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베 꼬인 날엔 꽈배기가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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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꽈배기처럼 베베 꼬이는 날이 있다. 뭘 해도 짜증 나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만사가 귀찮아서 기분이 바닥을 치는 날. 이렇게 꼬인 마음은 억지로 풀려고 하면 안 된다. 서서히 알아서 풀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하루가 기분에 잡아 먹히기 전에, 나는 빠르게 방 안을 안정 모드로 세팅한다.
가장 먼저, 형광등 불은 마음을 가라앉히기엔 너무 밝으니 은은한 주황빛이 도는 조명으로 바꾼다. 그다음엔 책상에 태블릿을 놓고 가볍게 보기 좋은 시리즈 애니를 튼다. 마지막으로 간식까지 세팅하면 꼬인 마음 풀기 준비는 다 끝났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간식이다. 꼬인 건 꼬인 것으로 풀자. 베베 꼬인 내 마음과 닮은 꽈배기를 먹을 때 효과가 가장 좋았다.
집 근처에는 배달 가능한 꽈배기 전문점이 있다. 그래서 항상 즉흥적으로 꽈배기 생각이 나면, 그 가게를 찾게 된다. 처음엔 배달로 받아서 먹는 꽈배기는 직접 사 먹는 것보다 눅눅하고 맛이 없을 거란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내 편견에 불과했다. 오히려 종이봉투는 기름 자국 하나 없이 온전했고, 따끈 바삭한 맛이 일품이었다. 거기다 최소주문금액을 맞추기 위해 주문한 찹쌀 도넛까지 더하면, 완벽한 간식 한 상이 완성 된다.
조용하고 아늑한 방 안에는 머릿속을 비울 수 있는 애니메이션 소리만 울려 퍼진다.
바삭-.
달콤한 설탕 옷을 입은 꽈배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평소라면 설탕이 떨어질까 조심하며 먹지만, 혼자 방 안에 있을 땐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달콤한 맛 뒤에 따라오는 바삭함, 그리고 고소한 빵의 맛. 기름에 많이 절여지지 않아서 담백하다.
꽈배기는 내가 베어 물수록 밧줄 같던 모양이 서서히 풀려간다. 그렇게 내 마음도 그 한 입에 맞춰 서서히 마음을 풀어가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시끄럽게 떠들어댔던 내 머릿속도 이쯤 되면 조금은 잦아들기 시작한다. 뭐 때문에 그렇게 짜증이 났었는지, 왜 자꾸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도 서서히 잊게 된다. 꽈배기는 신기하게 딱히 물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만 하나씩, 하나씩 먹게 된다. 하나, 둘, 입안에서 사르르 사라질 때마다 마음속에 켜켜이 쌓였던 짜증도 같이 녹아내린다.
정말 꼬일 대로 꼬여버린 날엔 이 방법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억지로 애쓰지 않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게 다음을 맡겨둔다. 만화책을 본다던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취미 활동을 한다던가. 내 감정은 생각보다 단순해서, 이렇게 속여주는 상황이 오면 금방 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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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종이봉투와 함께 어느새 애니메이션도 끝이 났다. 다 풀려 사라진 꽈배기처럼, 풀리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게 꼬인 내 마음도 완벽하게 풀렸다. 어차피 이럴 감정이었다. 작고 달콤한 꽈배기 하나에 풀릴 감정.
이 작은 기분에 내가 잡아먹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 하루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짜 감정에 속지 않고 나름의 방법대로 나를 돌본 것이니까. 이렇게 서툴지만 하나씩 나를 돌보는 방법을 익혀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