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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잔 속 작은 아파트

층층이 마음을 담은 파르페

by 김온지


내가 생각했던 비주얼 그 자체였던 첫 파르페. 블로그를 운영하던 시절이라 열심히 담아냈었다.



어릴 적, 만화 속 파르페는 늘 꿈같은 디저트였다. 내 기억 속 만화 주인공들은 카페에 가면 파르페를 자주 주문했던 것 같다. 예쁜 유리잔 속에 층층이 쌓인 크림과 과일, 아이스크림, 예쁜 데코까지. 어린 내 마음을 홀리기에 딱인 비주얼이었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먹는 모습을 보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자라서 파르페를 처음 먹은 날, 파르페를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내가 드디어 파르페를 먹는다고?"


나도 만화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이런 거 하나에 설레는 내가 유치하기도 했지만, 그 순간 자체가 나에게는 꿈같았다. 오히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좋았다. 사실 처음 먹어보는 파르페의 맛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그런데도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이미 내가 꿈꿔왔던 디저트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좋았으니까. 예쁜 비주얼을 가진 디저트를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파르페는 유리잔 속 작은 아파트 같다. 1층엔 부드러운 빵이, 2층엔 달콤한 크림이, 3층엔 바삭한 시리얼이, 맨 꼭대기 층에는 과일, 아이스크림이나 휘핑크림이 사는 작은 아파트. 파르페 하나가 그런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더 귀여워진다.


계절이나 카페마다 들어가는 재료도 다르고, 메뉴도 다양해서 고르는 재미가 있다. 여기는 딸기 아파트, 저기는 멜론 아파트. 전문적인 카페를 찾게 된다면 초코나 푸딩 아파트도 만나볼 수 있다. 겉보기엔 하나의 예쁜 디저트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층층이 자신의 색을 머금고 있다.


파르페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함께 있을 때 맛이 더 극대화된다. 물론 단독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주변에서 하나씩 도와주며 그 맛이 더 풍족해진다. 한 번에 모든 맛을 느끼려면 조심스럽게 퍼내야 한다. 하지만 최고의 한 입을 위해 모든 재료를 한 스푼에 담고 싶어서, 자꾸만 욕심을 부리게 된다. 조심스럽게 떠내려 해도, 결국엔 넘쳐흘러 버리게 된다. 욕심을 덜 부리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래도 이게 내가 먹는 파르페의 묘미다.


처음에는 맛보다는 예쁜 비주얼에 홀렸다. 하지만 지금은 파르페를 보면 예전의 내가 떠올라,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든다. 먹고 싶어서 혼자 다짐했던 의지와 순수함, 처음 먹어봤을 때의 떨림. 이런 감정들을 잊고 지내다가도 파르페 한 입에 되살아난다.


유리잔 속 작은 아파트는 내 마음을 닮았다. 겉으로는 괜찮은 나인데, 막상 속을 층층이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가득한 내 마음.



나는 아직도 모든 게 다 서툴다. 나 자신이 밉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마음의 층들을 다 뭉개버린 적도 많다. 이런 나도 조심스레 한 스푼 안에 내 마음을 담아 꺼내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까. 꺼내다 넘쳐흘러도, 다시 닦고 일어나면 괜찮아질까. 파르페를 보며 건강한 욕심을 부리게 된다.


한 입 가득 들어차는 달콤함과 층층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맛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에게 파르페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좋아지는 디저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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