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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Jan 25. 2022

침묵으로 전하는 마음에 대하여

with. 신형철_<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빨리 나아요.


한동안 나는 이 말을 견딜 수 없어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강요당하는 기분이었다면 과거의 나는 너무 이기적이었을까. 


삶의 어느 순간에는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순간이 한 번은 온다. 물론 한 번만 오면 다행이다. 그런 순간에는 내게 오는 말들은 듣는 게 아니라 받아내게 된다. 힘겹다는 말이다. 그런 말들은 외줄 위에 서 있는 나에게 중심 잘 잡으라며 툭, 무심하게 날아든다. 나는 여지없이 휘청인다. 나도 중심을 잘 잡고 싶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만 흔들리는 줄이 버겁고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부담감과 그 한걸음 뒤에 남은 수많은 걸음들이 아득할 뿐이다.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나를 향하는 모든 말들은 그래서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괜찮을 거야.


힘들면 그만 그 줄 위에서 내려오라는 말을 나는 기다렸을까.  그러나 그 당시 나의 병은 쉽지 않았다. 침묵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죽음과도 같은 말인) ‘이제 그만 내려와’를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은 또 그 말대로 나에게는 상처였을 거라는 걸 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나에게 들려오던 그 많은 위로의 말들 안에 담긴 진심의 마음도 안다. 그저 상대나 말이 아니라 상황이 힘겨웠을 뿐이다. 나를 이겨낼 힘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더 외로웠을 뿐이다. 줄 위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았으니까. 편해질 것 같았으니까.


이 시간들에 대해 죄책감이 있다. 내내 그랬다. 그러다 그런 마음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문장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것은 고마운 일이므로 나는 좋은 감정으로 응대한다. 그러나 그 응대는 그 자체로 나의 감정적 자원을 크게 소모시키는 일이다. 그런 일들이 피곤하다고 느껴지면 고마워할 줄 모르는 나 자신에게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것이 또 나를 갉아먹는다.


신형철_<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39)




그랬다. 고마워할 줄 모르는 나 자신에게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것이 또 나를 갉아먹는 일. 그때의 내가 그랬다. 위기의 순간들을 가까스로 넘어와 흔들리는 줄에서 잠시 내려와 있구나, 생각하는 지금 순간에도 그 시간들에 대한 죄책감은 남아 있다. 마음의 농도가 옅어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들게 하지 않는 위로는 어떤 걸까를 자주 생각했다.


침묵


나처럼 삶과 죽음 사이의 외줄 위에 서 있는 사람을 가끔씩 본다. 어딘가 크게 아프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사는 일에 타격이 될 만큼 큰 상실을 겪는 사람들. 나는 침묵한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진심을 전하지 못한다. 과거의 내가 생각나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위로의 말이 가진 그 허망함을 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침묵이 무관심은 아니라는 걸 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그래서 내 얘기를 한다. 괜찮냐고 묻지 않고, 괜찮을 거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밥을 같이 먹고 사소하게 지나간 오늘을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너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늘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모든 감정을 전달하는 배우처럼 진심을 침묵으로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침묵으로 하는 말들


쉬운 길을 두고 자꾸 침묵으로 진심을 전하려는 이유. 그건 내가 경험했던 위로 때문이다. 근래 몇 년, 세상에 원망의 마음이 드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럴 때 내가 받았던 위로는 말이 아니었다. 엄마 없는 첫 해의 생일 상을 손수 차려주었던 친구의 마음, 애써 괜찮다는 나의 말에 나보다 먼저 울음을 터트리며 괜찮지 않음을 알아주었던 친구의 눈물, 슬픔은 잊어버리라는 듯 시끄럽게 떠들고 놀며 시간을 함께 보내 주다가 헤어지면서 꽉 안아주던 친구의 품 같은 것들. 그건 내가 경험한 완전한 위로에 가까웠다. 


그렇게 하는 일들이 어려운 거라는 걸 이제는 경험으로 안다. 쉽게 마음을 전한다는 건 나에게 편한 방법이라는 것도 알았다. 조금 어렵더라도 상대를 배려하고 생각하다 보면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말보다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쉽지 않은 방식으로 마음을 전하는 일, 그것이 조금이라도 상대를 쉬게 해 주고 완전하게 위로해주는 일이라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받았던 위로들을 나도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다. 


오늘 그런 생각을 오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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