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주일 만에 병원진료를 다녀왔다. 그 사이 둘째, 일명 호랭이는 2cm의 귀여운 땅콩이 되어 있었다.
땅콩모양 아래로 짧게 돋아난 팔과 다리가 앙증 그 자체였다. 여전히 임신이 모든 게 새롭고, 아기의 성장도 매번 새롭다.
오늘 초음파 사진을 보고 나서야 둘째의 존재감이 약간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동안은 유산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내 뱃속에 어엿한 한 생명이 크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느끼지 못했는데, 조 작은 것이 이제 팔, 다리도 있다니... 장하고, 또 장했다.
첫째 우주를 임신했을 때는 미친 듯이 잠이 쏟아지고, 뱃가죽이 찢어지는 느낌으로 매 두어 시간 사이로 허기를 느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대신, 어떤 음식이 비위 상하거나 냄새가 역하거나 딱히 괴로울 정도로 울렁거리지는 않아서 배가 극심히 고파지기 전에 간식을 계속 먹는 것으로 적당히 행복한 임신 기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둘째 호랭이는 나에게 처음으로 '입덧'이 무엇인지 아주 본때를 보여주었다.
뭐, 내가 아무리 앓는 소리를 해도 여전히 나보다 더 괴로운 토덧(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토하는 입덧)을 경험하는 엄마들도 있어서 명함을 내밀긴 어렵지만...
이번 둘째 임신은 전통적인 울렁거림과 메슥거림을 특징으로 하는 일반입덧과 첫째 때 경험했던 먹덧의 환상의 컬래버레이션이다.
입덧의 느낌은... 음식을 먹지도 않았는데 급체를 해서 위가 꽈악- 막힌 것 같이 아프고, 동시에 뱃멀미를 하듯 울렁울렁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다.
니길니길 느글느글 우글우글.......꽉꽉
니길니길 느글느글 우글우글.......꽉꽉
그런데 이런 입덧으로 미치기 일보직전인데... 먹덧 증세가 찾아온다. 분명 위가 꽉 막힌 답답한 상황인데 동시에 누군가 내 위장 속 모든 음식들을 깡그리 빼내다 못해 위장가죽을 움켜쥐고 쭉쭉 짜낸 것처럼 말로 다 표현 못할 허기가 강타한다.
먹덧이 찾아오면 그 허기가 너무 강해서 메스꺼운 느낌을 압도한다. 거의 광기 그 자체! 내 안에 블랙홀이 있고, 거기로 세상 음식을 다 빨아들이고 싶은 기분이다.
그런데, 입덧 증상도 있기 때문에 아무 메뉴나 선택할 수가 없다. 어떤 날은 라면이 먹고 싶다가도, 다음 날은 라면만 생각해도 비위가 상해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래도 요즘 호불호가 별로 없이 당기는 음식은 김밥이다. 김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계속 김과 밥처럼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이 당긴다.
그리고 순대와 떡볶이. 뭐 이건 임신 전에도 내 최애메뉴 중 하나였지만 요샌 특히나 순대의 그 슴슴하고 순한 맛이 좋다.
그리고 아직 먹진 못했지만 감자가 그렇게 생각난다. 그냥 포슬포슬 폭 익은 감자를 우걱우걱 먹고 싶다는 생각이 몇 번이나 났다. 그게 아니라면 고구마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아프니 첫째 케어 및 온갖 집안일을 다 맡아서 하고 있는 남편이 고생하는 걸 뻔히 알아서 차마 감자 쪄달라는 말이 안 나오더라.
나중에 몸이 조금 좋아지면 친정에 가서 엄마에게 해달라고 할 참이다.
이제 오늘로 호랭이와 함께한 지 8주 5일 차다. 6주 차부터 8주 차 초까지는 정말 최악의 컨디션이었는데, 이번주 들어서면서 입덧약도 더 잘 받는 것 같고... 심지어 오늘은 먹덧 증상도 거의 없어서 오래간만에 살아있는 기분이었다.
그 덕에 밀린 설거지도 조금 했다. 남편도 요새 힘드니 설거지가 점점 밀려갔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집안일을 거들 수 있으면 훨씬 쾌적한 집이 되겠지.
입덧과 먹덧이 조금씩 줄어들면, 정말 소원이 없을 것 같은데... 그때 되면 또 다른 소원이 생길 거라는 것은 또 안 봐도 뻔하다. 그래도 최악의 시기는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오늘은 너무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