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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을 내고 든 생각

by 송정훈


책이 나왔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겉표지와 그 위로 적힌, 내 글씨가 아니라서 낯설게 느껴지는 내 이름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감정이 달려든다. 조그마한 성취를 했다는 뿌듯함, 앞으로 마주할 평에 대한 긴장감, 이왕 나왔으니 잘 팔렸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앞으로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는 열망 같은 것들이.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은 왠지 식상한 것 같아 피하고 싶었지만 그 말 말고는 달리 지금의 상태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여러 감정 중에서 가장 오래 마주한 것이 있다면 ‘위로’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쓴 책이 내게로 돌아와 건네는 다정한 위로. 이 안에는 너의 지난 시간과 그 시간이 머금고 있는 수많은 처음이라는 이름의 경험이 기록처럼 남아 있어, 라고 책이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던 시간은 이렇게 책의 형태로 남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를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에세이라면 더더욱. 원고를 쓰는 동안 기타를 잡았던 4년 전으로 돌아가기도 했다가 기타를 처음 샀던, 하지만 손가락이 아파 금세 포기해버렸던 6년 전으로 점프하기도 했다. 가깝게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첫 번째 작곡을 했던 몇 달 전으로 가기도 했고, 멀게는 내 마음속에 처음으로 기타를 치고 싶다는 열망이 심어진 열일곱 사춘기 소년의 수련회 장소로 움직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을 하나씩 되짚어 나가면서 그 시간 곳곳에 박혀 있는 소중한 이야깃거리를 꺼내 주머니에 담아 두고는 책상으로 돌아와 문장으로 적었다. 어떤 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정리하고, 또 어떤 건 주제에 따라 정리하면서. 그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 서툴고 헤맸던 지난 삶이 어떤 식으로든 정리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수납함을 여럿 구해와 어지러히 쌓여 있는 물건 중에 중요한 것을 추스르곤, 비슷한 것들끼리 차곡차곡 정리해 매듭까지 지어준 느낌이었다.




연말이 되면 종종 허무하다고 생각했다. 올해도 망했구나... 작년과 다름없는 한 해를 보냈구나... 아무것도 쌓지 못했구나... 어쩌면 허무함이란 인생의 기본값이고 우리는 새로운 매일로 지난 하루를 지워가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잡히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을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책으로 간직하는 일은 헛헛한 상념을 다독이는데 도움이 된다. 많은 추억이 휘발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시간을 헛되이 보냈던 건 아니라고, 그 순간도 지금처럼 꽤나 성심껏 살아왔다는 것을 책이 증명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하루를 기록하고, 한 주를 돌아보고, 한 달을 몇 개의 문장에 담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록이 모이고 쌓여 지금처럼 책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기록과 창작은 지난 시간을 예쁘게 정리하고 매듭짓는 우아한 방법이니까.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도, 나처럼 무언가를 꾸준히 써 온 어떤 이도, 책을 내고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한편으론 핫팩을 쥔 듯 온기를 느끼는 순간을 경험해보면 좋겠다.




* 그렇게 나온 첫 책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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