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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Nov 04. 2019

정말 찾을 수 있을까요 불안해요

불안의 재활용

저의 꿈을, 제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열심히 찾으려고 노력하고 그 꿈을 찾는 과정, 꿈을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동안 노력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본다면 정말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까요? 과연 제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 불안해요. 이 불안함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조언해주세요.

(**중학교 2-3 전**)

저는 올해 초부터 방송국에서 제 프로그램을 맡아서 사회를 보고 있습니다. 대략 3명에서 4명 정도의 패널들과 함께 시민들이 발제한 영상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참여형 토크쇼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가 처음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마이크 앞에 앉았던 것이 2000년 정도로 기억되니 벌써 19년 가까이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서 투표권을 갖게 될 정도까지의 시간 동안 일을 해왔으니 불안할까요? 아니면 여유로울까요?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제가 모터사이클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실 거예요. 250 씨씨 이상 대형 모터사이클을 탈 수 있는 2종 소형 면허를 딴 것이 1994년이니 25년이 되어가네요. 그간 십 여대 이상의 바이크를 타 왔고 지금도 타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만 보면 연료탱크 밑에서 폭발하는 내연기관의 피스톤이 떠오르고 배기음을 상상하며 가슴이 떨리곤 합니다 25년, 4 반세기 동안 바이크를 타 왔으니 불안할까요? 아니면 여유로울까요?


저는 프로레슬러입니다. 링 안에서 프로레슬링 경기를 하는 사람이지요. 아주 꼬맹이 때 친구네 집에서 미군방송에서 틀어주던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고 그때의 환영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데뷔한 지 10년쯤 되었을 땐 일본 단체 챔피언 벨트를 따내기도 했습니다. 작년과 올해는 계속 연승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몇 년 지나면 데뷔 20년 차를 맞이합니다. 그럼 저는 링으로 걸어갈 때마다 불안할까요? 여유로울까요?


셋 다 대답은 같습니다. 불안합니다. 항상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에 불안하고 초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불안은 조금만 관점을 바꾸면 굉장한 에너지원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냥 버리면 쓰레기에 불과한 폐지와 플라스틱들이 분류만 잘하면 아주 훌륭한 재활용 자원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내일 있을 방송 녹화를 생각하면 불안합니다. 그래서 대본을 읽습니다. 피디, 작가가 프로그램 전체의 얼개를 구상하고 그것에 맞춰 게스트를 섭외했습니다. 사회자가 어떤 때 어떤 질 물은 해야 할지 정리해놓은 대본을 종이 1장에 네 장씩 인쇄해서 읽어봅니다. 이렇게 해서 읽으면 종이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의 흐름을 조망하기 좋습니다. 어디서 강약을 주어야 할지 미리 표시합니다. 출연하는 게스트들은 과거 어떤 발언을 했고 현재 어떤 것에 힘을 쏟고 있는지 간략하게 조사를 해봅니다. 방송은 하나의 도구라서 그 자리와 시간을 빌어 자기 장점을 어필하고 싶은 것이 출연자들의 마음입니다. 그걸 미리 조사해둔 다음 헤아려가며 질문을 합니다.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가며 녹화를 할 수 있습니다. 메이크업 시간까지 고려해서 1시간 전에 스튜디오 대기실에 도착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불안’ 하기 때문입니다.


모터사이클을 타기 전 시동을 걸고 예열을 충분히 합니다. 1000 알피엠 인근에서 헐떡거리며 불규칙했던 공회전이 몇 정도 지나가 안정을 찾아갑니다. 배기음이 고르게 바이크 주변을 부드럽게 감쌉니다. 그동안 저는 바이크를 중앙에 두고 시계방향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상처가 난 곳은 없는지 케이블이 꺾인 곳은 없는지 육안으로 점검합니다. 타이어를 훑어보며 혹시 못이나 이물질은 없는지 확인합니다. 스마트폰 앱에 정리해둔 정비일지를 꺼내보며 언제 오일을 갈았는지도 떠올려봅니다. 시트에 엉덩이를 올려놓고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유격을 점검합니다. 철커덕 기어를 1단에 넣고 출발합니다. 과속방지턱을 덜컥 넘어갈 때마다 서스펜션은 완충작용을 제대로 하는지도 몸으로 측정해봅니다.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나갑니다. 쭉 뻗은 도로와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하늘이 펼쳐져 있지만 속도를 과감히 올리는 것을 경계합니다. 따뜻해진 아스팔트 노면과 타이어가 찰떡궁합을 자랑하지만 최대한 여유공간을 두고 코너링을 합니다. 무리한 와인딩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안’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록 업(상대 선수와 서서 맞잡기) 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같은 남자와 숨소리는 물론 콧구멍이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는 것이 다 보일 정도로 이렇게 바짝 붙어서 게다가 속옷에 가까운 경기용 팬츠 한 장만 입고 노려보는 것이 정말 어색했거든요. 그 어색함은 많이 사라졌습니다만 지금도 불안합니다. 특히 잠깐 여유를 부린 대가로 여기저기 부러지고 찢어졌던 경험이 있기에 여유를 부리지 않습니다. 경기 전 시합용 기어들을 점검하고 로프를 점검하고 링 바닥의 탄성을 체크합니다. 대기실에서 링까지의 동선, 거리, 시간을 점검합니다. 등장음악이 피크에 올라섰을 때 링 인하지 못하면 정말 낭패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인생은 가치를 가지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야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금수저는 금수저로, 은수저는 은수저로, 흙수저는 흙수저로. 아마 그렇다면 이 고민을 메모지에 적어준 전 연서님과 이렇게 문답을 할 인연도 이어지지 않았겠지요. 국제무대를 뛰면서도 스폰서가 없었던 김연아 선수는 올림픽 메달은 꿈도 못 꾸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성공신화’는 일어나지도 않았거나 우주 반대편 어디에 있을지도 모를 평행우주 속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었을 겁니다.


불안함을 없애줄 답을 원한다면 저는 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 또한 항상 불안에 휩싸여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불안함 이란 달리 보면 ‘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에 그런 불안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헤어릴 능력이 없는 이는 불안함 자체를 느끼지 못합니다. **님은 굉장히 지적인 존재인 것 같습니다. 질문지를 보니까 그런 느낌이 왔습니다. 어떤지 그런 것 같았다니까요.


불안함과 싸우고 불안함을 받아들이고 그게 삶의 전제조건이랍니다. 이걸 상수로 설정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과연 **님이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정말 아쉽게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몇십 년 선행 학습한 입장에서 약간의 스포를 하자면 삶이란 불안함을 느끼며 그걸 받아들이고 싸워가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걸 살아있는 내내 반복합니다. 그 사이사이에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찾아오는 보상, 보람, 결과에 웃음 짓습니다. 그러다가 보면 자기만의 완급과 자기만의 루틴을, 자기만의 리듬을 찾게 될 겁니다. 그럼 점점 수월해질 겁니다. 아니 더 어려울 때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자기가 살고 싶은 쪽으로 인생의 방향키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자동차 보조석이나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운전석에 앉은 사람 같은 부담감이 없습니다. 오직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은 사람만이 내비게이션을 확인하고 표지판을 찾아보며 앞차, 뒤차와의 거리를 신경 쓰며 운전합니다. 지금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자기 인생의 핸들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기어를 넣고 주변을 둘러보며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즐겁게 도착하길 기원합니다.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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