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바질 에이드에 담긴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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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바질 에이드 한 잔 주세요."
어쩐지 그날은 평소 하지도 않던 도전이 하고 싶어졌다.
매미가 우렁차게 울어대고, 따가운 햇빛과 후덥지근한 공기가 나를 감싸오는 여름. 내게 여름은 단순히 더위로 지치는 계절이 아니다. 여름에 쥐약인 햇빛 알레르기가 내 생활 반경을 좁혀오기 때문에 더 힘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여름을 온전히 느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축 쳐져있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걸 하고 싶어졌다. 그래, 혼자 카페라도 가자.
이름부터 어딘가 낯선 토마토 바질 에이드. 토마토와 바질 둘 다 좋아하지만, 그 둘이 합쳐져서 음료로 나온다는 건 쉽게 상상이 안 갔다. 그럼에도 그날은 꼭 마셔야 할 것만 같았다. 에이드가 담긴 컵 속에는 내가 느끼지 못한 온전한 여름이 다 담겨있는 듯했으니까.
평소 카페에 가서 친구들이 메뉴를 물어보면 늘 같은 말만 했다.
"응,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카페를 가면 아메리카노만 마시게 된다. 다른 메뉴가 뭐가 있나 둘러보는 것도 귀찮고, 그냥 아메리카노가 제일 만만한 탓도 있다. 그런 내가 그날 카페에서 토마토 바질 에이드를 선택한 건, 나름의 큰 도전 중 하나였다.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은 딱히 하지 않았다. 내가 한 선택에 후회를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물방울이 살짝 맺힌 유리잔에 담겨있는 에이드는 보기만 해도 청량함이 느껴졌다. 투명한 얼음 사이로 붉은 태양 같은 토마토가 예쁘게 색을 채워주고, 그 사이로 떠오르는 바질 잎이 빈 공간을 채워줬다. 토마토와 바질의 향에서 싱그러움이 피어났다. 내가 바라던 여름이 정말로 이 유리잔 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둘의 조합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토마토의 상큼함과 달달함, 바질의 향긋함까지. 갈증이 싹 사라지는 청량감이었다. 내가 느끼지 못한 여름의 남은 부분이 바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늘 똑같은 메뉴에서 벗어나 낯선 조합에 기꺼이 마음을 열고, 새로운 즐거움을 찾은 나. 여름이 단순히 지치고 괴로운 계절이 아니라, 새로운 걸 도전하게 만드는 계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잔을 다 비우고 나서도 입 안에 청량함은 오래 남았다. 에이드 속에 있던 말랑한 토마토의 맛이 혀 끝에 계속 맴돌았다. 아, 정말 맛있었다. 무더위를 뚫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실 나는 혼자 카페에 가는 걸 썩 좋아하진 않는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데 아직 미숙한 사람이라, 작업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 빼고는 잘 찾지 않는다. 어쩌면 그날 내가 했던 가장 큰 도전은 낯선 음료를 마시는 게 아니라, 혼자서 오롯이 이 시간을 즐기는 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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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도 햇빛은 여전히 나를 내리쬐고 있었다. 하지만 여름을 먹었다는 마음가짐 때문일까, 남은 여름이 조금은 덜 버겁게 느껴졌다. 힘들어도 나름 나대로 잘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름은 여전히 버겁지만, 동시에 여름만이 주는 특별한 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