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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훈 Oct 22. 2022

8월 26일 금요일 : 입원 1일 차 (1)

  밤사이 상태가 악화됐다. 목이 부었고 연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출근하는 건 어렵겠다 싶어 보고한 뒤 연차를 썼다. 

  폐렴에 걸려본 적은 없지만, 폐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숨이 차고 기침을 해대는 것이 문제가 폐라는 걸 가리키는 듯했다. 독감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 이것이 내가 합리적으로 추정한 원인과 증상이었다. 가정의학과가 아닌 내과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폐렴 검사하는 곳 좀 찾아봐줄 수 있을까?”

  아내는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나름 규모 있는 병원을 언급하며 오후에 반차를 쓸 테니 같이 가보자고 했다. 관절, 척추 전문 병원이지만, 내과, 영상의학과 전문의도 있는 곳이었다.       


  캡 모자를 쓰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병원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 두 시였다. 접수를 한 다음 내과에 제출하니 혈압을 측정했고 숨이 가빠 보여서 그런 건지 왼쪽 검지에 빨래집게처럼 생긴 장치를 끼웠다. 뭐냐고 물어보니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도구라고 했고 액정 속 수치는 86과 88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산소포화도 정상 범위는 95% 이상이며, 90% 이하는 저산소증으로 호흡이 곤란해지는 위급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담당 의사는 내게 증상을 묻고 몇 가지 수치를 확인하고는 얼른 X-레이를 찍자고 했다. 코로나 검사를 이틀에 걸쳐 받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신속 항원검사도 받으라고 했다.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X-레이를 찍었고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간호사가 소화기 정도 크기의 산소통과 드라마에서 볼법한 산소마스크를 가져오더니 쓰라고 건넸다. 산소 수치가 낮은 것이 염려되어 추가 지시를 내린 모양이었다. 

  음성. 다시 한번 코로나는 아니란 걸 확인한 다음 진료실로 들어갔다. 촬영된 사진을 보여주며 뿌연 부분이 많다고 했다. 갈비뼈 사이사이를 가리키며 이 부분이 검어야 하는데 이렇게 나오는 건 심각한 상태라고도 말했다. 젊으니까 알아서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집에 돌아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겁도 줬다. 자신이 소견서를 써줄 테니 얼른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요즘 코로나로 중환자실이 가득 찬 경우가 많으니 전화해서 미리 확인한 다음 움직이라는 조언과 함께. 대수로운 상황이 아니란 걸 깨달은 나와 아내는 연신 네, 네, 네, 대답했다. 수납 후 받은 진료의뢰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호흡곤란으로 내원, 흉부 단순 촬영상 양측 폐야 patchy opacity 관찰되며, 38.1℃ fever, room air Sp02 86%, 혈압하강 (84/49)으로 응급진료 의뢰드립니다.      


  마침 집에서 택시로 10~15분이면 갈 수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자리가 있었다. 목요일 아침에 받은 코로나 PCR 검사 결과가 빠르게 접수하는 데 도움이 됐다. 코로나 검사를 받느라 하루 이틀 허비할 수도 있었을 텐데, 목요일 아침에 음성이라고 안내받은 문자가 3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여전히 유효한 모양이었다. 산소 수치가 낮으니 휠체어로 이동해야 한다는 말에 따라 휠체어에 앉았고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응급실에 들어간 다음 안내받은 침대에 누웠다.  

  나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누군가는 피를 뽑아 갔고 누군가는 혈압을 재고 X-레이를 찍었다. 심전도 검사를 하고 코로나 PCR 검사도 추가로 했다. 개중 가장 또렷한 기억은 제모를 한 일이었다. 경우에 따라 시술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이를 위해 제모가 필요하다며 거기에 바리깡을 들이댔다. 그 부위의 털을 미는 것도, 동성이 나의 음모를 만지는 것도 처음이라 영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살기 위해 참아야 했다. 내심 전체를 밀었을 때의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전체를 제모하는 건 아니었다. 털이 난 부위 중 가운데는 남겨두고 좌측 20%, 우측 20% 정도만 밀었다. 심장 혈관 중 일부가 막혀 뚫어야 할 경우, 제모한 부위를 통해 시술을 위한 도구가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털을 민 사람은 의료용 테이프로 잘린 털의 흔적을 대충 정리한 다음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 어디로 이동했는지는 모르겠다. 심장 혈관 검사를 해야 한다며 어딘가로 옮겨졌다. 한 의사가 따끔할 거라고 말한 뒤 우측 손목에 생채기를 냈고 혈관을 통해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후에 알아보니 내가 받은 건 심장 조형술이라는 검사였다. 손목 아래에 있는 혈관으로 카테터라는 얇은 관을 넣은 다음 그 관을 통해 조영제를 넣고 X-레이 촬영을 하면 혈관 흐름을 또렷하게 볼 수 있어 혈관이 막혔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검사를 받는 동안 숨이 너무 찼고 자꾸만 기침이 나서 고역이었다. 

  검사가 끝나고 시합을 막 마친 육상선수처럼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앉아 있었다. 누워 있으면 숨이 너무 차서 고통스럽다. 그나마 앉아 있으면 호흡이 조금은 편해진다. 그사이 담당 의사에게 몇 가지 설명을 듣고 온 아내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오빠, 의사 선생님이 혈관 막힌 곳은 없다고 하시네. 증상이나 몇 가지 검사 수치를 보면 심근염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 심근염의 경과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심장과 폐의 기능이 회복하지 못하고 안 좋아질 경우 애크모라는 기계를 달고 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심장 이식을 받아야 할 수도 있나 봐...”  

  아내의 붉게 충혈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우선은 주말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상태를 지켜봐야 한대. 그사이 괜찮아지면 월요일에는 일반 병실로 갈 수 있을 텐데, 차도가 없으면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하네...” 

  어안이 벙벙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할 정도라고? 그냥 며칠 입원해서 수액 맞고 처방해주는 약 먹으면 되는 게 아니고? 낯선 장면과 낯선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도통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 채 병원 관계자가 이끄는 대로 3층에 있는 심장 혈관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중환자실 병동은 방역을 위해 면회나 보호자 입실이 불가능했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핸드폰 반입도 허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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