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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연 Mar 27. 2022

사람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지극히 당연한 말과 글이 당연치 않은 현실을 바탕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마음이 주저앉으며 서글퍼진다.


너무나 너무나 맞말들이다, 아니 진짜로 너무 다 맞는 말뿐이다.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라는 구절에서는 왜 갑자기 쑥 그렇게 눈물이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자주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 말이 어딘가에 다른 사람의 문장으로도 쓰여있으면 우리가 서로 통했군요 ! 박수치고 환호를 지르고싶듯 반갑기 마련이다. 다른 문장이라면 온전히 반갑기만 했을텐데, 아프다. 너무 먹먹하다.



나도 사람이다. 먼저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고싶다.


여기에 어디 하나라도 틀린 말이 있는가. 그냥 맞다. 그저 옳다.



여자가 늘상 해오던 것, 여자 사람이 현실에 발 딛고 서있으려다가도 자꾸 시궁창에 처박히는 것, 일상 속에 항상 발에 채이고 널려있는 것, 마른 걸레짝인데 자꾸 쥐여짜지는 것들을 이제는 ‘남자도’ 좀 하라고 할 때 왜 분개하는가.


지극히 소수의 남자가 ‘남자임에도’ 한다는 것에는 왜 그렇게 모두들 부둥부둥하고 올려치기를 못해주어 난리인가.


여자가 생존을 위해 살고자 할 때, 그래서 사람이 좀 사람답게 살고싶다고, 살아내고싶다고, 더 이상 죽고싶지 않다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할 때, 누군가는 왜 고작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손 쉽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다’ 는 이유로, ‘분탕질을 하고 결집시키자’는 이유로 대놓고 사람에 대한, 인간에 대한, 생명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가.


도대체 왜 여자에게 당연한 것들이 왜 남자에게는 당연치 않은가. 그리고 여자에게 당연치 않은 것들이 왜 남자에게는 당연한가.



정말로, 정말로 “어렵지도 않은 것을, 못할 것도 아닌 것을 왜 아니하려 드는가.”


과연 누가 사람이 아닌가.




©나혜석, <저것이 무엇인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장에 내걸린 나혜석 삽화. 1920년 4월호 잡지 '신여자'수록






경희도 사람이다. 그 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ㅡ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65p.



글 성지연  /  표지 그림 나혜석 <저것이 무엇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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