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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stolcaffe Feb 27. 2021

"그래서 어쩌라고"

불안에 대항하는 마법의 주문

"어쩌라고" 스킬 시전 중입니다



유튜버 밀라논나님의 20만 구독 감사 Q&A 영상에는 후반부에 "껄껄하지 말자" 라는 내용이 있다. "이래 볼 걸 저래 볼 걸" 어차피 지난 일에 너무 개의치 말라는 조언이다.


내가 자신 있게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은 지난 일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돌아가고 싶진 않다.

작년에 가장 아끼는 맥북이 들어있던 가방을 선반에 올려두고 정신줄 놓은 채 지하철에 두고 내린 적이 있다.

마침 프로젝트 미팅을 가던 차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순식간에 엄청난 긴장과 함께 식은땀이 줄줄 나더라.


당장엔 눈 앞에 맥북이 아른거렸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일은 벌어졌는데.

미팅을 몇 시간 앞둔 상황에 너무 죄송했지만 일단 사정을 설명드리고 미팅을 연기했다.

그리고 지하철 유실물 센터에 연락하여 만약 파란색 메신저백이 접수되면 연락해 달라고 요청드렸다.

지하철이 종점에 도착하면 유실물이 있는지 모든 칸을 검색하기 때문에, 이용하셨던 차량이 종점에 도착하면 확인 후 연락을 준다고 하셨다.


이 과정은 매우 침착하고 부드러웠다.


한국의 우수한 치안을 생각하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면서도 못 찾으면 뭐 다시 사면되니까. 

(적금이 깨질 뿐이다)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맥북과의 그간의 추억을 회상하며 다시 내 손에 돌아올 수 있을까 불확실성에 나 홀로 줄다리기 중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평온했다.


그때 속으로 계속 외쳤던 주문은 "그래서 어쩌라고" 였다.


신창역 까지 가서 찾아와야 했지만 땅끝마을에 있다해도 콧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다행히 맥북은 다시 나의 곁으로 돌아왔다.






20대를 공황장애와 불안장애와 함께 했다

다행히 지금은 공황 증상은 없어졌고 불안장애로 인한 증상은 많이 좋아진 상태이다.


한창 이 두 친구가 날 괴롭힐 때는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발악을 했다.

그러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친구들은 내재되어 쌓인 감정들이, 특정 상황에 트리거가 되어 갑자기 찾아오는 것 같다.


남들에게 자신 있게 "나 이제 괜찮아!" 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금도 그 두 친구들이 찾아왔던 원인은 모른다.

사실 이제는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기에,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할 이유도 없다.


"껄껄하지 말자"

지금껏 "껄껄" 한게 있다면 처음 공황장애 판정을 받기 전,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할 때 좀 더 대처를 잘할 걸" 이다.






증상이 진행 중이었던 과거에는, 불안한 상황에 항상 "어떡하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아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네.. 증상이 나타나면 어떡하지?"

"이번에 발표를 해야 하는데.. 너무 떨면 어떡하지?"


여기서 더욱 심각해지는 것은 불안한 감정이 내포되어있는 부정적인 의미의 "어떡하지?" 라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대부분 회피성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극단적으로 지하철을 보내버리거나, 발표를 회피하는 경우도 생기곤 했다.



지금은 이러한 상황에 마법의 주문인 "어쩌라고" 를 사용한다


"아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네? 증상이 나타나도 어쩌라고"

"이번에 발표를 해야 하는데.. 떨 수도 있지 어쩌라고"


"어쩌라고" 주문을 사용하면 회피성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이렇게 연습을 하다 보니, 위에 상황처럼 미리 걱정하는 횟수 자체가 줄어들었다.






게임에서 특정 스킬을 강화할 수 있듯이, "어쩌라고" 스킬도 나날이 증가해간다.

지금은 공황과 불안이 나를 괴롭혔던 20대의 기억 또한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말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좋고 나쁨은 중요하지 않다. 

가끔은 이러한 경험 또한 지금의 선택들을 할 수 있었던 과정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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