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딩이 건네는 작고 귀여운 용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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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은 늘 시끄럽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도 지치지도 않는 건지, 시키지도 않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떠들어댄다. 의외로 멍 때리기는 내 특기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멍 때리는 와중에도 머리는 조곤조곤 입을 쉬질 않는다. 한평생 이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딱히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한 번 과부하가 온 뒤로는 내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워서 견디기 힘들어졌다. 제발 조용히 하라고 소리쳐봐도,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게 나한테는 가장 어려운 말이다. 어떻게 아무 생각을 안 하지? 심지어 나는 잠을 잘 때조차도 꿈을 꾸며 생각을 하는데.
푸딩은 이런 나를 잠시나마 구원해 주는 디저트다. 신기하게도 푸딩을 먹을 때만큼은 쓸데없는 잡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끄러웠던 머릿속도, 달콤한 푸딩을 맛보고 잠잠해진 걸까? 푸딩을 먹을 때 내 머릿속은 맛있다, 귀엽다, 달콤하다. 딱 이 세 마디만 남기고 입을 다문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미워하는 데 힘을 쏟았던 시기가 있었다. 자기혐오에 빠져 남들과 비교하고, 정작 내게 닥쳐오는 일들은 외면한 채 살았다. 이상하게도 그 시기에는 푸딩이 자주 떠올랐다. 자주 먹던 것도 아니고, 유난히 좋아하던 디저트도 아닌데...... 그냥 푸딩이 너무 먹고 싶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하루는 친구를 만나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친구와 수다도 떨고 쇼핑도 했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다른 곳에 가 있는 기분이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은 불안정해서 그 웃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마치 가면을 쓰고 하루를 연기하는 것처럼. 분명 즐겁고 좋았는데, 불안하고 텅 빈 마음이 나의 모든 감정들을 집어삼켜버렸다.
집으로 가기 전, 우리는 마지막으로 쇼핑몰을 들렀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그토록 바라왔던 푸딩을 마주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푸딩 하나 산 게 뭐가 대단한 거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날 푸딩을 찾으려고 꽤 많은 카페를 찾아봤었다. 동네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는 맛이라 기대하면서 찾았는데, 우리가 가는 곳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찾기도 어려운 노릇이니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나를 위로라도 하듯, 쇼핑몰 한켠에 푸딩가게 팝업스토어가 딱 열려있었던 것이다.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며 심장이 뛰었다.
"진짜야? 진짜 푸딩이야?"
정말 오랜만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동안은 행복을 의심하며 지냈는데, 그 순간만큼은 행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푸딩은 또 한 번, 나를 살게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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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딩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디저트다. 비주얼도 귀엽고, 뽀잉뽀잉 흔들리는 모습마저도 사랑스럽다. 이 작은 게 내 머릿속 소음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면서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 모양을 유지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흔들릴 대로 흔들리고, 무너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는데.
그래도 이제는 예전처럼 무너진 나 자신이 그리 밉진 않다. 무너진 뒤에 다시 모양을 잡고 일어나는 게 얼마나 큰 용기인지, 그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이제는 잘 아니까.
스푼으로 한 입 떠먹으면, 입 안 가득 퍼지는 부드러움, 달콤한 캐러멜 시럽의 향. 매 순간이 시끄러운 내가,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맛. 푸딩은 나에게 잡생각을 잠재워주는 소중한 디저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