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왜 남의 집 문 앞에서 그러면 어떻게 해!"
가을비에 어울리지 않는 세찬 바람 보다도 더 매서운 일갈이었다.
오늘은 서울에서 제법 떨어진 다리로 이어진 섬에 있는 중학교 특강이 있는 날. 이미 11월, 한 줌 정도 남아있는 가을의 온기와 정취를 맛보려고 바이크로 이동하려 했지만 비 때문에 포기하고 자동차로 섬에 도착했다. 교통 혼잡을 예상해 일찍 출발하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1시간 가까이 당도했기에 일단은 차에서 좀 쉬기로 했다.
학교에 일찍 가봤자 교장 선생님과 코로나 사태로 드러난 국민성을 주제로 30분 이야기하거나 교무실 구석 원형 테이블에 앉아 샤오미 공기청정기처럼 앉아 있을 것이 뻔할터. 차라리 편의점에서 커피라도 사서 차에 있을 요량으로 주섬주섬 물건을 사서 차로 돌아오던 참이었다. 그런데 차량 본닛을 시작으로 온통 낙엽천지 특히 전면 유리에 붙어있던 낙엽들이 와이퍼에 밀리면서 아랫쪽과 측면에 가득 담겨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걸 손으로 꺼내서 길바닥에 버리고 있던 순간 저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린 것이다.
"아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일단 사과를 하고 차에 타고 스티어링 휠을 돌렸다. 후사경으로 보니 70대 이상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는데 아직까지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듯 삿대질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 강연의뢰를 받은 학교로 이동하며 좌회전을 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내가 뭘 잘못한거지?'
일단 그곳은 섬마을의 아주 작은 읍내의 버스 터미널이 있는 곳이었다. 터미널이라곤 하지만 버스 서너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길 양 옆으로 'ㄷ'자 모양으로 서너 개의 가게가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 섬으로 들어오면서 만났던 차량 댓수는 동일 차선, 반대편 포함해 열 대가 안되었고 그때까지 내가 만난 유일한 사람은 편의점 사장 그리고 그 노인뿐일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다. 그리고 문 앞이라곤 하지만 그냥 길가 더군다나 이미 낙엽이 쌓여있는 시골 길가였을 뿐이었다.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열선시트를 켰다. 수소전기차라서 아예 엔진이 없다보니 배기가스,소음없이도 이런 기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시간적인 여유는 있다. 그 할아버지는 대체 왜 그랬을까?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다시 그 몇 분 전의 당혹스러운 장면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그곳은 가정집이 있는 곳이 아니다. 맞다! 작게나마 상가가 형성된 곳이다.
나는 익숙한 편의점 간판을 보고 주차를 했지만 내 차 헤드라이트 즉 정면이 향했던, 그 할아버지가 갈색 여닫이문을 열고 나왔던 그 곳도 '가게'였다. 맞다, '구멍가게'였다.
편의점 사장은 꽤 큰 덩치에 걷는 것이 다소 불편한 사람이었다. 나도 부상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특징이 눈에 잘 보이는 편이다. 그럼에도 내가 가지고 온 핫바가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다른 제품으로 바꾸어 주겠다며 카운터에서 진열대로 다시 안쪽 창고로 부지런히 오갔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고음의 밝은 목소리로 "또 오세요" 라고 인사해주던 사람이었다.
바로 그 편의점을 나왔을 때 3시 방향에 위치해 있던 구멍가게는 그 존재 자체가 나중에 생각날정도로 그냥 '구멍가게'였다. 편의점 사장을 떠올리니 낙엽을 쓸어내린다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던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더욱 대비되었다.
강연을 끝내고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전 갑자기 일본에서 만났던 레슬러 T가 생각났다. T는 오사카 지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하는 우동으로 유명한 타카마츠 출신이었다. 어렸을때 스모를 했었고 나처럼 사각 링이 뿜어내는 박력에 눈이 멀어 여기까지 온 사람이었다. 대략 나보다 15~20살 보다 많은 T는 한때 신설 단체의 에이스로 대우 받기도 했지만 링 내부 투쟁보다 링 외부 투쟁에서 항상 실기를 하며 도박과 주벽까지 겹쳐 계속 평가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때 이미 시간 때우기용 퇴물처리 선수로 취급받던 상황이었다.
이 T가 어느날 웬일인지 맥주 한 잔을 하자고 했고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는지 혼자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불쑥 "아퍼, 손가락이 닿는 것만으로 아퍼. 요즘 신인들말인데 몸이 너무 좋아, 스파링 하다가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아파. 하하하하" 이렇게 웃고 난 후 T의 씁쓸하면서 자신에게 화난 표정, 그 표정이 바로 그 할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그런 시골의 구멍가게가 대형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상대로 이길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게 초입으로 들어오는 자동차 소리에 밖을 내다보면 그곳에 주차를 하고 편의점으로 들어갈 뿐. 그 광경을 몇날 며칠 몇년을 봐 왔다면 그 할아버지도 속이 어떠했겠는가.
그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강팍 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삶이 강팍해진다는 것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에게만 계속 연민을 갈구한다는 것. 내 아버지도 그러하다. 어렸을 때 같이 목간을 다녀오다보면 아버지는 길 가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 손수레 끄는 할아버지를 보면 '부모님 생각난다'며 그냥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두개를 꺼내서 의미없이 건네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분이, 물론 아직 가족에겐 다정하지만, 그 경계 밖 사람들에겐 매섭게 구는 모습을 보며 적잖이 놀랐던 적이 있다. 무엇보다 건강 문제가 크다. 신장 투석을 하느라 격일로 병원 침대에 5시간 이상씩 누워있는 삶을 살며 본인 주변 이상을 헤어린다는 것은 가능,불가능을 넘어 너무 가혹한 일일 것이다.
우회전으로 빠져나가면 서울방향인지라 일단 직진후 다시 차를 돌려 그곳으로 갔다. 편의점에서 껌 하나 사고 ATM기기에서 신용카드로 만 원을 인출했다.
구멍가게로 들어가니 할아버지가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살이 빠졌다고는 하나 182cm에 98킬로에 노랑머리. 더군다나 직전에 그런 분쟁이 있었으니 혹시 해꼬지하러 온 게 아닌가 하는 얼굴이었다. 일단 가볍게 목례를 하고 냉장고쪽으로 가자 안심하는 것 같았다. 먹지도 않을 주스와 꿀꽈배기, 새우깡을 주섬주섬 골랐다.
"아까 제가 죄송했습니다"
"아..아휴..뭘"
"네 수고하세요"
"......"
아마 어쩌면 나도 T처럼, 아버지처럼, 할아버지처럼 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근성장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젊은 레슬러와 스파링이 두려운 T처럼,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매서워진 아버지처럼, 편의점 앞에서 매일 좌절을 맛보는 구멍가게 할아버지처럼.
그때를 생각해 만 원 그리고 현금서비스 수수료는 별로 아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