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를 쓸 때 이미 프롤로그, 에필로그까지 모두 써 놨었다. 그래서 마무리하는 글이 하나 더 필요하진 않았지만, 원고를 고쳐 쓰고 반복해서 읽으며 왠지 짧은 글 하나를 덧붙이고 싶어졌다. 비록 책에는 싣지 못했지만, 그 소회를 여기에 남겨 본다.
원고를 쓰며 기타로 연주했던 곡의 이름을 하나씩 또박또박 적어 보고, 영상으로 남아 있는 흔적을 더듬더듬 따라가 보았다. 대부분의 영상은 몇 초 보고 나면 ‘악’ 소리를 지르며 황급히 정지 버튼을 누르게 됐다. 그 안에 담긴 서툴고 조악한 솜씨가 부끄러워서. 하지만 사우나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듯 창피함을 참아가며 영상을 보다 보니 점점 대견하다는 마음도 생겼다. 지난 시간을 하이라이트 영상 보듯 재빠르게 훑어보니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의 흔적이 묻어났기 때문이었다. 그간 머물러 있고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지만, 그건 현재의 눈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생기는 일종의 착시 같은 것이었다. 과거의 눈으로 지금을 바라보니 아주 느린 속도일지언정 좋아지고 있었고, 서서히 나아가고 있던 셈이었다.
지난 흔적을 돌아보며 기타가 아닌 내 삶의 다른 영역 또한 이것과 닮아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지난 달의 나와 이번 달의 내가 똑같은 것 같고, 올해의 내가 작년의 나에서 별로 발전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 역시도 착시일 것이고 현재가 아닌 과거의 눈으로 지금을 바라본다면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쓰며 지난 과거를 돌아본다는 건 낙관을 배우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발전의 흔적을 바라보며 미래의 나 역시도 지금보다는 몇 걸음 더 걸어 올라간 위치에 머물 것이라고 희망을 품게 되니까. 오랜만에 마주한 긍정을 마음에 품으며, 지금껏 해왔던 대로, 기타 줄을 튕기고 노래를 부르고 곡을 지으며 기타와의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덧대어 나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