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이 알려준 빈자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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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케이크는 어떻게 할래?"
따가운 햇빛이 인사하고, 히터 바람 같은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부는 여름의 시작. 올해도 어김없이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모였다. 꼭 이렇게 하자고 정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도 친구들의 생일 때는 서프라이즈로 케이크를 전달하곤 한다. 이쯤 되면 생일자도 눈치채고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우리는 나름 매번 다르게 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나 하고 싶은 게 있어."
우리 중에 서프라이즈를 가장 잘 기획하는 친구가 말했다. 친구가 하고 싶었던 것은 이름하야 '도꾸.' 한창 sns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도넛 꾸미기'였다. 오, 좋은데? 사실 나도 도꾸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 제안이 반가웠다. 매번 똑같은 케이크와는 다른 차별점도 생기고, 우리가 직접 꾸며서 준다는 것도 의미 있었기에 서프라이즈로 딱이었다.
그렇게 6월 생일 서프라이즈, 작전명 <도넛을 꾸며라!>가 시작됐다.
친구의 생일 당일, 우리는 생일자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프라이즈 작전 팀은 미리 만나서 도넛을 꾸몄다. 준비물은 간단하다.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과 알록달록한 데코용 초코펜만 있으면 된다. 일사천리로 준비를 끝마친 우리는 각자 자리를 잡았다. 미리 디자인을 몇 개 찾아놨어도 막상 도넛 위에 그림을 그리고 꾸미려니 손이 쉽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조심조심, 집중해서. 도넛 구멍을 중심으로 우리는 친구를 생각하며 조심스레 색을 입혀 나갔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여서 사부작사부작 꾸미기를 하니까 그 순간 자체가 소중했다. 중학생 때, 친구들을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도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조곤조곤 수다를 떨며 만들기를 했었는데.
그때의 공기도 맡고, 생일자 친구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는 금방 한 박스를 다 채웠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도넛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귀여웠다. 6개의 도넛에 생일자 친구를 향한 우리의 마음이 가득 담겼다.
그날의 서프라이즈는 대성공이었다. 받고서 좋아하는 친구의 모습에, 뿌듯함과 함께 어깨가 마구 올라갔다. 기뻐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만 든다. 이 맛에 서프라이즈를 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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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도넛. 도넛은 어쩐지 구멍이 있어도 비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달달한 설탕 코팅의 향이 빈 부분의 공백마저도 부드럽게 감싸주는 듯, 가득 채워주는 것만 같다. 도넛의 빈 부분은 매력이 있고, 오히려 이래야만 도넛 같다고 느껴진다. 빈 공간이 있다고 다 흠이 있는 건 아닌데, 나는 왜 그걸 몰랐을까.
온전하지 않은 내가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특히 마음에 큰 구멍이 나서 공허한 나를 보여주는 건 죽도록 싫었다. 비어있는 채로 있어도 괜찮았을 텐데. 있는 모습 그대로도 충분했을 텐데. 빈자리가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건 몰랐다.
살다 보면 누구나 마음 한가운데 구멍 같은 빈자리가 생기기도 한다. 나는 의심이 많고 겁도 많은지라, 아직도 "나도 도넛처럼 빈자리가 있어도 온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늘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처럼 텅 빈 구멍이 부끄러워 숨기진 않는다. 굳이 채우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걸, 비어있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도넛처럼 빈자리를 개성으로 만들면 되는 거다. 어쩌면 우리 모두, 조금은 덜 완벽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