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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콘텐츠의 조건

새롭거나 재밌거나 공감가거나

by 송정훈


백세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가장 자주 한 고민은 이것이다. 볼만한 콘텐츠는 어때야 하는가? 어떤 조건을 갖춰야 보는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일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품은 사람의 인생이 잘 안 풀리고 업무 만족도가 낮을 확률이 높듯이, 나도 내가 올리는 콘텐츠에 아쉬움을 느끼던 터라 이런 질문이 자꾸 마음속에 떠올랐다. 갓 짠 콘텐츠 구성안에서 22% 부족함을 느낄 때, 괜찮은 내용이라 생각했던 콘텐츠의 반응이 신통치 않을 때, 나는 무플 방지 위원회에서 나와 아무 말이라도 남겨주길 바라며 질문의 답을 찾아 헤맸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답은 “새롭거나 재밌거나 공감가거나” 였다. 한 입 먹고 손이 가지 않는 맛없는 디저트가 되지 않기 위해서, 콘텐츠는 정보로서 가치가 있거나, 피식하고 웃음이 나거나, ‘이거 완전 내 얘긴데!’ 하며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름의 결론이었다. 이 키워드들은 백세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참고했던 웹툰 가우스전자, 윤직원 인스타그램 계정,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최민석 작가와 금정연 작가의 에세이를 보며 찾아냈다. 책을 읽고 웹툰을 보고 인스타그램을 하며 재밌다고 느낀 장면들과 밑줄 친 글귀들, 저장하기로 모아 둔 콘텐츠를 다시 보며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는지 하나하나 분석했고, 나름의 답을 건져낼 수 있었다.



정보든 소재든 관점이든, 새롭다는 것은 신선한 자극이 있다는 뜻이며, 자극은 이목을 끈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신제품 소식에 눈길이 가고, 흔한 일본 여행기보다 남미로 떠난 이의 여행담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 같다. 백세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면서도 새로 출시된 국순당의 술을 소개하거나 진행 중인 프로모션을 알리곤 했는데, 그런 부류의 콘텐츠는 대체로 반응이 괜찮았다. 코믹스러운 요소를 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제법 애정과 관심이 담긴 댓글이 달렸다.


재미의 가치에 대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구나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팔로우하는 계정이 있고, 우울할 때 찾아서 보는 콘텐츠가 있을 테니까. 요즘 광고 중에 기억 남는 것들이 주로 재미를 앞세운 병맛 광고, 패러디 광고라는 걸 생각해보면, 볼 것이 넘쳐나는 콘텐츠 시장에서 재미란 크고 확실한 가치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공감을 무기로 SNS를 잘 운영하고 있는 계정은 윤직원의 인스타그램 계정이다. 그녀는 너와 내가 힘을 합하면 새 컴퓨터를 가질 수 있다며 할부 결제를 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그리곤 안된다고 소리치는 미래 모습을 마지막에 넣었다), 책상 서랍에 수북이 쌓여 있는 (도장이 하나만 찍힌) 카페 쿠폰들을 보며 이 정도면 모을 생각이 없는 거 아니냐며 스스로 다그치기도 한다. 그녀의 일상이 담긴 짧은 만화를 보면 ‘어! 나도 이런데’ 속으로 외치게 되고, 계속 보다 보면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하며 안도감마저 느끼곤 한다.


백세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공감의 힘을 실감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바쁜 시기였고, 일과 사람에 치여 짜증 내는 일이 잦았다. 부정적인 감정은 뱉을 당시엔 잠깐 시원하지만, 후회나 미안함 같은 또 다른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오기 마련이라 나는 출근길에 오늘은 짜증 내지 말자, 화내지 말자, 인상 쓰지 말자고 다짐하며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넘기 쉬운 장애물 같아 감정은 쉽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어둑해진 퇴근길에 그 순간을 돌아보며 내 마음도 함께 어두워지곤 했다. 그 모습을 인스타툰으로 올렸더니, 여태껏 올린 콘텐츠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공유 버튼을 누르기 전에는 반전의 재미나 정보가 없는 무난한 내용에 주저하는 마음이 한편으로 있었지만, 빠르게 늘어나는 좋아요 숫자는 그건 괜한 우려였다고, 또 공감의 힘이란 이토록 대단한 것이라고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볼만한 콘텐츠의 힘은 or가 아닌 and일 때 더 강력해지는 것 같다. 새롭기도 하면서 재밌고, 공감 가면서도 새로움이 있을 때 힘이 붙는다. 개인적으로 가우스전자 웹툰 중에 ‘혼일’에 대한 편을 좋아한다. 웹툰 속 인물들은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사람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없다며 ‘혼밥’의 좋은 점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누군가 정작 혼자 해야 하지만 잘 안 되는 것이 있다며 ‘혼일’을 언급한다. 이런저런 부탁과 지시를 하는 상사의 모습을 함께 묘사하면서. 홀로 집중해 일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각종 회의와 요청에 치이는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공감대가 높은 이야기였고, 익숙한 듯 새로운 개념을 뽑아내는 작가의 통찰력에도 크게 감탄한 콘텐츠였다. 그리고 내가 올리는 이야기들도 이렇게 속이 영글어 힘이 담겨있기를 바랐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콘텐츠 구성안을 짜고 난 후에, 또 이렇게 브런치든 블로그든 어딘가에 올릴 글을 쓰고 난 후에, 빈 종이를 꺼내 표를 만든다. 2행 3열로 된 표를 그린 다음 윗줄에 새롭거나, 재밌거나, 공감가거나 라고 적는다. 그리고는 방금 완성한 콘텐츠 구성안이나 글의 초고를 읽어보며 각각의 영역에 해당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하나씩 적어본다. 한 칸을 겨우 채울 때도 있고, 오늘처럼 뭘 적을지 몰라 멋쩍은 마음에 머리만 매만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다 보면 이번 편은 도저히 안 되겠다며 버리자고 결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맛없는 음식을 살려내는 라면 스프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그럴싸하게 수정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버릴 것은 버리고, 빈틈은 채워가며 완성도를 더해간다.


지금까지 백세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114편의 콘텐츠를 올렸다. 그동안 받은 콘텐츠별 좋아요 숫자를 그래프로 그리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 속(솔직히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내림세로 바뀌긴 했다)에서 상하로 조금씩 출렁이는 모양새가 된다. 그 속에서 잘 된 콘텐츠와 망한 콘텐츠의 폭이 아주 들쑥날쑥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콘텐츠의 기준을 세우고 그에 맞춰 자기 검열을 했던 덕분이 아닌가 싶다. 학생들이 엇나가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 주는 선생님처럼, 스스로 세운 콘텐츠의 기준은 바리케이드가 되어 최악의 결과를 막아주었다. 뭐, 물론, 그렇다고 크게 망한 콘텐츠가 없었냐고 묻는다면 아주 자신 있게 대답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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