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속사정
남편은 프로퇴사러였다. 8년간의 결혼 생활 중 네 번의 퇴사. 이 정도면 ‘프로’라는 단어를 붙여도 손색없는 경력 아닌가.
결혼 직후, 신혼 때, 첫 아이 4개월 때, 둘째 6개월 때… 그는 때를 가리지 않고 퇴사를 했다.
“여보, 나 퇴사하고 싶어.”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그러라고 했다.
외부에서 보면 잘 다니던 대기업을 두 번이나 박차고 나오고,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퇴사를 한다는 게 미친 짓처럼 보일 거란 걸 잘 알았다.
하지만 나는 매번 그러라고 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남편에겐 항상 합당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에 내가 마음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회사에서 부품처럼 소비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일을 잘하면 할수록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까지 떠맡게 되었고, 직책이 올라갈수록 숨통을 조이는 압박이 함께 따라왔다.
예민한 기질의 남편은 스트레스가 항상 신체 증상으로 나타났다.
어느 날, 우연히 남편의 심장 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일정하게 ‘툭, 툭, 툭, 툭’ 뛰어야 할 심장이 ‘툭, 툭—툭, —툭툭 —툭’ 제멋대로 박자를 타며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였다.
그렇게 찾은 병원에서 남편의 혈압이 180을 훌쩍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장은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주변에서 젊은 나이에 아무런 전조 없이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까지는 남편의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오늘 저녁 메뉴 뭐야?’처럼, 그냥 입에 달고 사는 추임새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은 처음으로 먼저 물었다.
“여보, 퇴사할래?”
매일 퇴사를 노래 부르던 남편은 막상 내가 먼저 제안하자 아직은 아니라고 했다.
지금 맡고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 곧 발표될 좋은 기회 등 두서없이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 후로도 남편의 ‘퇴사 돌림노래’는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진짜 퇴사해. 괜찮아! 안 죽어! 내가 먹여 살릴게!”로 화음을 넣었다.
적어도 나의 말에 남편은 안도했다.
그는 나의 말에서 내일의 전쟁터로 나갈 힘을 얻는 듯했다.
나는 진심으로 남편의 퇴사를 바랐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야근에 찌든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에 있지 않았다.
일 년에 두어 번의 휴가를 기다리며, 매일의 소소한 여유와 즐거움을 희생하는 삶이 합리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유복하지 않았던 유년 시절이 문득 감사했다.
나는 행복을 느끼는 역치가 낮은 사람이었고, 어릴 때부터 ‘뭘 하든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배짱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대기업, 공무원, ‘사(士)’ 자 직업 등 사회가 정답이라고 진하게 동그라미 쳐 놓은 것들이 더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