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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Apr 26. 2022

하루의 시작은 운동


"선생님, 저를 80대 할머니로 생각해 주세요."


피티 수업을 받던 첫날, 이렇게 얘기했다. 건강한 할머니가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 어머니는 60이 넘어서면서 늘 관절염에 시달렸고, 많은 날들을 잘 걷지 못했다. 내가 보는 할머니의 기준, 나이 듦의 과정이 엄마였다. 그런 것이었다. 타인의 말대로 움직이는 일이 잘 되지 않는 몸을 가진 존재. 그런데 나는 늙지 않았어도 항암 이후 몸이 이미 그렇게 나이 들어 버린 것 같았다. 실제로 그랬다. 그런 내 몸뚱어리를 가지고 선생님의 지시대로 움직일 자신이 없었던 거다. 


생각한다. 살면서 운동을 좋아했던 적이 있었나. 학교 체육 시간이 싫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 걸 보면 싫었나? 그런데 또 한편 생각해보면 운동경기 보는 걸 싫어하지 않고, 생활 체육 수준의 (배드민턴, 탁구, 농구) 운동들을 신나서 했던 기억이 있기도 하다. 생각의 끝에 스스로 결론을 낸다. 아마 모르고 제대로 해보질 않아서 좋은지 싫은지도 몰랐던 것 같다고. 운동과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면서 별 관심 두지 않는 친구 같은 사이였다. 데면데면.


그런 내가 코로나가 시작되던 2년 전쯤, 헬스장에 갔다. 그때 나는 자주 어지러웠고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고 그만큼 자주 응급실에 갔다. 나는 그 모든 증상들이 엄마 잃은 슬픔에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온몸으로 애도의 과정을 견뎌내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안다. 그것은 애도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오랜 항암으로 완전히 빠져나간 근육의 결핍 문제가 심해져 결국 내 몸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이었다는 걸.


처음부터 내 힘듦의 모든 원인이 신체적인 것이라 생각해서 운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는 말이다. 친구의 권유가 있었고, 어쩌다 보니 시작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운동이나 좀 해볼까 정도의 마음이랄까. 그런데 하다가 알게 됐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생존을 위해서라는 사람들의 운동 이유가 내 운동 이유라는 걸. 그때의 내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도 헬스장에 발을 들인 건, 그 사소한 선택은 지금 생각해보면 흔한 말로 신의 한 수였다. 나는 오늘도 살기 위해 운동했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몸이 쓰인다. 몸이 가장 덜 쓰이는 것처럼 보이는 생각하는 때에도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잘못된 생각의 흐름에 빠질 수 있다.


_소크라테스




그렇게 운동을 시작하고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받고 있고, 헬스장이 쉬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고, 아직도 찍고 있다. 올해 6월이면 2년이 된다. 매일이라고 하면 대단한 몸이 됐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다만 이제 나는 내 카톡 화면에 걸어놓은 소크라테스의 이런 문장,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몸이 쓰인다는 사실을 조금 더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이제 겨우 응급실을 좀 밀어낼 수 있게 되었고, 극심한 편두통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로 너무 지치지 않게 되었고, 남아 있는 에너지로 밤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날들도 꽤 많아졌다. 어? 쓰다 보니 대단한 몸이 된 건가??


그런 건 잘 모르겠고, 헬스장에 들어가는 순간 매일 한결같이 하는 생각은 한 가지다. 가능한 건강한 몸으로 하루를 살고 싶다는 것. 무엇이든 잃어 본 사람만이 그 소중함을 안다고, 건강은 특히 그렇다. 나는 건강을 완전히 잃어봤던 사람이다. 지금도 그 순간의 절망감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깨어난다. 아마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그 절망이 나를 매일 헬스장으로 이끄는지도 모른다. 오늘 몸을 움직인 만큼 조금씩 그 절망감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러니 별 수 있겠는가.


오늘도 하루의 시작은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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