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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이 스타일을 만든다

by 송정훈


작년 가장 인상적이었던 브랜드를 뽑으라면 버거킹을 꼽고 싶다. 1월부터 김영철 배우와 사딸라 패러디 광고를 내놓더니, 11월에는 인터넷 밈으로 떠돌던 타짜 곽철용의 명대사를 활용해 다시 한번 이슈를 만들었다. 유행을 발 빠르게 캐치해 실행으로 옮긴 것도 대단하고, 조회수 500만을 훌쩍 넘어서는 성과도 대단하지만, 광고를 실제 판매 활동으로 연결시켰다는 점이 특히 대단하다.


그들은 사딸라 광고를 진행하며 4,900원짜리 올데이킹 세트를 알렸고, 묻고 더블로 가라는 광고를 내보낼 때는 더블 패티 제품 중심으로 행사 상품을 꾸렸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찾진 못했지만, 버거킹에 관한 긍정적인 댓글이 넘쳐났으니 성과도 좋지 않았을까? 우선 나부터도 작년부터는 맥도날드보다는 버거킹을 찾게 된다. 몇 해 전만 해도 버거킹은 내게 패티, 숯불, 과함의 이미지 정도였지만, 두 번의 광고를 경험하면서 유쾌하고 즐거운 이미지가 덧대어졌다. 잘 노는 브랜드가 되었다.


버거킹과 비슷한 사례로 미원이 있다. 미원은 1956년 출시된 장수 브랜드이자, MSG 유해성 논란 때문에 오랫동안 커뮤니케이션의 초점을 제품의 안정성, 건강함에 맞춰 온 브랜드이다. 이런 전통과 배경을 가진 브랜드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혹여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 쌓여 온 내부 고정관념의 벽은 높고 견고해 쉽사리 넘을 수 없다.


그런 브랜드가 갑자기 김희철 씨를 모델로 내세우더니 여자 아이돌의 춤과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프로듀스 101>에 나온 노래를 패러디해 ‘픽미 픽미 픽미원’이라는 단순하고 흥겨운 메시지를 내보낸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입증된 김희철의 댄스는 잔망스러워 보는 맛이 있었고, ‘픽미 픽미 픽미원’이라는 가사는 직관적이면서 중독적이었다.


미원의 새로운 시도는 반향이 컸지만, 이전의 모습과 괴리가 큰 탓인지 내게는 조금 인지 부조화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몇 달 뒤에 그들이 가곡 오쏠레미오를 패러디한 ‘오쓸래미원’이라는 두 번째 광고 시리즈를 내놓았을 때, 그런 불편함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누군가의 낯선 행동도 여러 번 보면 납득하고 받아들이게 되듯이 미원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됐다. 그와 동시에 개성과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반복이란 사실을 실감했다. 점이 선으로 이어지듯, 비슷한 행동의 반복이 결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반복은 브랜드의 자산이 된다. 매년 봄이면 <벚꽃 엔딩>을 듣고, 10월이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듣게 되듯, 몇몇 브랜드는 어떤 계절과 연결되어 때가 되면 마주치게 된다. 봄에는 배민 신춘문예가 있다. 3월에 접수를 시작해 4월쯤 수상작이 결정 나는 이 드립 콘테스트는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올해는 어떤 주제, 형식으로 공모전을 진행할지, 작년에는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라는 카피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올해는 어떤 드립이 관심을 끌지, 또 수상작은 어떻게 확장될지 무척 기대가 된다(작년 수상작품 중에는 ‘아빠 힘내세요. 우리고 있잖아요.’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그 카피를 사용해 오뚜기와 사골곰탕 세트를 판매했었다).


보고 나면 이제 겨울이 왔구나, 느끼게 되는 광고도 있다. 찬 바람 불면 TV에 나오기 시작하는, 핫초코 미떼 광고. 그들의 영상은 유쾌한 상황 설정, 의외의 모델 선정, 예상치 못한 대사 때문에 재밌고 따뜻하다. 지난 겨울에는 가수 박완규 씨와 훈련사 강형욱 씨를 모델로 썼는데, 머리 스타일만 다를 뿐 외모는 판박이인 그들이 한 프레임 안에 함께 존재하는 건 그 자체로 유쾌한 에너지가 있었다.


특정 계절과 연관된 건 아니지만, 에픽하이 콘서트 포스터도 일관성이 있다. 그들은 꾸준히 영화, 드라마, TV 프로그램을 패러디해 콘서트 포스터를 만든다. 최근에는 극한직업, 스카이 캐슬을 소재로 활용했고, 이전에는 영화 her, 남극일기, 아저씨 같은 유명한 작품들을 패러디했다. 병맛도 이 정도 정성이면 상을 줘야 한다는 어느 블로그 글처럼, 병맛도 꾸준히 하니 개성이 되고 스타일이 되고 매력 포인트가 되어 버렸다.


반복되긴 하지만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광고도 있는데, 내겐 시몬스 광고가 그렇다. 쩍벌남의 다리를 오므리면서, 또 새치기한 남자를 뒤로 나자빠지게 만들면서 광고는 Manner Makes Comport 라고 말하는데, 왜 그런 상황을 보여준 건지, 그것이 침대의 기능, 가치, 매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작년 그들의 광고는 연한 핑크빛 배경에 그보다는 좀 더 진한 색으로 브랜드 로고를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볼 때마다 ‘마케팅 예산이 정말 많나 보다.’라며 부러워했었다. 지난 몇 번의 광고를 통해 그들이 제품이 나오지 않는 광고, 색감과 음악이 매력적인 광고라는 스타일은 추구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캐치했지만,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그걸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알맹이가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아 혼란스럽기만 하다. 침대를 살 거라면, 매트리스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일룸의 모션 베드나 잘생긴 박보검이 모델인 에이스 침대를 먼저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그들의 광고를 보고 나면 벌거숭이 임금님 동화가 생각난다. 착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옷이라는 수사로 임금을 속인 재봉사들처럼, 누군가 광고란 독특하고 오묘하고 갸우뚱해야 임팩트가 있다는 수사로 의사결정권자를 현혹한 건 아닐까 하며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 어쨌든 반복은 스타일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공감과 상식에 발 딛고 있을 때 뒷맛과 여운까지 좋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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