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비법을 전수할 것 마냥 거창한 타이틀을 달았지만, 사실 제목부터 어폐가 있다. 일기는 원래 에세이의 한 종류다. 네이버에 ‘에세이’라고 검색해보면 에세이 전문학원, 영어 에세이 교정 같은 광고가 쭉 뜬 다음 지식백과가 등장하는데, 거기 나오는 <문학비평 용어사전>에 따르면 에세이는 통상 일기, 편지, 감상문, 기행문, 소평론 등 광범위한 산문 양식을 포괄한다고 적혀 있다. 일기는 이미 에세이의 한 종류이니 일기를 에세이로 바꿀 방법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사전의 딱딱한 정의에 기대지 않더라도 최민석 작가가 베를린에서 보낸 90일간의 일상을 기록한 책 <베를린 일기>만 보더라도 일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수필이 될 수 있는지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뻣뻣한 자세로는 글을 이어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힘을 좀 빼고 일기를 나만 보는 글, 에세이를 남들도 보는 글로 규정한다면, 몇 가지 끄적거릴 이야깃거리가 있다. 혼자 쓰고 혼자 읽는 일기나 쓰던 사람이 어딘가에 올릴만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아래의 3단계를 거쳐야 했다.
1. 하고 싶은 말 분명히 하기
일기란 하루의 기록이다. 그 안에는 나의 일상과 감정이 주저리주저리 담겨 있다. 주말, 느지막이 일어나 아점을 먹고, 오후에 요즘 핫하다는 동네를 돌아본 다음 저녁을 먹었다는 식으로. 하지만 이렇게 알맹이 없는 일상을 쭉 나열한다면 아들을 사랑하는 우리 엄마도 읽지 않을 글이 되어 버린다. 황혼 육아로 바쁜 그녀의 시선을 잠시라도 붙잡기 위해서는 전하고 싶은 말이 분명해야 하고, 그 안에 볼만한 가치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간 책을 읽으며 밑줄 친 문장들을 살펴보니 글의 가치는 ‘새롭거나(정보든 지식이든 표현이든), 재밌거나(피식 웃게 되는), 공감가거나(이거 완전 내 얘긴데!)’에 있더라. 글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전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이고 그 메시지 안에는 어떤 가치가 담겨 있는지 미리 점검을 해 본다면 제법 글다운 글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2. 연결하고 연결하자
몇 해 전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 패널로 나온 박중훈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쁜 길은 없는 것 같아요. 그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모두 다 좋은 길인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문득 이런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세상에 나쁜 선택은 없는 것 같다. 선택에 관한 후회와 미련이 나쁜 것일 뿐.” 그리고 그날 일기에 TV를 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며 그 문구를 기록해두었다.
이 짧은 일기가 남들이 보는 글이 되기 위해서는 공감의 장치가 필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개인적인 경험담을 연결하는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나는 두 곳의 회사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내게 주어진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현실적인 조건과 기업의 전망, 선배들의 조언 등을 따져 한 곳을 골랐는데, 포기한 길에 대해 아쉬움이 오래도록 남아 마음고생을 제법 했었다. 머리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마음은 선택하지 않은 기업에 조금 더 가닿아 있던 탓이었다. 이런 구체적인 경험담을 덧붙이며 선택에 뒤따르는 후회와 미련을 놓아줄 수 없다면 어떤 선택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를 이어간다면 글은 점점 단단해지게 된다.
카피라이터 정철은 <카피책>이라는 책에서 광고를 할 때 영상 한 편으로 승부 볼 생각을 하지 말고 한 겹 한 겹 이미지를 쌓아 삼겹살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담을 연결하고 인용문을 넣어주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사례를 덧붙이며 ‘삼겹살’을 만들어주면 점점 글에도 읽을 맛이 생긴다.
3. 구성을 틀어보자
위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미우새를 봄 → 박중훈 배우가 나와서 이런 말을 함 → 그 말을 듣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됨 → 생각해 보니 과거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음 → 그러니 선택할 때 미련, 후회를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함.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런 식의 전개는 다소 밋밋한 경향이 있다. 글쓰기 수업을 들을 때, 내가 쓴 글을 읽은 강사는 잘 읽히지만 읽는 맛은 부족하다고 피드백을 주곤 했는데, 그런 비평의 절반은 평이한 전개 방식 때문이었다. ‘내 영화를 본 사람들은 1층으로 들어갔다가 2층으로 나오길 바란다’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처럼, 모든 컨텐츠에는 변화와 반전이 필요하고 그래야 읽으면서 몰입감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글을 쓰고 난 다음에 글의 알맹이를 제일 먼저 던진다거나, 대화체로 이야기를 여는 식으로 변화를 줘본다. “어느 날, TV를 보고 있는데 박중훈 배우가 나왔다.”라고 적기보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 나쁜 선택이 있는 게 아니라 나쁜 후회만 있다는 것을.”이라고 글의 문을 열어보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좀처럼 맛이 나지 않는 음식에 라면 스프를 살짝 더한 것처럼 글맛이 조금씩 살아나게 된다. 국물이 끝내준다고 ‘엄지 척’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흠, 먹을만한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글이 점점 되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