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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훈 Oct 22. 2022

들어가는 이야기

  어느 날, 회사 대표님이 이야기를 꺼냈다.

  “송 팀장, 조만간 팀원들이랑 다 같이 회식 한 번 합시다.”

  나는 당혹감과 부담감을 마스크로 가린 채 밝게 대답했다. 

  “네네, 좋죠. 알겠습니다. 날짜는 언제가 좋으세요?”

  “다다음주 수요일이나 목요일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럼 팀원들 스케줄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다른 사람들의 일정을 확인해보니 수요일이 적당했다. 대표님께 수요일 저녁에 뵙자는 카톡을 남겼다. 오케이라는 답장을 받으며,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회사 대표와의 술자리를 좋아하는 직장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격식 없는 자리고 아무리 대표의 성향이 소탈할지라도 그 자리는 평가의 냄새가 난다. 대표 입장에서 부하 직원들과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며 의형제를 맺으려는 의도는 없다. 별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사람들과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팀의 분위기는 어떤지, 구성원들이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딴마음을 품고 있는 건 아닌지, 팀장과 팀원들과 갈등은 없는지, 센스가 있고 생각이 깊어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이다. 일종의 입사 후 면접인 셈이다.

  이런 자리를 잘 끌고 가는 사람도 있다. 대화의 기술이 좋아 상사의 관심에 맞춰 이야기를 잘 흘러가게 만드는 사람.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말수가 없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대부분의 순간 침묵한다. 열 마디도 하지 않고 퇴근하는 날도 있다. 몇 달 전 어쩔 수 없이 팀장이 된 이후로는 말할 일이 늘어났지만, 팀원의 위치에 있을 때는 맡은 일만 열심히 골몰하다 갑자기 울린 전화에 잠긴 목소리로 응답한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군인이었을 때, 하필이면 GOP 경계근무를 서는 부대로 배치를 받았다. 초소에서는 사수와 부사수 둘이 들어가 경계근무라 쓰고 멍 때리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몇 시간 동안 대화로 긴 시간을 죽여야만 한다. 그런 곳에서는 말재주가 좋고 웃기고 야한 이야기를 잘하는 부사수가 사랑받는다. 하지만 내게 그런 재주는 없다. 고참들은 나와 근무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고 나도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그런 내게 회식은 또 다른 GOP 경계근무일지도 모른다. 

  회식은 회사 근처 고깃집으로 잡았다. 아무래도 주류회사에 다니다 보니 회식 장소를 정할 때는 그 가게에 우리 회사의 제품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살피게 된다. 메뉴판을 확인해보니 몇 가지 우리 술이 입점되어 있었고 대표님과 마케팅팀 다섯 명이 앉기 좋아 보이는 6인석 테이블도 있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게라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가까우니 불필요한 이동시간도 줄일 수 있었다.   

    

  회식 날이 하루하루 다가올 때마다 매일매일 마음이 무거웠던 건 아니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하긴 했다. 

  ‘언젠가 코로나에 걸릴 거라면 지금이 적기 아닐까?’

  하지만 나는 아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감염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먼지 많은 운동장에서 실컷 뛰놀았던 터라 그런지 면역력이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이 회식은 한 번 피한다고 두 번 세 번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두세 달 전에도 대표님은 회식하자는 말을 꺼냈었다. 팀에 새로 입사한 사람이 있으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면서. 그때는 우선 팀원들끼리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음으로 미루자고 말씀드렸다.

  회사 생활을 십 년 조금 넘게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하다 사고를 쳤다면 혼자 끙끙 앓아봤자 소용이 없다. 빨리 보고를 해고 혼나는 편이 사고 수습에도 정신 건강에도 좋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맡았다고, 무례한 동료의 무례한 행동에 분통이 터진다며 툴툴 대봐야 소용없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시간에 일이라도 빨리 시작해 일찍 퇴근하는 게 낫다. 회식도 그렇다. 어차피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면  빨리 하는 게 좋고, 피할 수 없으니 즐기진 못하더라도 잘 참아내야 하는 것이다. 


  마침내 회식의 날이 왔다. 간밤에 잠은 좀 설친 나는 컨디션이 영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  열이 났고 몸이 무거웠다. 잠을 푹 자지 못해 그런가 보다, 하며 출근길에 올랐다. 속으로 온몸의 세포들이 회식을 거부하는 것 같다며 웃기까지 했다. 하지만 컨디션 난조의 원인은 단순하게 잠의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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