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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안아주는, 오늘을 열어주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와플과 크로플

by 김온지



생크림 추가, 아이스크림 추가, 과일 추가...... 수많은 추가 옵션들이 있는 요즘 와플. 맛도 풍부하고, 각자의 취향대로 골라먹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와플은 단 하나. 아주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적당히 바삭한 두께를 가진 갓 구운 빵 위로 얇게 올라가는 생크림과, 달달하면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뽐내는 사과잼까지. 이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와플을 가장 좋아한다. 많은 토핑들의 유혹이 있어도 굳건하게 최애 와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초등학생 때, 학교 앞 아파트 단지에는 가끔 와플 트럭이 찾아왔다. 초반에는 특정 요일마다 오셨던 것 같은데, 나중에는 복불복으로 찾아오셨다. 수업이 끝나고 방과후를 하러 가는 길, 먼저 하교한 애들이 손에 와플을 들고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그걸 본 순간부터, 방과후 내내 내 머릿속은 와플로 가득 차버린다.


방과후가 끝나면 친구들과 곧장 트럭으로 달려갔다. 한 개에 1,500원. 주인아저씨께 주문을 하고 나면, 아저씨가 바로 반죽을 부어 구워주셨다. 다 구워진 와플기에서는 항상 노래가 흘러나왔다. 능숙한 솜씨로 생크림과 사과잼을 슥슥 발라주시는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따끈한 종이봉투가 내 손에 꼭 쥐어져 있다.


갓 구운 와플은 감싸진 종이를 타고 내 손끝을 따뜻하게 해 줬다. 바삭한 빵과 달콤한 잼, 그리고 은은한 크림의 조합. 그 맛은 먹어본 사람이라면 다 공감할 것이다. 어린 초등학생들의 입맛을 모두 사로잡은 마성의 맛이니까. 이 단순한 맛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 걸까. 지금까지 내 마음속 와플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나며 와플 트럭은 사라졌지만, 그때의 따뜻한 맛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요즘은, 새로운 디저트 하나가 내 미각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바로 크로플. 사실 처음 크로플이 나왔을 땐 별로 흥미가 가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크루아상을 비롯한 페스츄리 디저트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러니 그 생지를 와플기에 눌러봤자 뭐가 다를까 싶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뭐든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고, 한 입 먹자마자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달콤하면서도 그 사이에서 진하게 풍기는 버터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식감도 내가 생각한 페스츄리 빵이랑은 조금 달랐다. 와플기의 힘인가?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부드럽고 쫀득한 게 입 안을 즐겁게 해 줬다.


와플은 심플하고 단순한 조합이 좋지만, 크로플만큼은 아이스크림을 필수로 올려먹는다. 시원 달달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갓 구워진 크로플 위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는 순간, 내 혀도 달콤하게 녹아내린다.



생각해 보면, 와플과 크로플은 서로 닮은 듯 다르다. 와플이 내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디저트라면, 크로플은 지금 이 순간을 새롭게 열어주는 디저트라 할 수 있다. 하나는 과거의 나를 안아주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나를 안아준다. 지나온 날들을 떠올리게 하고, 오늘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맛.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매력으로 나를 즐겁게 해 준다.


오늘은 왠지 와플이 먹고 싶어 졌다. 해가 조금은 수그러들기 시작한 늦여름, 금방 식어버리는 종이봉투를 안고 하교하던 내가 생각나서. 돌아가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늘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괜스레 코끝에 달콤한 사과잼의 향기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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