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실행러 아내

그녀의 속사정

by 마리뮤

남편의 두 번째 퇴사에 시댁부모님은 난리가 났다. 첫 번째 퇴사는 다른 대기업으로의 매끄러운 이직이었기에 아무런 잡음이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대기업 마저 발로 뻥 차고 나온 아들이 돌연 공기업을 준비한다며 공부를 시작하니 이쯤 되면 아들에게 무슨 큰 결함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셨다.

어머님은 내게 전화하셔서 연신 내 기색을 살피셨다. 아무래도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와야 하고, 여자는 자고로 안에서 집안을 돌봐야 한다'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던 게 영 신경 쓰이셨던 것 같다. 나는 부모님에게 퇴사 소식만 폭탄처럼 안기고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은 남편을 대신해 그간의 사정을 세세히 말씀드려야 했다. 대기업의 비효율적 업무 시스템, 과도한 업무분배, 개인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책임과 중압감... 그리고 남편의 고혈압 증상 및 빈맥에 대하여.


어머니는 내가 한 문장을 채 끝맺기도 전에 여러 억측과 과도한 걱정, 본질에서 벗어난 질문들을 쏟아내셨다. 한풀이를 하듯 "내가 저를 얼마나 번듯하게 키웠는데..."를 되풀이하셨다.

아들의 건강 문제가 가장 핵심이었다는 말에는 걔가 그렇게 나약한지 몰랐다고 하셨다. 본인이 너무 애지중지 키워 세상 어려운 줄 몰라 작은 스트레스에도 저렇게 버티지 못하는 게 아니냐며 합리적 의심을 계속 제기했다.

나도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이 조금 더 건강하게 일과 삶의 밸런스를 찾을 수 있는 회사를 다니는 것에 동의했기에 재차 그렇지 않다고,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당시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결혼 후 직장이 멀어져 자연스레 퇴사를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쉼 없이 달려왔던 나에게 당시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일을 멈추어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기도 했다. 남편의 월급으로 그동안 꿈만 꾸던 목공수업도 듣고, 제때 끼니를 여유롭게 챙겨 먹고, 휴가에는 해외여행도 하는 삶. 그때, 결심했다. 나도 언젠가 이 남자에게 경제적 버팀목이 되어주리라.

다만 그 결심을 실행하는 시기가 그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남편이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할 즈음,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결혼하면서 간절히 바랐던 백수의 꿈을 이뤘지만 곧 나는 백수체질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일이 없으니, 일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블로그를 시작했다. 신혼집 셀프 인테리어를 주제로 매일 사부작 거리며 무언갈 만들었다. 어느 날은 마크라메 커튼을 만들기도 하고, 어느 날은 접이식 다리를 펼치면 밥상이 되는 침대하부장을 만들기도 하고, 지점토로 화려한 엔틱 금속거울 같은 것을 흉내 내어 만들기도 했다. 돈벌이가 전혀 안 됐던 대학전공을 집안에서 한풀이하듯 마음껏 살리던 시기였다.

내 셀프 인테리어 글들이 우연히 리빙판에 여러 차례 올라가면서 신세계를 맛봤다. 하루아침에 몇 만 명이 내 글을 읽고, 익명의 사람들에게 무수한 댓글을 받았다. 내 안에서 어떤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했던 일(=영어강사) 외에도 다른 재능을 펼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후로 나는 볼품없고, 서툴기 그지없지만 돌이켜보니 모든 발자취가 의미 있었던 삽질을 시작했다. 다 열거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발버둥이었다. 당시 유튜브는 전에 없는 부흥기를 맞이했고, 덩달아 '부'는 내 삶에 요원한 아지랑이 꿈으로 여기던 나의 귀에까지 다양한 부업과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역전 스토리가 들려왔다.

누구는 주식으로, 누구는 부동산으로, 누구는 금투자로, 누구는 카페창업으로, 누구는 에어비앤비로, 누구는 유튜브로 부자가 되었다고 했다.

모든 이야기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었다. 이미 상상 속에서 나는 부를 이루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내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은 모조리 실행에 옮겼다. 당시 유행하던 모든 것에 적어도 새끼발가락 정도는 다 담가봤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 세계를 살짝 찍어 먹을 때마다 배우는 게 많았다. 다만 조금만 해봐도 금방 내가 간과했던 단점이나, 나와 결이 맞지 않는 부분들을 발견했다.


그때마다 나는 실패가 두려워 줄행랑쳤다. 조금 돈이 벌리나? 싶으면 번 돈을 다 토해내는 사건 또는 역경을 만났다. 거창하게 썼지만 아주 소소한 도전과 소소한 실패들이었다.

결국 그 실속 없는 삽질 속에서도 나와 임시백수 남편의 생계를 근근이 책임져주는 것은 새로 취직한 나의 영어학원 월급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천직이라 생각할 정도로 잘 맞고 즐거우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그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영어선생님 누구누구로 소개되는 내가 싫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각 직업에 매기는 등급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었다. 우습게도 돈은 못 벌 지언정 예술가 누구누구로 불리는 나를 상상할 때 더 만족스러웠다. 놀란 토끼눈이 된 사람들의 "와! 정말요?" 하는 반응을 더 이끌어낼 수 있을 테니.

그때 당시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행복은 고작 그 정도로 얄팍했다. 타인의 "와!"나 "오!"에 나를 맞추는 삶이 진짜 행복일리 없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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