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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빛 Apr 11. 2021

OPPA의 등장이 반갑다.

오빠라는 표현에 대한 거부감


나는 왜 오빠라는 표현이 불편할까.


 나는 친오빠를 제외하고는 오빠라는 호칭을 거의 쓰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들을 만나게 됐을 때 대부분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호칭을 생략하고 "저기.."라고 말한 다음에 본론으로 들어가거나 꼭 이름을 불러야 할 때는 "OO님!"이라고 불러놓고 혼자 속으로 '아... 이게 아닌데' 하고 있다. 오빠라고 부르기는 싫고 상대방보다 어린 내가 상대방OO씨라고 부르기엔 뭔가 예의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OO님도 이상한데 형은 더 이상하다. 그럴 때마다 외국처럼 그냥 호칭 없이 이름을 부르면 안 되나라는 불만도 생긴다. 오빠라고 부르면 간단히 해결될 일인데 왜 그게 그렇게 싫어서 이런저런 고민을 사서 하고 있을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차마 털어놓 못했다. 이런 걸로 고민하는 내가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춰질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혼자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친한 친구에게 이 문제에 대해 털어놨다. 친구도 오빠라는 호칭이 꺼려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조금의 위안을 받기는 했지만 마음속에 답답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오빠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드는데 그 이유를 뭐라고 딱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내가 왜 이러는지 더 자세히 파헤쳐보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왜 그렇게 오빠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인가.


 2019년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는 오빠 소리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은정은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술을 마신 직장 상사의 대리 운전을 했는데 아버지 뻘인 상사가 "오빠라고 한번 불러볼래?"라는 말을 한다. 은정은 차를 몰아 분리수거장에 들이받고 차에서 내려 쇠파이프를 찾아든다. 상사는 도망가기 시작하고 은정은 쇠파이프를 든 채로 상사를 쫓아간다.  


 드라마 제작사 마케팅 PD로 일하고 있는 한주는 PPL로 들어온 청소기를 해당 장면에서 사용해야 하는데 남자 배우가 촬영장에서 이를 거부하여 곤란을 겪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자 감독에게 말을 했더니 감독은 스태프들과 배우 다 남자니 '오빠'라는 소리를 하면서 애교 부리면 해결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놔두고 왜 맨날 죽는소리를 하냐고 말하면서 말이다. 다음 촬영 때 한주는 사람들이 질려서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오빠를 외치며 다닌다. 결국 질려버린 남자 배우가 청소기를 쓰겠다고 하자 한주가 해탈한 표정으로 말한다. "고마워요 오빠"


 2013년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나온 장미하관 팀이 부른 '오빠라고 불러다오'에서는 오빠로 불리고 싶어 하는 남성들의 마음을 가사로 풀어냈다.


곡 설명 : 30대 남성의 ‘오빠'에 대한 열망을 담은 신나는 분위기의 락으로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포인트인 곡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왜 나를 괴롭히나 제발 아저씨라 부르지 마 
오빠라고 좀 불러다오 x 3
오빠라고 불러다오~ 오빠! 오빠! 오빠!


 이 노래의 가사처럼 생각하는 남성들은 왜 자신보다 어린 여성에게 오빠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일까. 나이가 들어 아저씨로 불리는 것 자체가 서글펐으면 1절에는 '오빠라고 좀 불러다오'하고 2절에는 '형이라고 좀 불러다오'라고 써도 되지 않았을까. 왜 형에서 아저씨로 호칭이 변화하는 것보다 오빠에서 아저씨로 변하는 것에 더 포커스를 맞췄던 것일까.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의 공통점은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리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성별이다. 성별이 다르다고 해서 느껴지는 느낌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 오빠가 단순히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쓰는 단순 호칭으로만 설명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여성이라는 성별이 본인을 부르는 것 자체가 좋았으면 동갑이나 연상의 여성이 아저씨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본인을 부르는 것도 좋아야 하는데 왜 본인보다 어린 여성에게서 굳이 '오빠'라는 호칭을 들어야만 기쁠까. 오빠라는 소리가 더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나이 많은 남성과 어린 여성 간의 관계가 가지는 특수성은 무엇일까. (보통 이성애자 입장에서) 오빠라는 단어에는 친근감을 표현하는 의미 이상의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남성과 어린 여성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어떤 성적인 텐션도 담겨있지 않을까라고 추측해본다. 


 남성들이 기센 여성을 싫어하고 남자 기 살려주는 여성을 선호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왜 여성이 남성의 기를 살려줘야 할까. 어린 여성은 상대적으로 본인의 기를 안 누르고 고분고분하게 본인의 기를 살려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어린 여성을 선호하는 것인가. 본인보다 어린 여성은 컨트롤하기 쉬워서 그런 것일까. 혹은 남성들은 자신을 오빠라고 불러주는 어린 여성을 보호하는 자기 자신에게 만족감을 느끼는 것일까.


 오빠 하면 애교를 빼놓을 수 없다. 오빠 소리를 듣고 싶은 데에는 애교를 보고 싶다는 의미도 내포되어있다. 그동안 내가 보고 자랐던 미디어에서 오빠라는 단어는 애교의 맥락에서 많이 소비되었다. 예를 들어 예능에서는 여자 연예인에게 "오빠야~"라는 사투리를 애교로 시킨다. 애교라는 것 자체가 약자가 강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애교를 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귀여운 존재라는 걸 어필하게 된다. 


 오빠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든 오빠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든 똑같은 인간이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지켜줄 필요가 없다. 보호가 아니라 존중이 필요하다. 한 사람은 더 높은 위치에 서서 시혜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라 평등하게 같은 선상에서 존재해야 한다. 누군가는 오빠라는 단어를 들음으로써 작고 어린 여성을 내가 '보호해준다' 혹은 '귀엽게 여긴다'라는 감정을 느끼고, 누군가는 오빠라는 단어를 발화함으로써 스스로 낮은 위치에 놓였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빠'라는 단어는 나이 많은 남성과 어린 여성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보여준다. 나는 도저히 오빠라는 단어에서 불평등의 감각과 성적인 뉘앙스, 그리고 애교의 뉘앙스를 떨쳐낼 수가 없다.  


 그 인식이 굳어지다 보니 '오빠 알레르기'가 생겼다. 노래가 좋아서 듣고 있는데 가사에 오빠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순간 멈칫하며 '아 오빠는 넣지 말지..'라는 생각이 든다. 오빠라는 소리를 하려고 하면 목구멍에서 그 단어가 턱 하고 걸리고 소름이 돋는다. 오빠라는 단어를 쓰게 되면 내가 스스로를 작고 여리고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 여성으로 포지셔닝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꼭 말해야 한다면 애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투박하고 우렁차게 외칠 것이다. 





오빠 대신 오피피에이



 그래서 OPPA의 등장이 반가웠다. 원래는 OPPA는 K-POP을 좋아하는 외국 팬들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언니, 오빠, 누나, 형이라는 표현 중 오빠를 발음 나는 대로 영어로 적은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문명특급의 재재님이 유키스의 수현 님이 출연했을 때 수현 OPPA(오피피에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유키스의 노래 중 '시끄러'라는 노래에 '오빠는 니가 너무 밉다'라는 가사가 있는데 거기에 맞춰서 재재님이 수현님을 수현 오피피에이라는 표현으로 재치 있게 불렀다. 이 단어는 나에게 착 달라붙었다. 오피피에이라니..! 오빠가 아닌 오피피에이! 이건 신기원이다. 오빠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애교의 뉘앙스가 없이 오피피에이. 이 얼마나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표현인가.


 오피피에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의도가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오빠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오글거림을 풍자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내 마음대로 누군가의 의도를 추측하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사실 의도가 어떻든 상관없다. 난 그저 오빠라는 단어의 대체어로 오피피에이가 널리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오빠'라고 부르는 자리에 사람들이 'OPPA'를 유행처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난 정말 OPPA가 오래오래 유행되어서 관용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보다 나이 많은 남성에게는 오피피에이라고 부를 수 있게 말이다. 인터넷에서 뿐만 아니라 오빠라는 단어의 대체어로 일상생활에서 OPPA를 사용했으면 좋겠다. 일단 나부터 외쳐본다. 헤이!! 오피피에이!! 오피피에이!!!!!!


 그날이 오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그때까진 임시방편이라도 마련해놓아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상대방과 내가 모두 편안한 의사소통이 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을 떠올려봤다.


전략 1) OO님, OO 씨, 형을 오빠의 대체어로 사용하기.

전략 2) 미친 척하고 오피피에이라고 불러보기. 그럼으로써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 되어보기. 

전략 3) 그냥 외국 스타일로 이름 부르기.

전략 4) 오빠라고 불러야 할 것 같지만 오빠 소리가 안 나올 때, 처음 오빠라는 말을 터야 할 때의 경우 

: 오빠의 빠를 길게 늘이지도 말고, 오빠↗도 말고. 

낮은 목소리로 건조하게 같은 음으로 오→빠→ 혹은 빠의 음을 낮춰서 오→빠↘라고 말해보기. 


 전략 2와 3이 마음에 들지만 난 소심하고 눈치를 보는 사람이기에 전략 1과 4가 현실적인 것 같긴 하다. 지금 있는 곳은 독일이니 다행히 한국에서보다는 오빠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될 확률이 현저히 낮지만 이곳에도 한인 유학생들이 많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 현실이 바뀌지는 않으니까 어떻게든 이 거부감을 이겨내 봐야 한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오빠라는 단어가 억울해할 것 같아서 분명히 해둔다. 오빠라는 단어 자체는 잘못이 없다. 오빠라는 단어에 야릇한 뉘앙스를 부여한 미디어와 사회가 잘못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차곡차곡 쌓여 온 성별 간 불평등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 쌓여온 불평등을 내가 지금 당장 해결할 수는 없으니 오피피에이가 사전에 등록되고 널리 쓰이는 그날이 올 때까지는 일단 오빠 알레르기를 잘 극복하고 생활해봐야지. 그와 동시에 이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계속 찾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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