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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어디가 Mar 14. 2021

2주 동안 나 쫌 많이 고상했다..!

그리고 앞으로 종종 만나게 될 친구를 만났다- (매우 진지함 주의)

어쩌다 보니 자가격리를 경험할 기회(?)가 생겼다.

몽골 정부 방침에 따라 10일 시설 격리(호텔)+4일 자가격리(숙소)가 시작됐다.


호텔에서 시설 격리를 하며 포동포동 살찌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방이 아주 넓지는 않았지만, 2인 or more 함께 지내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혼자서 이 정도는 양호하지! (그리고 언제 또 삼시세끼 룸서비스 받으며 호텔 생활을 해보겠나!!)

   

매일매일 의무적으로 유일하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다음날 식사 시간 및 메뉴를 선택해 방 밖에 내놓기였다.

그럼 전날 선택한 메뉴의 아침, 점심, 저녁 식사가 정해진 시간에 방문 앞으로 배달됐다.

조식은 커피와 주스, 차 등의 음료와 과일/야채샐러드, 빵, 계란 요리, 팬케익 요리, 밥 종류 등등 중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점심과 저녁은 -에피타이저, 메인 디시(아시안 or 웨스턴), 디저트- 코스로 2~3가지 메뉴 중에서 하나씩을 고르면 되었다.

기깔나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방금 한 요리를 방문 앞까지 가져다주기 때문에.. 난 꽤 만족스러웠다.

이 외에도 빨래는 1주일에 2회, 방 청소 1회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종종 착즙 주스와 초콜릿 등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세계 여성의 날에는 축하한다며 디저트와 카푸치노, 그리고 손편지와 꽃병을 방문 앞으로 가져다 주기도 했다.

요렇게 10일 동안 몸은 꽤나 편했는데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많은 시간을 사람들 속에서 웃고 떠들며 지내다가 정말 오랜만에 맞이하는 고요와 적막의 시간이었다.


처음 시작은

1)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서의 생활이 시작됐군. 언제까지 떠나기만 할 것인가!

2)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대체 왜 그 모든 환대와 우정, 사람들, 안정된 시간과 공간을 뒤로하고 나는 이 모험을 또 시작했는가-

그저 단순히 지루한 것을 못 견디는 것일까, 아님 나도 아직 모르는 뭔가를 찾고 있는 걸까?

고민하다 예전부터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나는 깊이 살아 인생의 진수를 모두 흡수하고자 했다.

인간의 삶에 어울리지 않은 것을 모두 쓸어내 버릴 만큼 강인하게

스파르타 사람처럼 살고자 했다. 드넓게 활동하며 모험을 감행하고

삶을 궁지에 몰아넣어 최악의 상태까지 타락시키고,

그렇게 하여 삶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가를 깨달으면,

내가 체험한 그 하잘것없는 삶의 진정한 모습을 세상에 알려주고 싶었다.

만일 삶이 숭고한 것이라면, 그것을 몸으로 체험해서 글을 쓸 생각이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아주 평범한 사람이지만, 내 삶 속에서 주어진 것들은 모두 경험해보고 알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경험으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더 알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까지의 크고 작은 도전은 언제나 이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그 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그것이 나에게 독이 될지 꿀이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떤 사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믿는 신이 허락한 길에는 분명 내가 알고, 경험해야 하는 어떤 것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Anyway, 이미 나는 돌이키기 힘든(?) 길로 넘어왔으니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고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후후 근데 이게 답이 있는지도 모를뿐더러 그 이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스윽 올라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는 차치하고, 당장 내 안에 공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주위에 함께 할 사람들이 없어서 단순한 외로움인 줄 알았다.

but-

친구들과 통화를 하고,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때로는 눈물 나게 가슴 벅찬 메세지를 받으며 감사함이 온 방 가득 넘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허함은 가시지 않았다.

영혼이 목마른 느낌- 사람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원초적 공허함이었다. 흠

(사실 이런 것(?)이 내면 깊숙한 허세로부터 나오는 감정인지, 지독한 관종끼가 몸부림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엄청난 진지충이 간만에 꿈틀거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근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감정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것이고, 나의 식욕은 여전히 아주 왕성하기 때문에 우울은 아니라고 보고있다..)


TV를 틀어놓거나, 유튜브로 예능을 계속 틀어놓으면 그 순간은 별다른 고민 없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는데, 계속 이 감정을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을 정확히 마주하고 조금 익숙해져서 앞으로도 종종 만날 이 친구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내 마음을 컨트롤하고픈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컨트롤하냐고요...ㅇ_ㅇ..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데 페북 지인의 글 속에 인용된 다음의 글귀를 읽고 난 후 어떠한 안정이 찾아왔다.



인간의 모든 욕구를 이기는

강한 힘으로 당기시어, 저로 하여금

걷게 하시는 이 길에서,

저는 외롭습니다.


외롭습니다.

제 존재 깊은 곳에

입을 벌린 상처 같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저를 둘러싼 인간들은

제가 호소하는 소리만 들려도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는

그림자 같은 존재들일뿐입니다.

제가 다가갈 때마다

그들은 도망치고 사라집니다.

아무래도 이 고독 안에 자리를 잡고서

그것을 외로운 동반자로 삼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외로움이 어디서 왔는지

저는 모릅니다

당신한테서 온 것입니까?

이것이 그 위에서 제가 당신을 만나 뵙고

마침내 당신의 진리를 발견할

유일한 그 길인가요?

아니면, 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하여

차가운 무관심 속으로

깊숙하게 빠져들도록 만든

사람들한테서 온 것입니까?

그도 아니면.

남들을 끌어당기려고 시도하면서

그때마다 오히려 그들을 밀어내는

저한테서 온 것인가요?


오 주님.

저 홀로 걷습니다.

제 귀에 울리는 고요함이

사람들 아우성보다 크게 들립니다.

내 주, 내 하느님,

당신 향해 가까이 갈수록

더 깊은 고독에 빠져들면서

오, 주님.

저 이렇게 홀로 걷습니다.


- 프랑수아 사뇨 (프랑스 보캉 수도원 소속 평신도 회원)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글을 읽으며 위로가 됐다-


그렇게 몸은 편하게, 마음은 고독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자가격리가 모두 끝났다.


지금에 와서는 고독을 피하지 않고 잠깐이라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던 이 시간이 소중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는 너무도 쉽게 고독을 피할 수 있을뿐더러, 내 마음을 그렇게 깊게 들여다보도록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마주해야 하는 날들의 프리뷰인 것 같아 조금 두렵긴 하지만..

그래도 내 앞에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걸어보자고 다짐해본다.


격리기간 동안 가장 큰 평안을 가져다준 영어성경 필사.

마음이 어려울 때 평안을 찾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아무리 오랫동안 고독하다 한들 필사해야 할 성경은 넘치고 넘칠 테니 말이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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