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폭설에서 Chill Guy로 살아남기

Chill Guy처럼 미끄러져도 침착하게 살아 돌아오다!

by 쪼의 세상

설 연휴가 지나갔습니다. 공휴일이 하루 더 추가되었기에 많은 분들이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긴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명절이었습니다. 늦었지만 구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설날에는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고 하는데, 저는 이번 설 연휴에 십 년 감수할 뻔했습니다. 이번 명절 귀성길에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예상치 못한 폭설로 고생하신 분들이 계시는지요? 네, 바로 그 당사자가 저입니다. 저는 양가 부모님 및 조부모님 모두 서울에 계시기에 사실 시골에 내려갈 일은 없었지만, 이번 연휴에는 폭설로 정말 떡국을 열 그릇 먹어도 나이가 그대로일 만큼 십 년 감수했습니다.


발단은 겨울 날씨에 손발을 녹일 겸 야외 온천과 핀란드식 스파를 즐길 수 있는 춘천에 있는 야외 스파를 가자고 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와이프가 며칠 전부터 스파를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었지만 막상 당일 날 아침에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을 보고 다음에 가자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제 성격이 가만히 있지를 못했던 거죠. 걱정하는 와이프를 달래고 바로 춘천으로 떠났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1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2


야외 스파는 설산과 북한 강을 마주 보고 펼쳐져 있었습니다. 눈이 지긋이 내리는 설산 아래서 따뜻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게 나란히 가마솥들이 줄 지어있었죠. 그 뒤에는 핀란드식 습식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통나무 집이 하나씩 있어, 온천욕을 즐기다가도 들어가 쉴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눈이 조금 오긴 했지만 그래도 먼 길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시간 반 만에 이런 풍경에서 야외 스파를 즐길 수 있는 경험은 흔치 않으니까요! 수영 뒤에 빠질 수 없는 뜨끈한 라면 한 그릇을 먹는 것까지 빼먹지 않고 즐겼습니다. 여기까지는 최근 즐길 설날 연휴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에 벌어질 일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로요. 더한 추억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문제는 스파를 즐기고 오후 4시쯤 눈발이 거세지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송이송이 내리던 눈은 점점 거센 눈두덩이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10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던 눈은 스파와 사우나를 모두 하얗게 덮을 정도로 폭설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까지는 이러다 그치겠지 싶었는데, 스파 사장님께서 장내 방송을 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고객 여러분께 알림 말씀드립니다. 현재 눈이 갑자기 많이 오는 관계로 돌아가실 때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눈이 오면 제설이 되지 않은 길은 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나가실 땐 오른쪽 길로는 나가시기 어려우며, 더 눈이 쌓이기 전에 귀가하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엇, 사장님께서 저렇게 안내 방송까지 하기 시작했다는 건 조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지요. 저희도 어느 정도 온천을 잘 즐기기도 했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향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저와 와이프는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옷가지를 정리하고 짐을 쌌습니다. 눈을 많이 맞아 눈사람(?)이 되어 있는 저의 흰붕이(제 자동차의 애칭입니다)에 눈을 털어내고 더 눈이 내리기 전에 스파장을 떠나 주인분의 안내에 따라 정문을 나서 오른쪽 길이 아닌 왼쪽 길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조심조심 속도를 최대한 늦춰서 아직 얼지 않은 눈길을 빠져나왔죠. 그 와중에도 눈 쌓인 설경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한 1~2km를 빠져나오자 생각했던 것보다는 미끌림도 덜하고, 이 정도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거기까지는요.


1차 위기: 언덕이요? 아무도 못 가는데요.


차들이 엉켜서 못 가는 상황


한 5분쯤 지났을까요. 완만한 언덕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려던 찰나 앞에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설마..'라는 마음을 가다듬고 차들이 멈춰서 있는 광경의 끝자락까지 다다랐을 때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쌓인 눈 때문에 아무 차도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요. 대게 이런 경우에 네 바퀴에 동력을 넣어 앞으로 가는 사륜 차들은 그냥 지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흰붕이처럼 후륜인 차들은 택도 없이 밀리고 맙니다. 상황 파악을 위해 내려서 앞차 차주분들께 상황을 여쭤본 후에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맙소사, 심지어는 전륜 구동인 차량들도 못 올라가서 멈춰 선 것이었죠. 그나마 스노우 타이어 혹은 체인을 단 차들은 간신히 고개를 넘어서 갈 수 있다곤 하는데, 이 언덕이 대로변까지 나가는데 가장 큰 언덕이 아니기 때문에 여길 넘어간다고 해도 한 번 더 큰 언덕을 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저는 와이프를 놀라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최대한 침착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언덕에 비탈지게 서있는 흰붕이를 차를 돌려 평지로 가자라고 생각한 거죠. Chill Guy의 마음으로, 이 상황을 차근차근 해결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우선 차 트렁크에 가서 뒤늦게나마 스노우 체인 스프레이를 꺼내 네 바퀴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차를 돌릴 때 혹시나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에 양 뒷바퀴에 수건을 되어 마찰력을 최대화시켰습니다. 1차 위기에서 벗어나자. 그 생각으로 차를 아주 천천히 후진한 후에 돌렸습니다. 미끄러지는 핸들을 양 옆으로 돌려서 겨우겨우 앞코를 돌려서 언덕을 겨우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살았다 생각했습니다. 우선은 지금 눈이 너무 많이 내리니 다시 스파 주차장으로라도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2차 위기: 왔던 길이 미끄러져요.. 엄마.


폭설님..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뿐이라고 너무 안심했던 탓일까. 그 잠깐 사이 더 내린 눈 때문에 길은 더 미끄러워져 있었습니다. 차를 돌려 작은 언덕들을 넘어가며 우선은 다시 스파 주차장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저희 부부의 판단은 5분도 안 가서 다시 2차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후륜 구동이었던 흰붕이는 이제 작은 언덕조차 넘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설상가상(말 그대로) 뒷바퀴가 헛돌기 시작했습니다. 엑셀을 매뉴얼로 돌려서 힘껏 밟아도 제 자리를 헛돌았습니다. 심지어는 차가 뒤로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와이프는 걱정이 많았을 텐데 다행히도 제 운전 실력을 믿고 침착하게 기다려줬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뒤로 강제 후진(?)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운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우선 차를 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앞 범퍼가 가드레일에 닿을 뻔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죠.


이때부터 '큰일 났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차를 세운 저는 우선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견인차를 불러 우선은 이 비탈길을 벗어나고자 했죠. 문제는 보험회사에서도 갑자기 내린 폭설로 모든 견인차가 현장에 나가 있어 당장은 출동이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있는 곳은 아직 제설차가 다니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견인차의 접근조차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때부터는 '아, 정말 여기 갇히나?' 싶었죠. 보험회사에서는 먼저 근처 시청에 전화해 제설차로 눈을 녹이는 작업을 해야 견인차가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저는 난생처음 시청에 민원(?)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행히도 해당 시청 당직실에서도 폭설 상황을 인지하고 계셨고, 앞서 큰 언덕에 갇힌 차들이 이미 제설 요청을 했다고 상황을 전해주셨습니다. 시청에선 시내를 먼저 제설해야 하지만 저희를 포함해 이 비탈길에 갇힌 차들이 있는 길을 우선적으로 제설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다만, 2~3시간은 기다려야 완전히 제설이 완료될 수 있다고 말씀해죠.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조난: 코를 박기 직전 멈춰버린 흰붕이


아니요. 사실 제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비탈길에 서있던 차를 뒤로 빼 살짝만 뒤로 뺀다는 판단은 곧 재앙이 되었습니다. 흰붕이는 이번엔 왼쪽으로 크게 돌더니 앞코를 차벽이 있는 쪽으로 박으며 서서히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는 정말 '아, 그냥 그대로 둘걸'이라는 생각에 겉으로는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하나님 아버지 알라 부처 산신령인 모두 찾을 정도로 빌었습니다. 저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걸까요. 정말 10cm 차이를 두고 흰붕이는 앞코를 차벽에 박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 했습니다. 저와 와이프는 더 이상 차를 움직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선 침착하게 제설차를 기다리고, 그 이후에 견인차를 기다리기로 한 거죠.



차벽과 뽀뽀할 뻔한 흰붕이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건 혼자가 아니라 덜 외로웠다는 사실. 다행히 사랑하는 와이프와 함께 있는 것이 큰 힘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바로 뒤차도 후륜의 흰붕이(?)였는데. 거기도 한 부부가 타고 계셨습니다. 이 부부, 앞으로의 탈출기의 동반자이자 인연이 될 부부였습니다. 앞으로는 생존동지 부부라고 부르도록 하죠. 바로 뒤에 쫓아오던 생존동지 부부의 차 역시 우리 차와 마찬가지로 후륜이었기에 같은 언덕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다행히도 두 분의 견인차는 지금 구조를 위해 오고 계셨고, 견인차가 진입하지 못한다는 우리의 사정을 들으신 부부께서는 자신들의 견인차가 오면 우리 차도 함께 방향을 틀어 구조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한 순간이었죠. 한줄기 광명이 비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생존 동지 부부와 저희는 서로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위로하며 그나마 이런 상황에서 인류애가 셈 솟는 위안을 얻었습니다.



극적 구조: 너무나 고마운 견인차 사장님


견인차를 기다린 지 1시간쯤 되었을까요. 그 사이 다행히도 시청에서 보내주신 제설차도 도착했습니다. 문제는 저희 차의 위치. 제설차가 지나가려면 앞코가 벽을 보고 있는 저희 차 뒤를 지나가야 하는데, 너무 좁아서 제설차가 지나갈 수 없는 것이었죠. 결국 제설차 기사님도 함께 조난(?)이 되었습니다. 즉, 견인차가 와서 저희 차를 조금은 돌려서 길가로 벗어나게 해야 제설을 더 진행할 수 있는 것이었죠. 정말 험난했습니다. 견인차를 기다리는 중에도 지나가던 다른 차주분들이 내리셔서 많은 걱정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견인차는 불렀는지, 본인이 해줄 것은 없는지, 보인들이 바쁘신 와중에도 따뜻하게 걱정해 주신 분들이 계셔서 기다리는 시간이 다행히도 덜 분 안에 떨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지나가다 도움을 요청하는 다른 차를 도와주게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외국인 차주분은 이런 눈 오는 날 어떻게 기어를 조정해야 하는지 모르셔서 저에게 질문하시기까지 했죠. 저도 조난당한 주제에 졸지에 영어로 손짓 발짓하며 기어를 수동으로 바꾸는 것을 설명한 순간은 아딘가 시트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디스 시프트 다운... 오케이?"


기름도 없어져가는 시간..


오기 전에 충분한 기름을 주유하지 않았던 탓일까요. 두 칸 남은 주유량이 왜 이렇게 불안하게 느껴지던지요. 와이프와 저는 히터를 켰다 껐다를 반복하다가도 노래를 틀며 곧 오실 견인차를 기다렸고, 그렇게 30여분 더 기다리던 순간, 생존 동지 부부의 견인차가 도착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생존동지 부부의 차를 먼저 끌어낸 견인차 사장님께서는 저희 차의 이동이 생각보다 난도가 높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이동을 주저하셨지요. 하지만, 저희 보험사가 견인차 사장님께 직접 연락해 저희 차도 부탁한다고 이야기하셨고, 한번 시도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우선 앞코를 보고 있어 견인 훅을 걸 수 없는 저희 차를 돌리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코를 보고 있는 흰붕이를 후진으로 한 뒤, 손으로 사장님, 제설차 주무관님 등이 함께 손으로 뒤로 밀었습니다. 다행히 차는 살짝 밀렸고, 훅을 달 공간과 각이 나왔습니다. 드디어 훅을 거는 순간, 와이프와 저는 '아 드디어 이 조난이 끝나는구나'하며 기뻐했습니다.



마지막 위기: 아, chill Guy 여기서 끝인가.


견인차 사장님께서 저희 부부와 생존 동지 부부의 차를 나란히 세워주셨고, 제설차가 한두 번 더 지나가서 길이 녹으면 30분 정도 후에 차들이 엉켜 있던 언덕 쪽 길로 다시 탈출을 시도해 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설차가 지나간 뒤에는 이제 통행이 가능할 것이라고요. 저희와 생존 동지 부부는 손을 맞잡고, 이 조난을 함께 탈출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전우애와 인류애가 셈 솟는 순간이었죠.

그렇게 30분이 흐른 뒤, 제설차가 지나간 자리는 눈이 서서히 녹기 시작해 거의 물이 흥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와 생존 동지 부부는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죠. 비상등을 켜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저희 두 차량은 왔던 길로 다시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흡사, 재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요. 천만 다행히도 제설차의 위력으로 눈은 거의 녹았고, 차들이 엉켜 있던 언덕 눈도 모두 녹아 이미 앞차들은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생존 동지 부부와 저희는 이제는 정말 돌아갈 수 있겠다 생각했죠.


문. 제. 는.

(너무 급박해 사진조차 찍지 못한 큰 언덕. JPG)


차들이 엉킨 언덕 너머 더 큰 언덕이 있었다는 걸 깜빡한 거였습니다. 그 언덕이 나타나자, 흰붕이의 속도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다시 뒷바퀴가 헛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탈출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다시 조난당하는 것인가? 싶었죠. 결국 앞서가던 저희 차와 생존동지 부부 차량은 다시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내려서 확인해 보니 제설차가 지나갔지만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저희 부부와 생존 동지 부부는 내려서 우산과 바가지로 눈을 쓸어보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지, 다시 견인차를 불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빛이 우리르 비췄습니다. 제설차였습니다. 제설차는 저희 두 차를 피해서 한번 더 화학약품을 뿌리고 지나갔습니다. 30분을 더 기다렸을까요. 눈이 조금 더 녹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제는 마지막이다. 저희 부부와 생존 동지 부부는 탈출을 결심했습니다. 언덕의 뒤쪽에서 기어는 수동, 차는 스포츠 모드, 최대 출력을 모아서 힘을 모아서 출발했죠. 살면서 그렇게 풀액셀을 밟아본 적이었습니다. 아마 인생의 모든 모험에 그토록 최선을 다했다면, 전 아마 지금쯤 일론 머스크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헛도는 뒷바퀴와, 멈추기 직전은 반복하는 출력, 좌우로 흔드는 핸들, 그리고 젖 먹던 힘까지 뻗은 발끝으로 액셀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큰 언덕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저와 와이프는 마치 안나프루나 정상에 오른 것처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고, 생존 동지 부부의 차도 무사히 언덕을 올라왔습니다. 아! 드디어 탈출이다!




드디어 큰길로: 미끄러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언덕을 빠져나와 조심히 이면 도로를 빠져나와 주행하니 큰길로 가는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서울로 향하는 큰길로 빠져나오고 나서야 저희 부부는 갓길에 차를 세웠습니다. 생존 동지 부부도 뒤이어 차를 세웠죠. 저희 부부와 생존 동지 부부는 내리자마자 두 손을 맞잡고 서로를 부둥켜안았습니다. 오늘 처음 본 사이지만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생존의 끈끈함은 이토록 강한 것이었습니다. 조난에서 탈출한 저희는 번호를 교환했습니다. 대학생 이후에 길거리에서 번호를 교환한 건 처음이지만(?) 저희 부부와 생존 동지 부부는 나중에 서울에서 꼭 밥 한 끼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안전귀가를 기원하며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집에 귀가한 후에 각자 서로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며, 그날의 조난 일기는 마무리지어졌지요.


참... Chill한 여정이었지...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모든 일이 마치 꿈같이 느꼈졌습니다. 분명 아침엔 온천 여행을 하자고 출발했는데, 생존영화를 찍고 올 줄은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희 소식을 뒤늦게 접한 가족들은 다친 곳 없이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너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저와 와이프가 워낙 의연하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저희 둘은 집에 와서 녹초가 된 몸에도 이렇게 잘 순 없다를 외치며 몸을 녹이기 위해 뜨끈한 짬뽕과 깐풍기를 시켜 맥주 한자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재밌는 건 와이프가 조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탈출을 위해 고군분투한 제 모습을 보며 다시 보게 되었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Chill Guy가 되어버린 셈인데요. 저는 다른 건 정말 모르겠고, 그저 저희 부부 다친 곳 없이, 또 운 좋게도 저희 집 흰붕이도 망가진 곳 없이 잘 탈출한 것에 감사할 다름이었습니다. 이제 와 글을 써보니, 정말 새해 벽두부터 액땜 한 번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또, 미끄러져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 돌아온다는 인생의 교훈을 얻기도 했습니다.


폭설에 설날 귀성, 귀경길에 안전사고 조심하느라 고생하신 많은 분들이 계실 텐데, 모두 안전하게 연휴를 마무리하셨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렇게 보니 집과 가족이 정말 제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올 한 해도 침착하게, 가족과 함께 따뜻한 한 해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 Fin-



*설 연휴와 폭설로 인해 연재가 늦어진 점 양해 말씀 구합니다. 앞으로는 밀리지 않고 성실하게 글 쓰는 쪼의 세상이 되겠습니다. 구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05화평범한 징징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