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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부터 출판까지의 프로세스

by 송정훈


편집자와의 미팅이 있고 일주일 뒤, 출판사로부터 계약서를 등기로 전달받았다. 계약서의 제목은 <출판권 및 배타적 발행권 설정 계약서>. 제목 밑으로는 지적재산권자, 저작권자의 이름에 내 이름 석 자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그간 쓴 계약서라고는 임대차 계약서처럼 무언가를 빌려 쓰고 돈을 내야 하는 위치에서 작성한 것뿐이었는데, 무언가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되니 왠지 성공한 것 같다는 착각도 들었다. 비록 계약금은 무척 작고 소중했지만...


계약서 내용 중에 가장 궁금한 부분은 사실 인세였다(편집자와의 인생 첫 미팅에서 돈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글쓰기가 지갑이 아닌 자아를 채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치킨 몇 마리 정도는 사 먹을 수 있길 바랐다. 책을 여러 권 낸 사람들이라면 보통 인세를 10% 정도 받고, 신인 작가라면 한 자릿수를 받는다고 하던데, 나의 경우는 몇 프로일지 무척 궁금했다. 서둘러 계약서를 읽어 나가니 세 번째 페이지에 ‘저작권 사용료’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만 부까지는 10% 살짝 밑도는 수준이었고, 만 부를 넘어가면 10%가 되는 형태였다.


계약서에는 배타적 발행권 계약의 효력이 몇 년인지, 2차 저작물로 판매되는 경우 얼마의 추가 인세가 제공되는지, 또 계약금은 얼마이고 언제까지 입금되는지가 적혀 있었다. 인세의 입금에 관한 내용도 자세하게 적혀 있는데 초판의 인세는 초판 인쇄 다음 달에, 2쇄의 인쇄는 3쇄 인쇄하는 달에 입금된다고 쓰여 있었다. 그 부분을 읽고 나니 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부디 이 책이 잘 팔릴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계약서에는 지적재산권자인 갑은 8월 31일까지 출판을 위해 필요하고도 완전한 원고(이하 완전원고)를 보내야 한다는 문구도 쓰여 있었지만, 일이란 게 계획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라서 계약서상의 일정대로 진행되진 못했다.




6월 초에 계약이 마무리되고 나서 한 달 동안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보통 출판사와 작가가 계약을 맺을 때 일부 원고만으로 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 걸로 알고 있다. 명성이 자자한 작가라면 원고 없이 계약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보통 계약 후의 시간은 작가가 글을 쓰는 시간이지만, 나의 경우 원고 초안을 모두 쓴 상태로 일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당장 해야 할 일은 편집자의 구체적인 피드백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7월 초가 되자 편집자는 원고 초안에 파란 글씨로 수정 요청사항을 적은 피드백을 보냈다. 수정사항이 많지는 않았고, 그 내용도 세세한 수정 요청이 아닌 탄탄한 원고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들이었다. 이 부분에서 유머나 위트를 더하면 좋을 듯합니다. 여기서는 자세한 설명을 보태 독자의 이해를 도웁시다. 이때의 감정을 약간 더 자세히 써볼까요?


푸른색으로 적힌 수정사항을 참고해 원고를 하나씩 수정해 나갔다. 원고를 읽으며 아쉽다고 느낀 부분이나 더 잘 쓸 수 있겠다 싶은 부분 역시 새롭게 집필했다. 퇴근 후 저녁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짬짬이 고친 다음 7월 말에 원고를 보냈고, 편집자의 두 번째 피드백을 기다리다 갑자기 창작열이 불타올라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말하곤 한 달의 시간을 더 들여 두 번째 퇴고를 했다.


그 원고를 바탕으로 2~3차례 교정지를 더 주고받았다. 교정을 거치면서 점점 지엽적인 부분의 수정이 이루어졌다. 맞춤법이 틀린 문장이 수정되고, 반복되는 문구가 치환되었다. 일기를 써오던 사람이라 그런지 나는 문장을 ‘나는’으로 시작하는 습관이 있었는데(마치 이 문장처럼), 그처럼 불필요하게 자주 나오는 단어 몇 개도 편집자에 의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사이 제목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출판사에서는 제목 후보라며 몇 가지 안을 보내줬고, 보자마자 첫 번째 안이 좋아 그 의견을 메일로 적어 보냈다. 편집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제목은 쉽게 정해졌다. 그로부터 몇 주 후에는 일러스트 작가와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작업한 표지 디자인 후보안도 받았다. 여섯 가지 시안 중에 네 번째가 마음에 들었지만, 편집자와 출판사의 취향은 첫 번째 쪽이었다. 아무래도 최종 결정권을 출판사가 쥐고 있기도 하고 주변에 시안을 보여줬을 때 대부분 1안을 골랐기에(이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나의 마이너한 디자인 감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말 없이 선택에 따랐다.




그렇게 하나씩 허들을 넘고 나자 눈앞에 결승점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영상 편집자가 말하길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기 위해 수없이 반복해서 보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게 재밌긴 한 건지, 내 취향이 이상한 건 아닌지 헷갈리는 시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출판의 과정도 비슷했다. 쓴 글을 읽고 또 읽다 보니 몇몇 문장은 아예 외워버릴 정도가 돼버렸고, 이게 재밌기는 한 건지, 너무 뻔한 전개는 아닌지, 유머가 너무 잔잔한 건 아닌지 혼란스럽게 됐다. 그럴 때는 후루룩 재밌게 읽었다는 편집자의 첫 번째 피드백과 ‘글 완전 괜찮은데?’라고 칭찬해준 여자친구의 말을 희망의 불빛으로 여기며 이 정도면 괜찮지!, 하며 정신승리를 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낯선 사람들로부터 평가받을 날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긴장되고 두렵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한다.




커버 디자인 출처 : 대학내일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드는 6단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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