀 덜 먹었으니 돈을 좀 덜 내겠다’고 한다면? 그 말을 들은 사장은 뭐라고 답을 할까? ‘아 그러셨군요, 그럼 이번엔 2,000원 덜 받을게요’라고 할까? 글쎄.. 그런 마음이 너그러운 사장님이 있긴 할까?

“에이 왜 그러세요~ 손님. 제가 무한 리필로 음식을 제공해드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제가 손님이 많이 드신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말하려면 뭐 대충 이런 뉘앙스가 아닐까? 비록 현실에서는 말 한마디 못하겠지만. 사실 그런 논리였으면 무한 리필 집을 가면 안 된다. 적게 먹는다고 돈을 덜 내고 싶었던 거라면 먹은 만큼 계산하는 회전초밥 집을 가야 맞는 거다. 내 일을 이렇게 비유하는 게 적절한 건가 싶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사실 이렇게 구구절절 글을 쓴 이유는 ‘분량이 적다는 이유’로 안 그래도 낮은 금액을 더 낮추려는 클라이언트의 말들 때문이다. 갑자기 그간의 설움(?)이 마구 떠올라서. 내게는 수년간 일정한 금액 합의 하에 일을 진행해오고 있는 클라이언트가 몇몇 있다. 분량이 아무리 많아도, 중간에 없던 일이 늘어나도 아무 소리 안 하고 해주는 이유는 ‘사전에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누가 들으면 굉장히 푼돈일 금액이겠지만, 단순히 좋아서만 하는 일이 아닌 생계를 위해 하는 일에 매겨진 그 금액은 내겐 절대 푼돈이 아니다. 그런데 그 금액마저도 깎으려는 모습에 너무 화가 나고 서운했다. 순간적으로 그동안 해준 게 얼마 큼인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애초에 처음 일을 진행하기 전 서로 다른 금액을 책정하는 방식에서 합의를 했으면 그대로 가야지. 갑자기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계산법으로 이미 하나로 묶인 그 금액을 더 깎으려 하다니. 평소보다 분량이 많아도 항상 같은 금액이었는데 왜 적을 땐 금액을 깎으려 하는 걸까?



결국 모든 것은 나의 몫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 하기로 했으면 항상 마음을 다해서 해준다고 생각한다. 하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종종 이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상처 받는 건 나의 몫이다. 그리 크지도 않은 금액이 깎여 내릴 때면, 마치 내 가치가 가차 없이 깎이는 기분마저 든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프리랜서 5년 차가 되어도 여전히 ‘내가 선택해서 일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려보는 건 그냥 머나먼 꿈 이야기 같다. 늘 그렇듯이, 클라이언트에겐 말할 수 없다. 결국 아쉬운 사람은 나니까. 나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돈 주는 사람이 갑인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속앓이 하느라 부글부글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출판계 교정교열 편집자들 단가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단다’ 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하아, 프리랜서 편집자들도 정말 만만치 않겠구나. 가끔 내가 속이 좁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돈 앞에 너그럽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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