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징징이들이 만드는 특별한 세상을 응원하며
"모두 잠수준비!!"
"네! 선장님!"
"잘 안 들려요!"
"네네 선장님"!
“사랑과 희망이 보글보글 네모바지 스폰지밥!”
제 나이 또래라면 어렸을 때 귀여운 노란색 스폰지 친구에 한 번쯤은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사는 어린아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인기 만점인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오프닝 대사입니다. 선장님께서 힘차게 어린이들에게 묻습니다. 잠수 준비가 되었느냐고요. 그리고 보글보글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면 언제나 정신없이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비키니시티가 펼쳐집니다. 우리의 친구 스폰지밥은 파인애플을 닮은 집에서 반려동물 핑핑이와 함께 살고 있지요. 해맑은 절친인 불가사리 뚱이와 항상 불평불만 가득한 이웃집 징징이, 욕심 많은 집게리아 사장 집게사장, 그리고 육지동물이지만 바닷속에 사는 다람이까지. 귀여운 캐리턱들이 우리를 반겼습니다.
갑자기 웬 스폰지밥이냐고요? 동심으로 돌아가 만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일까요?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이야기해 보고자 추억을 소환해 보았습니다. 스폰지밥을 보시지 않은 분들도 계실 테니 주인공인 스폰지밥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보겠습니다. 스폰지밥은 비키니시티라는 해저 도시에 살고 있는 스폰지(?)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진짜 스폰지가 아니라 스폰지를 닮은 해면동물이 모티프였다고 합니다. (사진을 찾아보시면 알겠지만, 진짜 스펀지처럼 생겼습니다.) 그래서 천연 스폰지 혹은 샤워볼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혹시 써보신 분이 계신가요? 잠시 이야기가 샜네요.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스폰지밥: 햄버거 가게인 집게리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요리사. 긍정적이고 발랄한 낙천주의 해면체.
뚱이: 스폰지밥의 둘도 없는 절친. 어수룩한 매력이 돋보이는 말썽꾸러기 불가사리.
징징이: 스폰지밥의 이웃이자 집게리아 점원, 매사에 부정적이고 따분한 일상의 문어
집게사장: 집게리아의 사장, 돈 많고 직원과 손님 모두 박하게 대하는 바닷가재 사장님
다람이 : 육지동물이지만 비키니시티에 보금자리를 잡은 귀여운 웰빙 다람쥐.
어떤가요? 만약에 여러분께서 주요 다섯 인물 중에 하나만 나랑 닮은 인물을 고를 수 있다면 누구를 고를지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한 번도 해보신 적 없다면, 지금 한 번 어떨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는 막연하게 스폰지밥을 가장 닮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집게리아 햄버거 레시피에 자부심을 갖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스폰지밥이 보기 좋았습니다. 어린 시절엔 사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심술궂은 성품의 집게리아, 매사에 부정적인 시선의 징징이, 어딘가 어리숙한 뚱이보다는 스폰지밥의 긍정적인 우당탕탕에 애정을 느꼈습니다. 어릴 적엔 그렇게 생각했었죠.
"나는 자라서 스폰지밥 같이 낙천적인 사람이 될 거야!"
그리고 나서 잠시 스폰지 밥을 잊고 있었습니다. 제가 위의 다섯 캐릭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건 대학생 시절이었습니다. 국어국문학과인 탓에(?) 콘텐츠의 스토리나 서사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 과제의 연장이던 시절입니다. 과 선배와 애니메이션 콘텐츠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과선배가 스폰지밥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 같은 풍자적인 어른용 애니메이션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스폰지밥의 인물 관계도는 심슨가족이나 사우스파크만큼이나 미국사회의 대표적인 삶이 비유적으로 반영되었다고 말이죠. 흥미로운 관점에서 등장인물을 다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스폰지밥: 자본주의 사회 현실을 초월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은 이상주의자
뚱이: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어 은둔을 선택한 부적응자 혹은 소외계층
징징이: 자본주의와 물질의 현실에 완벽하게 순응한 지독한 현실주의자
집게사장: 사업 논리로 성공한 전형적인 자본가이자 부유층.
다람이 : 원래 살던 나라를 떠나 살기 위해 이민을 선택한 이민자 계층
꽤나 흥미로운 관점이었습니다. 어린이의 시선에서 바라봤던 인물설명이 순한 맛이었다면, 어른들의 사회에서 바라본 등장인물들의 설정은 매운맛 그 자체입니다. 듣고 나면 어릴 적 동심은 와장창 부서지니까요. 들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다섯 인물의 성격과 처지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어릴 적 스스로에게 물어봤던 내가 어떤 캐릭터를 닮았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대학생 시절에 저는 그래도 때가 덜 묻었었는지 자신 있게 '아, 나는 그래도 스폰지밥을 닮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에 저는 콘텐츠나 광고에 대한 저만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비록, 돈을 엄청 벌 수는 없다고 할지언정 내가 꿈꾸는 미래와 그 속에서 행복은 찾아갈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 같습니다. 또 스폰지밥을 선택하는 게 특별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징징이나 집게사장보다는 멋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자, 스폰지밥을 꿈꾸던 대학생 시절 저는 1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때 스폰지밥을 꿈꾸던 대학생은 자라서 결국 징징이가 되었습니다! 꿈꾸던 일을 하기만 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K직장은 만만치 안 않거든요. 첫 회사에 입사한 후에 한 3일 정도는 스폰지밥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K직장의 험난함을 맛본 저는 점차 징징이가 매번 하던 말을 입에 달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회의 시간에 점차 징징이처럼 무표정이 되어가는 건 또 어떻고요. 하루 종일 회의에 시달린 날은 사람 많은 곳보다는 혼자 있고 싶어 집니다. 이제야 왜 징징이가 소란을 피우는 이웃인 스폰지밥과 뚱이를 원망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조용하게 혼자 있고 싶어 지니까요. 우리에게 월급을 주는 집게사장 밑에서 오늘도 불금만을 기다리며, 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기 때문이죠. 특별하고 싶었던 스폰지밥을 꿈꾸었지만 어느 순간 평범한 징징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저만 이런 건 아니었습니다. 제 친구들, 선후배들도 사실은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 같으니까요.
평범한 징징이화(?)는 삶의 국면이 바뀌면서도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일과 꿈이 첫 번째인 시절도 우리의 성장에 필요한 시절이었던 것처럼, 삶의 다른 가치를 돌볼 때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고, 너무 달려오다 보니 조금 재충천을 해야 할 시기가 와도 그럴 수 있습니다. 때론 예기치 못한 어떤 일을 겪고 나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될 수도 있죠. 그러니까, 스폰지밥의 웃는 얼굴에서 징징이의 무표정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달리 말하면 또 다른 나만의 방식으로 지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선 징징이의 평소 취미인 클라리넷을 즐기는 여유도, 일광욕하며 읽는 독서 시간도, 집게 사장에게 싫은 소리 하는 모습도 사실은 징징이가 만들어 놓은 삶의 루틴과 범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직장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출근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분들이라면 아마 많은 분들이 징징이에 이입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폰지밥을 꿈꿨지만, 징징이가 되었습니다"
우린 정녕 스폰지밥처럼 살 순 없는 것일까요? 사실 스폰지밥에 마음이 가는 이유도 모두가 스폰지밥처럼 살 수 없기 때문이죠. 매사에 즐거움만을 느끼는 사람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관점에선 비현실적인 부분도 있고요. 대부분이 스폰지밥처럼 살 수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현실의 우리들은 징징이가 자신만의 평범한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듯이 우리 각자만의 소중한 것들을 지켜나가며 살아갑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비키니시티는 모른긴 몰라도 징징이 같은 우리들이 있기에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소중한 시간들을 지키는 사람들, 스폰지밥 같이 독특한 친구도, 집게 사장 같은 꼬집어 주고 싶은 상사도, 다른 문화권에서 온 다람이와 같은 친구도 모두 다 징징이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비키니 시티가 1000명의 스폰지밥으로만 가득하다고 생각해 보면, 하루라도 바람 잘 날이 있을까요?
또 한 가지 회사를 다니면서, 삶을 살아가면서 느낀 건 '평범함'이나 '보통'이 세상에서 실상 대단하다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통의 사람, 평범한 인생이라는 것은 사실 살아보면 가장 어렵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사실 그 안에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고, 사실은 각자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징징이라고 단순화하긴 했지만, 사실 우리 모두의 삶의 이야기는 모두 다 다릅니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너도 그렇다"라는 말처럼 모든 평범함은 자세히 보면 특별합니다. 혹은 애초에 평범함은 없는 지도 모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수의 평범한 삶은 단수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징징이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비로소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특별해질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 평범한 징징이가 되어버린 저는 제 모습이 싫지 않습니다. 매일매일을 특별하게 보낼 수 있는 나만의 클라리넷을 찾아나서는 일도 재밌습니다. 저에게는 글쓰기가 저만의 클라리넷 같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할 수 없는 불평불만을 글을 쓰면서 '징징'댈 수 있으니까요. 징징대면서도 자기가 할 일을 하는 징징이는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평범함이라는 이름에 젖어들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아가는 모든 이들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또, 평범하면 뭐 어떤가요. 평범한 우리가 모두 모여서 특별한 삶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습니다. 평범한 삶을, 특별하게. 감히, 오늘도 1,000명의 징징이가 있어 오늘도 비키니시티는 아름다울지 모를 일이니까요.
"스폰지밥, 듣고 있나? 평범함이 곧 특별함이다!"
자, 이 글을 읽고 있는 세상의 징징이, 징징대보세요!
징징대도 괜찮습니다.
평범해도 괜찮습니다.
특별하게 살면 그만이니까요.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